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투명한 교육을 꿈꾸다

김형태 교육위원


언제부터 학교가 이렇게 됐을까? 어른들의 욕심으로 얼룩진 비리 사학의 진흙탕….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그 속에서 올곧고 순정하게 빛나는 희망 하나를 발견했다. 투명한 양심의 상징으로 교육의원이 되어 다시 돌아온 김형태 의원을 만났다. Written by 홍유진 Photo by 이한마루

온갖 이변이 속출했던 지난 6·2지방선거. 전교조 출신 교육감이 처음으로 탄생된 것보다 더 놀라운 결과 중 하나가 바로 김형태 교육의원의 당선이었다. 학교장, 장학사 출신 등 화려한 경력과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후보를 제치고 40대 중반의 젊은 해직 교사가 접전을 벌인 끝에 당선됐다. 그리고 그 결과에 가장 기뻐하고, 반가워 한 이들은 다름 아닌 학부모와 학생들이었다.
“그저 평범한 교사였어요. 행복한 학교를 꿈꾸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보통 국어 선생이었죠. 그랬던 제가 시위를 하고, 사재를 털어 선거운동을 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몸이 약한 아내는 반대도 많이 했어요. 대의를 위해서 가족들에게는 정말 못할 일을 많이 했지요.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선을 위해 고생해준 어머니, 아내, 아이들, 지방에서 제 소식을 듣고 일부러 서울에 올라와 투표한 제자들과 학부모들, 그 외에 안팎에서 제 일 같이 도움을 아끼지 않은 고마운 분들이 많았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기도 했죠.”

시인을 투사로 만든 비리 사학의 정체
불과 지난해의 일이었다. 지난 20년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의 20년도 영원히 선생님일 줄 알았던 시절. 예상치 못한 해직 통보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1인시위를 했던 218일의 고통스런 시간들, 그리고 교육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올해. 그렇게 교육의원으로 교육계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불과 1년 6개월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는 어마어마한 양의 변화의 바람과 맞닥뜨려야 했다.
김형태 의원의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때 양천고 비리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사립고등학교인 양천고등학교는 불법급식 수의계약,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동창회비 징수, 학교 운영회 회의록 조작, 공사비 허위로 부풀리기, 체육복 불법판매, 도서실비 불법징수 등 온갖 사학비리의 온상이라 할 만큼 정도가 심했다. 평범한 국어교사였던 그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것은 새로 온 행정실장으로부터 이사장의 위법, 탈법 행위에 대한 전말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이사장이 제멋대로 쌈짓돈처럼 학교 자금을 가져다 쓴다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행정실장은 가짜 영수증으로 비는 자금을 메우느라 여념이 없고요. ‘이사장님 지금 시대가 변했습니다.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 결제가 이뤄져야 합니다.’ 조언을 해봤자 듣지 않는다더군요.”
아이들의 고충을 듣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한창 자라날 나이에 형편없는 급식을 먹고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부당한 차별로 상처받은 아이가 그에게 찾아가 하소연할 때는 죄책감마저 느꼈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
“저도 평범한 월급쟁이에 불과한 한 사람의 교사였을 뿐인데 두려움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저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묵과하고 있다면, 이건 공범과 다를 게 없겠구나 하는 판단이 들었어요. 결국 뜻을 함께한 선생님들과 함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개선을 요구했죠.”
지난 수십 년간 독재를 하다시피 사학 권력을 만끽해온 이사장은 ‘교육의 근본’을 지키라는 교사들의 간절한 외침을 간단히 무시했다. 어떻게든 학교 안에서 일을 해결해보고자 애썼던 선생들의 용기는 그저 무력할 따름이었다. 결국 김형태 의원과 동료들은 서울시 교육청 등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 부당한 잘못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조차도 이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사학 권력 앞에서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교육청에서 사립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도 이미 사학 권력과 한통속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어요. 내부고발을 한 사람의 신변을 법적으로 보호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게 교육청인데 오히려 학교측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더군요. 그리고 하루아침에 직위해제 되었고요.”

결국에는 정의가 반드시 이긴다는 진리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깊고 음침한 권력의 힘 앞에서 시 쓰기와 꽃 가꾸기를 좋아하던 고등학교 국어교사는 그야말로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부당한 해임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매일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나마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었는데 학교 측 사람들은 그마저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든 피켓을 빼앗거나 훼손하기도 했고, 학교 앞에서 시위를 못하도록 법원에 접근금지 신청도 했단다. 하지만 김형태 의원은 추운 날도, 더운 날도, 비오는 날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신념에 의한 결정이었으므로 불의에 맞서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가족들이 받을 고통이었다. 아내는 제발 그만두고 좋아하는 꽃집이나 차리자고 사정했고, 한창 사춘기였던 두 아들은 갑작스런 아빠의 변화된 모습 앞에서 적응을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도저히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아이들 때문에요. 저 이전에도 학교의 만행에 대해 항의하다가 부당한 해고로 떠나간 선생님들은 많았어요. 그저 사라졌지요.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바른 소리를 하면 저렇게 쫓겨나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되는구나….’ 아이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선생이었으니까요.”
학교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양천고 제자들은 외롭게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그의 곁을 지나가면서 “선생님 죄송해요. 저희 때문에….”라며 흐느꼈다.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고 있는 그를 지켜보며 동료교사들도 모두 미안해했다.
그렇게 김 의원은 썩을 대로 썩어 들어간 교육 비리에 맞서 싸우는 청렴하고 양심적인 교사의 상징이 됐다. 그의 진심은 점차 밖으로 알려졌다. 진심이 전해지니 자연히 힘이 모아졌다. 그의 1인 시위는 결코 혼자서 완성된 게 아니었다. ‘양천고 김형태 선생님 부당파면 철회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시민 단체를 비롯, 언론과 학생? 학부모들도 관심을 갖고 지지를 보내준 덕분에 지난해 국감에서 양천고 비리문제가 크게 다뤄지기도 했다. 또 지난해 MBC <PD수첩>과 공동으로 ‘제 9회 투명사회상’을 받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을 버팀목 삼아 그는 교육 비리에 맞서 싸웠고 결국 양심을 지킬 수 있었다.
그가 교육의원 출마를 결심했던 계기는 이러한 경험이 배경을 이루었다. 평범한 교사인 그를 투사로 만들었던 부당한 교육계 비리들, 그 어둡고 거대한 권력 앞에 무릎 꿇고 싶지 않았다. 또 해직교사 신분으로는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던 답답한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제가 했던 행동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죠. 하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계란으로도 바위를 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무리 약해보여도 정의는 결국 이긴다는 것을요.”
그렇게 그는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해 강서, 양천, 영등포구 교육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동료교사들과 학부모들의 힘이 모였음을 그는 고마워했다. 그가 당선됐을 때, 자기 일 같이 기뻐하고 함께 울던 사람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깨끗한 교육을 위해 그는 이제 한발 내디뎠을 뿐이었다.

이제, 새로운 교육의 시대가 열린다
김형태 의원이 서울시의회에 출근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두 달여가 지났다. 교육의원이 되기 전에도 후에도, 그는 ‘교육 비리 척결’의 한 길을 걷고 있다. 그에게 희망을 거는 사람도 많아졌다.
“지금 제 앞에 검토를 기다리는 민원이 50여개 정도 됩니다. 제가 맡고 있는 영등포, 양천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민원이 들어오고 있어요. 그만큼 교육비리가 전국적으로 만연하다는 거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청입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지도 감독 권한을 제대로 썼다면 개별 학교들이 이렇게까지 버젓이 위법 해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교육청의 직무 유기부터 바로 잡아가야죠.”
그가 교육 비리 척결에 이렇듯 모든 것을 건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너머에 큰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거창하지도, 불가능하지도 않다. 그의 바람은 단지 ‘아이들과 교사들이 학교에서 행복해지는 것’뿐이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해요. 한 해에 300명이나 자살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뭘 해줄까’를 고민해야 하는 학교가 오히려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고 있죠.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당연히 스트레스가 쌓이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죠.”
곽노현 서울 교육감은 ‘가장 좋은 방부제는 햇볕이다’라고 했다. 이제 밀실행정의 시대는 가고 깨끗하고 투명하게 공개된 행정이 펼쳐져야 한다는 뜻이다. 김형태 교육의원을 포함해 보다 깨끗한 교육에 대한 의지를 지닌 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이상 이는 꿈이 아닐 터였다.
“교육의 3주체는 학부모와 학생, 교사입니다. 그들이 자기 자리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의 방향,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것이 지금 시점이죠. 지나친 무한 경쟁과 서열화로 위화감을 조성하는 교육이 아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협력하고 배려하는 핀란드식 교육으로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위해서 꼭 갖추고 싶은 제도 중 하나가 바로 ‘국립대학 공동운영제’다. 프랑스처럼 모든 대학을 공동 운영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전국의 국립대학만이라도 벽을 낮추자는 것이다. 재정과 제도를 공동화 하고 교수와 강의를 순환제로 운영해 학생이 전국의 어느 국립대학을 나와도 취업에 영향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서열화의 정점인 서울대의 높은 벽만 사라져도 지금과 같은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는 사라질 것이라는 게 김 의원의 생각이다.
“우등생과 열등생의 차이가 뭔 줄 아세요? 공부 잘 하는 아이는 시험 끝나고 잊어버리고, 못하는 아이는 시험 보기 전에 잊어버린답니다. 어쨌든 머릿속에 지식이 남지 않는 건 똑같다는 거죠. 공교육의 근본적인 맹점을 얼른 바로잡아야 해요.”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다. 가난한 이를 보면 측은지심을 가지고 도와야 한다. 정의는 반드시 불의를 이긴다. 우리가 책에서, 텔레비전에서, 학교에서 배운 온갖 진리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사람들을 바보 같다거나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 왔다. 이제 우리는 그를 통해 그동안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진리들이 진정한 진리임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by 트래블러 2011. 12. 16. 2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