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로 살아온 50년, 가슴에 남은 아름다운 물음표

탤런트 김영옥

아름다웠던 한때의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는 배우가 있고, 곁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오랫동안 살 부비며 산 가족처럼 함께 늙어가는 배우가 있다. 올해 74세. 반세기 동안 아내로, 엄마로, 가족 같은 배우로 살아온 그녀, 김영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고운 주름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김영옥은_그런_배우다.

아주 오랫동안 보아왔던 것 같은데 그 존재가 새삼 빛나는 배우, 이름도 없이 늘 누군가의 어머니, 이웃집 할머니로 불리지만, 나올 때마다 괜히 반가운 얼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밥을 해줘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친근한 캐릭터. 혹자는 ‘국민 엄마’, ‘명품 조연’ 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그녀를 태운 차가 스튜디오 앞에 도착했다. 롱코트 자락을 잡고 천천히 땅에 발을 내딛는 모습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작은 체구, 빛나는 눈빛, 보폭이 좁은 발걸음…. 늘 TV에서 평상복을 입은 모습만 보아서인지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여배우의 아우라가 사뭇 위압적이었다.

연기 인생 50년이 주는 존재감

사실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였다. 지난달 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려한 입담을 자랑한 뒤로 빗발치는 취재 의뢰와 인터뷰 요청이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를 반복하는 것도 남우세스럽다고 했다. 서른한 살 때부터 할머니 역할을 했는데, 어느덧 수십 년이 흘러 이제야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올드미스 다이어리><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는 걸쭉한 욕을 쏟아내는 왈가닥 할머니였다가, <공부의 신>에서는 손자에게 한없는 사랑을 퍼주는 헌신적인 할머니가 됐다. 어떤 역할을 맡든 몸에 맞는 옷처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그녀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지만, 결코 유난하지 않다. 50년 가까이 한길만 걸어온, 어찌 보면 단조로운 일생이었다. 화려한 스캔들에 휩싸인 적도 없고, 상복이 많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정성껏 쌓아올린 공든 탑처럼 김영옥이라는 연기자의 존재감은 시청자들에게 점점 소중한 의미가 되고 있다.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지금 나를 보면 상상이 잘 안 되겠지만 소심하고 숫기도 없는 그런 애였다고. 연극이나 노래 같은 건 여학생이라면 누구나 좋아했으니 특별할 것도 없었지.”

그 옛날 영화의 인기는 지금보다 뜨거우면 뜨거웠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얌전한 여학생이었다는 그녀도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만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교복 대신 어른스러운 사복을 차려입고 가 두근대는 마음으로 봤다는 <푸른 화원>, <7인의 신부>, <맨발의 백작부인> 등의 추억 속 영화 제목들이 그녀의 입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면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 거울을 보며 여주인공 흉내를 제법 그럴듯하게 내곤 했단다.

“의지를 갖고 뭘 한 건 아닌데 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저절로 트이는 팔자였나 봐. 마치 배우가 된 것 같은 마음으로 거울을 보며 흉내를 내곤 했는데 그게 재주로 발전한 거지. 학교 예술제 같은 데 나가 많은 사람 앞에서 연기하면서 자신감도 붙었고.” 뭐든 시작하고 싶어 20대 초반에 KBS 아나운서로 입사했고,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이른 나이에 결혼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천생 연기자였다. 성우로, 탤런트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른 결혼을 해 군대 간 남편을 기다리느라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일하는 게 좋았다. “나처럼 꾸준히 일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 간혹 몇 달 쉬기는 했지만 그뿐이었어요. 보는 사람은 늘 똑같다고 여길지 몰라도, 항상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연구를 많이 해요. 매번 똑같은 역할만 들어오면 재미가 없지. 내가 노망 난 늙은이 역을 좀 많이 했어. 자꾸 해봐. 그 이상 뭐가 나오겠어. 노희경 작가한테 이제 망령 난 할머니는 그만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영화로 만드는데 내가 맡았던 역을 김지영 씨가 한다고 하대. 막상 그러니까 또 섭섭하기도 하고.(웃음)”

오랜 연기 생활 동안 그녀는 늘 조연이었다. 큰 욕심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뿐이었다. 한편으로는 늘 새로운 연기에 대한 갈망이 가득했다. “남들은 중견 배우들이 편하게 연기하고 돈이나 벌어가는 줄 아는데, 일할 때는 완전히 몰입해야 하기 때문에 등줄기에 진땀이 흐른다고.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할 때도 신나기는 한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그런데 신기한 게, 병이 났다가도 그렇게 땀을 쪽 빼고 연기하고 나면 다 나아버려. 꼭 운동하면서 땀을 시원하게 흘린 것처럼 기분이 그렇더라고. 촬영 끝내고도 여운이 사라지지 않아서 집에 바로 가지 못하고 어딜 앉았다 가는데, 남자들이 일 열심히 하고 술 먹는 게 이해가 가더라니까.”

나는 시트콤 연기가 생리적으로 참잘 맞아요. 처음 한 건 <오경장>이었는데 시청률은 별로 안 나왔지만 우리끼리는 아주 재미있었어요. <올드미스 다이어리>도 1년 넘게 참 즐겁게 했고. 물론 어려운 부분도 있지. 시트콤은 타이밍이야.

대한민국 대표 할머니 배우의 위엄

왈가닥 사돈어른, 푸근한 옆집 할머니, 치매 걸린 시어머니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그 때마다 자연스러운 연기 변신으로 사랑받아 온 김영옥. 그런 그녀가 스스로 꼽는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전성기는 잘 모르겠어요. <왕룽일가>, <옛날의 금잔디> 할 때였던 것 같기도 하고, 노희경 작가 작품만 6~7개는 했는데 <화려한 시절>도 좋았죠. 김수현 씨 작품도 <새엄마> 때부터 꾸준히 했고…. 이렇게 믿음을 갖고 꾸준히 찾아주는 작가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은 아니었어도, 김영옥은 드라마의 적재적소에서 주인공을 빛내주거나 감칠맛 나는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조연으로 끊임없이 사랑받았다. 지난해 말에는 4개 드라마에 출연하는 바람에 일주일 내내 TV에 그녀의 얼굴이 나오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도 연기에 대한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젊은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녀는 어떤 배역이 들어와도 모두 해낼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난 일하는 사람 많이 안 했어. ’ 김수미가 방송에서 그러더라고. 하지만 나는 조연을 해도 늘 주인공 같은 마음으로 하려고 했어요. 서른한 살에 할머니 역을 처음 맡았지만, ‘아무거나 다 줘봐라’ 하는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지요.” 요즘은 MBC 주말연속극 <글로리아>와 시트콤 <몽땅 내 사랑>에 출연하고 있다.

“나는 시트콤 연기가 생리적으로 참 잘 맞아요. 처음 한 건 <오경장>이었는데 시청률은 별로 안 나왔지만 우리끼리는 아주 재미있었어요. <올드미스 다이어리>도 1년 넘게 참 즐겁게 했고. 물론 어려운 부분도 있지. 시트콤은 타이밍이야. 현장 분위기와 템포를 잘 살려서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감각도 있어야 하고 순발력도 필요하지.” 자신이 망가지더라도 웃음을 줄 수 있는 시트콤도 좋고,슬픈 정극 드라마는 그것대로 절절해서 좋단다. 지금도 대본 외우는 것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않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니만큼 귀찮아지기도 하고 피곤할 때도 많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그녀의 건강을 염려해 ‘여유도 되는데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냐’며 걱정하지만, 그녀에게 연기는 직업 그 이상의 의미인 듯 보였다.

“원래는 쉰다섯까지만 하려고 했어. 그런데 20년을 더 하고 있네. 언젠가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고두심한테도 얘기했어. ‘언니 그만둬야 할 때 같은데’ 싶은 맘이 들면 언제든 말하라고. 총기 있을 때 똑 부러지게 정리해야지, 말도 느려지고 연기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방송국에서 부른다고 기신기신 나가면 어떡해?” 김영옥은 나잇값의 무게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면 똑같이 틀려도 더 부끄럽고, 같은 실수를 해도 면목이 안 선단다. 젊을 때는 객기 부리느라 부러 늦게 나가기도 했는데 지금은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후배들보다 일찍 촬영장에 나간다고 했다.

“어디 촬영장이었던가. 피디가 어린 연기자들을 혼내더라고. 선배들 다 와 계신데 어떻게 신인이 지각을 할 수 있냐고. 그러자 옆에서 한진희 씨가 그러더라고. ‘원래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이 빨리 나올 수밖에 없어. 늙으면 아침잠이 없어지잖아요. ’ 그 말을 듣고 내가 맞다고 했지. 젊을 때는 잠도 많고 실수도 해. 나이 들면 다 아니까 더 이상 못하지.”

여배우를 지켜주는 숨은 기사, 남편

인터넷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치면 독특하게도 가장 먼저 나타나는 연관 검색어가 ‘김영옥 남편’이다. 그녀의 남편 김영길 씨 또한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으로 지금은 은퇴 생활을 즐기며 그녀를 든든하게 외조한다고 했다. “남편이 그래요. ‘당신이 돈을 벌지 않아도 좋은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고. <아침마당> 같은 데서 출연 의뢰가 들어오면 정작 나는 심드렁한데 남편은 한번 해보라고 등을 떠밀어요. 그래놓고는 가서 자기 흉을 봤다고 나가지 말라고 말을 바꾸지. 사람이 왜 그렇게 이율배반적인지 몰라.(웃음)” 그동안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세심한 애처가인 남편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유별난 부부 금슬이 큰 관심을 받았다. 매사에 통이 크고 낙관적인 김영옥과 달리 배려 깊고 세심한 남편의 조합이 독특해 보였던 것. 특히 연애할 당시에는 항상 차 문을 직접 열어주고, 길을 걸을 때도 여자의 오른편에 서서 챙겨주는 자상함에 그녀도 반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런데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고 모든 사람한테 다 친절한 게 문제야. 누구는 신랑이 자기한테 관심 좀 가져줬으면 한다지만, 우리 남편은 그렇게 걱정이 많고 염려가 많아요. 어떤 성격이든 좋은 점이 있으면 맘에 안 드는 점도 있기 마련이야. 남편이라고 여편네가 예쁘기만 하겠수. 부부가 성격이 꼭 맞는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아무리 금슬이 좋아도 상대방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결혼 초에는 촬영을 마치고 새벽에 들어가는 날이 잦아 일을 그만두라는 잔소리도 적지 않게 했단다. 아무리 제몫을 잘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아도 가사와 육아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주부의 숙명 아니던가.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아내와 엄마 역할을 당차게 해낸 그녀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족들에게 부채감이 있는 듯했다.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점이 참 많아요. 내가 이렇게 나이 들어서까지 일을 하니까 주위에서 오해를 하더라고. ‘분명 저 사람 남편이 사업하다 망해서 저 나이까지 일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실제로 은퇴하고 나니까 주위에서 투자하라고 참 많이도 달려듭디다.”

은퇴 후 남편이 잠시 의류 유통업에 손을 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평생 방송 일밖에 모르고 산 남편이 험한 유통업을 하면서 몸 고생 마음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내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어느 날인가 자면서도 끙끙 앓는 남편을 보니 안 되겠다 싶었단다. “그 일 이제 그만해. 당신 이러다 죽겠어.” 아내의 진심어린 걱정에 남편도 투자금을 바로 회수하고 일을 접었다.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평소에 그렇게 잘하던 부인이 남편이 정년퇴직한 후에는 무섭게 돌변하더래. 집에 들어앉아서 컴퓨터만 하는 게 보기도 싫다고. 쫓아다니면서 잔소리하는 것도 아닌데, 컴퓨터 좀 하면 어때? 오죽하면 이런 농담이 나왔겠어요. 세 남자가 아내한테 얻어맞고 찜질방에 왔대요. 왜 맞았나 했더니, 40대는 밥 달라고 했다고, 60대는 어디 가냐고 물어봤다고, 80대는 아침에 눈을 떴다고 때리더라는 거야.(웃음)” 가장의 권위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시대를 풍자하는 농담이겠지만, 그녀는 황혼에 접어드는 시기에 원만한 부부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런 말하면 좀 안됐지만, 내가 살면서 보니까 확실히 어떤 면에서나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한 존재야. 특히 나이가 들수록 여자는 성숙해지는데 남자는 하나같이 아기 같아지더라고. 요즘 ‘아버지 부재 시대’라는 말을 하는데, 젊은 엄마들이 일부러라도 남편 기 좀 살려줬으면 좋겠어. 나도 반성할 바지만….(웃음)”

그렇게 함께 살 부비며 살아온 세월이 50년이라 이제는 아옹다옹하면서도 우정처럼 변해버린 것 같다며 웃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이 눈에 띄면 아무 고민 없이 사다가 먹이게 되고, 함께 식사할 때도 남편 젓가락이 자주 가는 반찬은 좀 덜 먹게 된다는 것. 굳이 겉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애정, 그것은 거세게 퍼붓는 소낙비 같은 사랑이 아니라 따스하고 촉촉하게 젖어드는 봄비와도 같은 사랑이었다.

그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이름, 어머니

이제는 자녀 모두 마흔 줄에 접어들어 한시름 놓았지만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할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을 그녀는 여전히 미안해했다. 그런 마음 때문일까. 그녀는 지금까지도 매년 직접 김장을 담가 세 자녀에게 나눠주고, 철마다 좋은 음식이나 물건이 들어오면 자식들 것을 챙긴다. 딱히 노후 대비랄 것도 없다. 부부 둘이 살면서 끝까지 아이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도와줄 수 있으면 제몫 다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따금 오랜만에 복귀해서 ‘애 다 키워놓고 왔어요’ 하는 젊은 탤런트들 보면 참 부러워요. 나도 마음만 먹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 괜히 약이 올라.(웃음) 어쨌든 우리는 그 당시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았으니까. 내가 일을 한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는지 몰라도, 애들 한창 클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한 건 참 후회가 돼요.”

그러면서도 “되돌릴 수도 없는데 뭘 어떡하겠수” 하고 심드렁하게 덧붙인다. 어쨌든 그녀는 일하는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까. 집에 있는 시간은 최대한 아이들과 함께 있으려 노력했고, 가사 도우미에게 하나하나 일러가며 아이들 돌보는 일도 신경 썼다. 일요일이면 피곤에 지쳐 늦게까지 자는 엄마가 야속해 일부러 눈꺼풀을 잡아당기던 둘째 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긴 하지만. “만약 내가 전업주부였다면 아이들한테, 남편한테 더 잘했을까? 그건 장담할 수 없다고 봐요. 오히려 더 게을러졌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이들을 너무 챙겨서 응석받이로 키웠을 수도 있을 거야. 어떤 상황에서든 100% 잘하기는 힘들어.”

직장에 다니면서 가사와 육아까지 담당하느라 발을 동동 구를 젊은 주부들에게도 한마디 건넸다. “직장 다니는 것 때문에 혹시 아이에게 소홀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 가만 보면 직장에 다니는 여자들이 더 기죽어 산다니까. 남편들이 너무 모르셔. 오히려 직장 다니는 엄마들이 모자란 시간만큼 애들한테 더 잘해요. 그리고 하나나 둘이나 키우는 건 비슷하니까 꼭 둘까지는 낳아야 돼. 저희들끼리 의지하면서 저절로 큰다니까.”

엄마 같은 친근한 조언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식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걸, 그녀는 강조하고 싶어 했다. 김영옥의 두 딸은 엄마가 집에 같이 있어주지 못한 게 한이 되었는지 둘 다 아이를 낳자마자 전업주부로 집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엄마처럼 일을 했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하는 소리를 한단다. 하나뿐인 의사 며느리도 휴직 기간을 오래 갖고 자녀 양육에 정성을 기울이는 똑똑한 엄마다. 자식들이 각자 엄마가 돼서 아이들을 키우며 제 나름의 가정을 잘 일궈나가는 모습은 그녀에게 적지 않은 행복 중 하나다. 자식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는 문득 어머니를 회상했다.

“친정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내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의 70%는 우리 어머니야. 내가 쉰둘일 때 어머니가 가셨는데,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한 것, 외롭게 해드린 것이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영원히 그럴 것 같아.” 사랑은 강줄기와도 같아서 위에서 아래로, 더 넓은 곳으로 흐른다. 이제 그녀가 어머니가 되어 자식들을 보니, 가끔씩 잘못하는 부분도 보이고, 그로 인해 나중에 후회할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내색하기는커녕 “나중에 나 가고 나서 애달프다고 하지 마.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 거 몰라?” 하고 안심시키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다시 친정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교육을 열심히 시키든,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든, 자식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면 거저는 없더라고요. 며느리와 사위들한테는 더 예의 지키고, 그저 ‘이만하면 괜찮지’ 하면서 약게 굴어야 돼요.”

일흔이 넘어도 계속되는 인생 공부

인터뷰 도중에도 각종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의뢰하는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내가 인기에 목숨 걸 나이도 아니고, 이젠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서 못한다”는 것이 거절 이유였지만, 사실 70대의 노년 탤런트가 이처럼 대중들의 인기를 오래 받는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일 듯했다. 얼마 전, 모 아침 교양 프로그램에서 김영옥이 정형돈, 조권 같은 젊은 연예인들을 제치고 ‘2010년 미친 존재감’ 1위에 등극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휴, 난 그게 무슨 소린지도 몰랐어. 욕 비슷하게 한 것 때문에 뽑힌 것 같은데, 1등이라니까 좋은가 보다 한 거지. 노인네가 인기 좋아봤자 뭘 한다고. 신경 안 써요.” 드라마를 통해 만난 동료 배우들과 가족 같은 정을 나누고, 이따금 만나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인연을 만든 것도 이 일을 하면서 얻은 선물이다. “조형기, 양희경 이따우 것들은 아예 호칭이 ‘엄마’야. 반효정, 김용림, 백수련 이런 친구들도 다 친한데 시간이 없어서 자주 보진 못하지. 연말에는 고두심 만나서 노래방에 가기로 했어요.”

세상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배우가 있다. 데뷔하자마자 주연 자리를 꿰차고도 금세 잊히는 배우,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20대 못지않은 피부로 각종 CF를 섭렵하는 배우, 늘 도전하는 연기로 해외 영화제에서 이름을 드높이는 배우…. 누군가는 그녀를 할머니 전문 배우, 만년 조연 배우라 부를지도 모른다. 언젠가 김영옥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왜 나는 왕비 역할을 못하냐?”고 PD에게 따졌다는 일화처럼, 그녀에게도 화려하고 좋은 역할만 맡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닐까?

“꿈이 달랐다고 봐요. 어떤 배우는 ‘나는 이런 역할 아니면 못해’ 하고 한계를 지어요. 그런데 나한테는 어떤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특별한 목표가 없었어요. 아니, 목표가 매번 달랐다고 얘기해야 맞겠지. 매번 다른 배역이 올 때마다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기분이 들었고. 완전히 바뀔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늘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려고 애썼어요. 할 수 있는 연기가 많으니까 계속해서 믿음을 주고 찾아주는 거겠지.” 그녀의 몸을 거쳐 간 셀 수 없이 다양한 캐릭터, 그리고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수많은 인생. 그녀의 손에 새로운 책이 쥐어질 때마다 항상 새로운 인생 공부가 시작되곤 했다.

“대본을 보면 참 좋은 글도 많았어요. 그게 내게는 다 공부였지, 뭐. 남의 인생을 수없이 들여다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만약 이 일을 안 하고 그냥 늙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고집 세고 옹졸한 늙은이가 됐을걸.”

김영옥의 연기가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녀가 다른 사람이 되어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김영옥’ 속에 그 캐릭터를 녹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매번 새로운 드라마를 할 때마다 ‘새로운 인생을 산다’고 표현한다. 치매 걸린 노인도 되어보고, 자식 잃은 어머니도 되어보면서 그렇게 점점 성숙해지는 자신의 오롯한 인생을 한 걸음씩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찍고 나서 애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어요. ‘만약 내가 진짜로 그렇게 되면 병원에 갖다 놔. 내가 모아놓은 돈이 그만한 돈은 될 테니까. ’ 괜히 불효랍시고 집 안에 모셔두는 거 가족들이 감당 안 되는 일이거든.” 이런 이야기를 시원하게 내뱉으면서, 그래도 찾아주는 이가 있을 때까지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날까지는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김영옥.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인생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물음표라지만, 그녀는 그 자체를 충분히 즐길 줄 아는 멋진 할머니였다. 새로운 대본이 들어올 때마다 ‘요건 내가 맛있게 연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신이 난다는 그녀. 아주 오래오래, 그녀가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연기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글 홍유진 사진 성균

출처: 리빙센스 1월호

by 트래블러 2011. 2. 27. 2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