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 게 자기주도학습이라고 생각해요.

초등 3년 때부터 로봇 설계

아이폰용 앱과 로봇 제어 프로그램 개발해 충북과학고에 합격한방현웅군

귀가 아프고 눈이 얼얼할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1월의 어느 날. 청주에 사는 방현웅군은 리눅스 보안 관련 강의를 듣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하고픈 공부를 하기 위해 혼자 기차를 타고 낯선 도시에 오는 일은 현웅군에게 별로 힘든 일이 아니다. 어른 못지않은 큰 몸집에 매서운 바람에 붉어진 두 뺨이 순박해 보이는 현웅군은 2011학년도 고입에서 자기주도학습전형을 통해 충북과학고에 합격한 예비 고등학생이기도 하다.

“다음 주부터 한 달간 사전 교육을 받으러 과학고에 들어가요. 이제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겠지만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이 더 큰 것 같아요.”

중학교 내신 성적은 상위 10%. 과학고등학교에 합격할 수 있는 성적과는 크게 멀어 보인다. 어릴 때 딱히 영재나 수재 소리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담당 입학사정관은 “학원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 책을 보며 공부하는 학습 능력이 뛰어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현웅군은 과학에 대한 자기 소신이 뚜렷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매력을 지닌 학생이었다. 덕분에 로봇대회와 정보올림피아드 등에 참가해 수상했고, 학교에선 로봇교실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로봇을 알리기도 했다고. 지난 10월엔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위치 정보와 문자 메시지를 지인에게 자동 전송하는 아이폰용 앱(Application)을 개발했다. 그 외에도 방대한 독서량과 과학도의 길을 가고자 하는 뚜렷한 소신이 합격 이유가 됐다.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께서 로봇 학원에 보내주신 게 큰 계기가 되었죠.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로봇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거든요. 제가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한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신기했어요.”

로봇이 좋아 다양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연구도 한 현웅군. 과학실험대회나 경시대회 등 실력을 뽐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참가했다. 애초에 과학고를 들어가려고 각종 대회에 참가한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과학 활동을 하다 보니 저절로 포트폴리오가 쌓인 셈이다.

“재미있어서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대회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설령 준비가 안 되었더라도 마다하지 않고 참가했어요. 뭐든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거든요. 과학고에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해주곤 해요.”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러한 자신감의 배경에는 현웅군이 좋아하고, 가고자 하는 길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부모님이 있었다. 책을 읽고 싶어 하면 책을 사주었고, 과학 전문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하면 그리하게 해줬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몰두하기 시작하자 데스크톱과 노트북 등 여러 용도의 컴퓨터를 7대나 마련해줬다.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은 현웅군이 더욱 날개를 활짝 펴는 데 도움이 되었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특히 지난해 특허청에서 주관하는 YIP 청소년 발명가 프로그램 대회에 친구들과 팀을 이뤄 참가해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이번 과학고 입시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몇 가지 주제가 주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위급한 상황에서 휴대폰이 어떤 용도로 쓰일 수 있을 것인가’였어요. 휴대폰이 강한 충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저장된 번호에 SOS 문자와 GPS 위치 정보가 발송되는 앱을 개발했죠. 앱스토어에 올린 적도 있는데 얼마 팔리진 않았어요.(웃음)”

스티브 잡스의 파격적인 매력 닮고 싶다

또래 친구들은 주로 게임을 하거나 숙제를 하는 용도로 컴퓨터를 이용하지만 방현웅군은 조금 달랐다. 컴퓨터는 새록새록 놀라운 진실과 보물창고 같은 엄청난 정보가 들어 있는 미지의 세계와도 같았다.

“저도 가끔은 스타크래프트를 하는데 점수를 올리는 것보다는 다른 것에 더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영상이 2D로 만들어졌는데 어떻게 언덕과 바닥이 입체적으로 구현될까? 이런 게 궁금해지면 파일을 다 뒤져서라도 원리를 알아내요.”

방현웅군이 이처럼 전문가 수준의 연구 성과와 실력을 갖춘 까닭은 똑같은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창의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방현웅군은 주저하지 않고 애플사를 창업한 스티브 잡스를 꼽았다.

아직 로봇 동아리가 없는 충북과학고에 입학하게 되면 자신이 창립 멤버가 되어 멋진 동아리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방현웅군. 보다 좋은 시설과 첨단 설비를 가지고 하고픈 공부를 맘껏 할 수 있게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물론, 핑크빛 미래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워낙 특출한 친구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영어나 수학 등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며 공부하는 것을 보니 별로 걱정할 일은 아닌 듯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 게 자기주도학습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분야가 각각 다르잖아요. 제가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좋아했듯이, 제 친구는 한자 공부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다 보면 더 열심히, 잘할 수 있어요.”

방현웅군은 앞으로 카이스트에 진학해 최고 보안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남보다 뚜렷한 목표가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기에 그의 꿈은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로 다가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강의를 들으러 가기 위해 채비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게임을 하거나 노는 것보다 어려운 컴퓨터 용어와 씨름하며 비밀의 열쇠를 푸는 것이 더 즐거운 예비 과학고생은 새로운 배움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tip.자기주도학습전형
이렇게 합격했어요

1.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다

독서를 할 때만큼은 자신이 좋아하는 과학 분야뿐 아니라 시, 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했다. 여러 분야의 소양을 쌓는 데 독서만 한 것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덕분에 생각하는 힘도 기를 수 있었고, 입학사정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2.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반드시 정한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분야가 한 가지씩은 꼭 있다. 특히 자기주도학습전형에서는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스토리가 한 가지는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공부해왔는지 일목요연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3. 눈앞의 학교가 아니라 더 큰 꿈을 목표로 한다

과학고가 꿈을 이루기 위한 입문은 될 수 있지만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

취재 홍유진 사진 박원민

by 트래블러 2011. 2. 27. 2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