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커피를 만드는 남자

왈츠앤닥터만 커피박물관 박종만 관장

쉼 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북한강. 수백 년을 흘렀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흐를 거대한 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그윽한 커피 향이 나를 휩싸고 돈다. 너무도 향기롭고 황홀하여, 100년이 가도 사라지지 않을 그런 향기가….

클래식과 원두 향이 어우러진 그곳에 가다

박종만 관장을 만나기 위해 커피 박물관을 찾은 날은 매주 클래식 음악회가 열리는 금요일이었다. 평소엔 티셔츠 차림이다가도 이날만큼은 멋스럽게 턱시도를 차려 입는다는 박관장은 고풍스러운 박물관의 정경과 무척 잘 어울렸다.

경기도 남양주,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을 마주보고 서 있는 왈츠앤닥터만 커피박물관은 마치 커피로 지어진 성과 같은 모양새다. 작고 소박하지만 커피의 역사와 종류, 그리고 향과 맛까지 커피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잘 꾸며놓았다.

“벌써 169회를 맞는 금요음악회에요.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뿐인 영 아티스트 초청 연주회 날인데 날을 잘 잡으셨네요. 커피와 클래식, 얼마나 잘 어울립니까? 뒤풀이로 와인 파티도 한답니다. 금요일 밤을 장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죠.”

커피 관련 유물을 진열해 놓은 전시실이 금요일 오후 6시만 되면 작은 콘서트 홀로 바뀐다. 오래된 물건을 보여주는 단순한 박물관에서 벗어나 음악이 있고 커피가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 변신하는 것이다. 100년 가는 음악회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이렇게 작은 홀에서도 클래식 대가들이 찾아와 연주할 수 있는 문화를 꿈꾼다고 했다.

"나이 들면서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끝없는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답은 간단해요. 첫째,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두 번째는 돈벌이가 되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 인생은 커피로 인해 무척 행복하고 풍요로워졌습니다. 이 박물관은 그런 커피를 위한 제 보답입니다. 제 인생의 보람이기도 하지요."

평범한 사업가, 커피와 기적처럼 만나다

우리나라의 커피소비량은 세계 11위로 국민 한 사람당 일 년에 347잔을 마신다고 한다.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가 커피일 정도로 커피는 이미 우리 일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호품이 되었다. 그런 커피가 유독 박종만 관장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왜일까?

"사실, 저도 똑같았습니다. 습관처럼 매일 마시긴 했지만 특별히 커피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그랬던 커피가 제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20년 전, 당시 인테리어 사업체를 운영하던 박 관장이 출장길에 우연히 방문한 일본 커피공장. 그곳에서 그는 마치 별천지를 발견한 듯 했다. 문을 여는 순간, 이곳저곳에서 커피콩을 볶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고, 훅 하고 내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연기에 가슴이 덥혀졌다. 빨갛게 익은 커피 열매의 색에 반하고 세포 하나까지 일깨우는 듯한 커피의 향과 맛에 매혹된 나머지 그 후로 그는 커피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한참을 고민한 후에 그 커피를 한국 사람에게도 마시게 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인테리어 사업은 어떻게 했냐고요? 깨끗하게 정리했죠."

당시 우리나라는 마담이 곁에 앉아 따라주는 소위 '다방 커피'문화가 대세인 실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세운 왈츠 코리아 프랜차이즈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원두커피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한 때 체인점이 70여개까지 늘 정도로 번성했다.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커피를 마셨는지 몰라요. 공부도 많이 했죠.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했어요. 한번은 블루마운틴 원두가 이렇게 비싼 이유가 뭘까, 궁금해서 자마이카까지 다녀오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커피에 대한 열정은 계속 이어져 지금도 그는 매년 커피의 원류를 찾아 아프리카와 아랍 등지의 커피 원산지를 탐험하고 있다.

다방에서 문화와 예술과 낭만을 논하다

미처 몰랐던 사실 하나.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가 무려 100년이 넘는다는 것이다. 1896년 고종황제가 최초의 커피 애호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커피 관련 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실정이다. 박종만 관장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럽에 가면 100년 역사를 가진 식당, 200년이나 한 자리에 있었던 책방 등 참 흔하게 볼 수 있어요. 하물며 집에서 쓰는 침대마저도 백년 된 게 많아요. 3대조 할아버지가 쓰시던 거 그대로 물려받는다고요. 그런 것에 대한 부러움이 참 커요. 우리에게는 왜 그런 게 없을까……."

그는 올해 하반기 '다방 展'을 열 예정이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산실, '다방'의 본래적 의미를 되짚어보자는 취지다.

"한번 생각해보자고요. 가난한 문인들은 집에 전화도 없었어요. 대충 점심 지나고 보자, 하고 다방에서 보기로 한단 말이죠. 그런데 사정이 생겨 상대방이 못 오게 되면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종일 기다리는 거죠. 그 시간에 뭐하겠어요? 낙서하고 그림 그리고……. 거기서 예술이 시작된 겁니다. 그게 커피입니다."

천재 시인 이상도 '제비'라는 다방을 직접 운영했을 정도로 서울 명동은 수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문화적 진원지였다. 그러나 현재, 돌체 다방, 은하수 다방, 문예 싸롱 등 이름난 명물 다방이 있던 자리에는 주물로 만든 표지만이 그 흔적을 희미하게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의식을 하던, 하지 않던 커피는 우리의 삶과 같은 속도로 늘 함께 하고 있다. 커피와 역사, 커피와 연애, 커피와 문학……. 아주 오래전부터 커피는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심각한, 그러나 아름다운 중독으로 자리 잡은 건 아닐까? 그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박종만 관장은 오늘도 커피를 마시며 새로운 모험을 계획하고 있다.

"100년 전부터 커피를 마셔왔듯, 100년 후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커피를 마실 겁니다. 그 때에는 우리 땅에서 재배된 커피도 마셔야 하지 않겠어요? 기다려 보세요. 아주 기가 막힌 커피가 될 테니까요."

글 홍유진_ 사진 박영현

by 트래블러 2009. 8. 7. 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