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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의 존엄성은 몇 점입니까?
김민아 인권교육전문가

몇 달 전 제정된 청소년 인권조례안 때문에 교육계 안팎의 분위기가 뜨겁다. 체벌 금지로 대표되는 청소년의 인권과, 그로 인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교권이 대치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 이런 상황을 인권교육전문가 김민아씨는 곪았던 데가 터져 나온 명현현상이라고 정의한다.

Written by 홍유진 Photo by 백기광

얼마 전, 알고 지내던 중학교 선생님과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체벌 금지를 필두로 한 인권조례안이 발표되면서 학교 안팎의 분위기가 뒤숭숭할 때였다. “취지가 좋은 건 알지만 아직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요. ‘이제 선생님은 때리지도 못하잖아요’ 어쩌고 하면서 괜히 더 까부는 거 있죠?” 최근에도 선생님 앞에 대놓고 욕설을 한 반 아이 때문에 비상회의에 불려갔다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인권이라는 말은 힘없는 자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단어다. 하지만 많은 어른들의 경우 청소년 뒤에 인권을 붙이기를 망설인다. 가두고 제제하지 않으면 통제 불가능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입시’라는 바늘구멍 앞에서는 인권이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질 즈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다년간 청소년 인권교육에 매진해온 김민아씨의 책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라는 제목은 명쾌한 답을 주는 듯했다.

유예되면 사라져버릴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행복
사실, 이 말은 요즘 아이들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학창시절 부모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닌가. ‘대학 가면 실컷 놀 수 있어’, ‘연애도, 여행도 다 대학가서 해’ 등등. 눈앞에 닥친 부조리함과 억울함을 해결하는 것은 모두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다는 것만으로 참아내야 했다. 김민아씨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진감래’에 대한 허상부터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고사성어가 ‘고진감래(苦盡甘來)’예요. 반대로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뭔 줄 아세요?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건 당연한 거예요. 입시를 핑계로 현재의 행복은 무조건 유예되어야 한다는 현실에 제동을 걸어보고 싶었어요.”[##줄바꿈##]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 우리 모두 겪어보지 않았던가. 애를 써서 대학에 간다고 해서 인생이 180도 달라지진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부조리를 겪고 자란 세대들조차도 아이들에게 반복되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공부를 못하니까’ 인권 따위는 없고,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더 잘해야 하니까’ 바빠서 인권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대학에 들어가도 마치 고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것 같다며 하소연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그렇게 끊임없이 고생만 하다가, 과연 낙이 오기는 올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은 인내의 미덕을 강조하는 덕담 같지만 실상 알고 보면 감언이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도, 그리고 우리들 모두 현재 행복할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라 하더라도 굳이 다른 친구와 비교할 것 없이 자기 자신이 존엄하다는 자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높은 성적만으로도 면죄부를 받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등수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든요. 거창하게 인권이라 표현하긴 하지만 맞지 않을 권리, 고통 받지 않을 권리, 스스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8년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교육 담당으로 인권 관련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김민아씨는 청소년 대상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만났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냈다. 그 책이 바로 ‘인권은 대학가서 누리라고요?’다. 청소년 인권, 언뜻 들으면 익숙한 조합 같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와닿지 않는다. 과연 어떤 것들이 청소년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일까? 그녀의 책 속에는 체벌과 부당한 대우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 자유롭게 모여 의사를 표현할 권리, 사생활의 비밀이 보호될 권리 등 일곱 가지 청소년 인권이 다양한 사례와 함께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청소년 인권을 보장하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결코 매를 들어서는 안 되며, 머리 길이와 의복 등에 제한을 두어서도 안되고, 정당한 이유가 있는 한 집회나 시위를 할 권리도 보장해주어야 하며, 어떤 빌미가 있더라도 소지품 검사를 한다든지 해서 사생활을 침해해선 안 된다. 나열해놓고 보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인권 사각지대 안에 놓여있었는가 짐작하게 된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줘야
그러나 많은 교사들은 학생들이 권리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 이유 없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김민아씨는 학생들의 인권이 교권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늘 교사와 학생, 교권과 학생 인권은 이분법적으로 해석되고 대립하는 구조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교권과 학생 인권은 왼손과 오른손이라고 생각해요. 둘 다 필요하다는 거죠. 둘이 만나면 악수를 할 수도 있고, 박수를 칠 수도 있고, 깍지를 끼고 하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절대 반목하는 관계가 아니에요.”
우선은 학교 교사들부터 청소년 인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인권 교육을 의뢰하면서도 어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권리만 가르치지 말고 의무도 가르쳐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한단다. 그럴 때마다 김민아씨가 하는 말이 있다.
“맛있는 걸 많이 먹어본 사람이 요리를 잘하죠. 사랑을 많이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줄 알고요. 인권이 뭔지 누려보지도 못한 아이가 어떻게 남의 인권을 지켜줄 수 있겠어요.”
그래서일까. 실제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인권교육을 펼치는 그녀가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반응은 “우리한테 정말 그런 권리가 있어요?” 식의 놀라움이다.
“예를 들면 ‘유엔 아동권리협약 31조’에 보면 ‘어린이들은 충분히 쉬고 충분히 놀 권리가 있다’는 얘기가 나와요. 우리나라를 포함한 197개국이 이 협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죠. 즉,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쉬고 놀 수 있게 국가가 보장한다는 얘기니 아이들로서는 얼마나 놀랍겠어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인권의 의미와 인권 침해에 대한 여러 사례를 나누어 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민아씨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교육과에 소속되어 있지만 절대로 아이들을 ‘교육’시키지는 않는다고 했다.
“교육시킨다는 것의 의미는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뉘앙스가 있어요. 즉, 선생님이 학생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 적은 사람에게 교육시키는 거죠.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절대 인권 교육이 성립될 수가 없어요. 의욕과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가 없으니까요. 제목은 ‘인권 교육’이지만 그 안에서만큼은 다른 것을 내려놓고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를 나눠요.”
이러한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사실 인권은 유엔이나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엄연한 권리지만 이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사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그녀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인권 문화 컨텐츠 등으로 끊임없이 인권 교육이 시도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일들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특히 감수성이 발달하는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이런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옆 짝꿍이 돈이 없어 밥을 못 먹는데 그것에 대해 아무 감흥을 못 느낀다면 문제 아닐까요? 적게 먹더라도 나눠먹을 줄 아는 감수성 즉,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나와 너, 나와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끔 해줘야 해요.”
그녀는 앞에 놓인 백지 위에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그물코를 그렸다. 개인을 의미하는 네모 모양은 마치 독립된 개체처럼 보이나 그물코 하나만 빠져도 전체를 못 쓰게 된다. 즉, 내가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들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모두 볼 줄 알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권의 상징적인 개념이다.

너와 나의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완성되는 인권
그녀는 최근 김상곤 경기 교육감이 발표한 청소년 인권조례 제정안이 이슈가 되면서 마치 학교가 아노미 상태에 빠진 것처럼 묘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놨다.
“이런 경우가 있죠. 저 집안은 늘 화목하고 한 번도 싸움이 일어난 걸 본적이 없어. 하지만 사람이 같이 살면서 어떻게 의견 다툼이 없을 수 있어요? 그건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았거나 서로 무관심했다는 얘기죠. 현재 학교도 그래요. 아무런 소통이 없었던 학교에서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학교로 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도기라고 봐요. 그동안 쌓여서 곪아가던 상처에서 나쁜 기가 빠져나오는 거죠.”
그런 의미해서 지금은 교육계 전반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즉,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학교의 의미, 교육의 필요성부터 다시 되짚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가 왜 존재할까요? 교사들 월급 주려고? 아니잖아요. 학생들 가르치려고 선생도 뽑는 거고, 쾌적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니까 학교 건물도 짓는 거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엄밀히 얘기해서 교수권보다 학습권이 우선한다고 봐요.”
말 그대로, 공교육이란 학부모들이 세금을 내고 나라에 아이들을 맡긴 것이다.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업무를 위탁받은 곳이므로 그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학교에서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집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아이들에게 학교는 또 다른 집이에요. 집만큼은 아니더라도 좀 편해야죠. 7~8시간 앉아서 공부하는데 자기 사이즈에 맞는 책걸상도 있어야 하고, 화장실에 화장지도 있어야 하고, 쉴 데도 필요해요. 그러한 학교의 존재 의미부터 되찾아간다면 청소년 인권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될 텐데 말이에요.”
사실, 현재의 대한민국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는 경쟁의 사이클 속에서 달려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안에서 인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경쟁에 자신 없는 자들의 변명처럼 보일 수도, 지배층에 대한 덧없는 반항처럼 치부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교육을 받는 기간만큼은 내 안에 갇히기보다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배려할 수 있는 자세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김민아씨의 마지막 말은 교육계 전반에 뜻 깊은 화두를 던져주는 듯 했다.
“옆 아파트에서 같은 학교 애가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고등학생 아이가 이런 얘길 했다고 해요. ‘우리 아파트 값 떨어지면 어쩌지?’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단절된 사회를 살고 있어요. 하지만 나의 인권을 누리고, 다른 이의 인권을 지켜주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리라 믿어요. 나와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걸.”

by 트래블러 2011. 2. 27. 2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