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을 통해 방송된 ‘직장인 밴드 도전기’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무대 위에서 얼마나 멋지게 날아오르는지를 보여줘 많은 시청자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그 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쥔 실력파 직장인 밴드가 있다. 그들을 흥분하게 하는 건 승진도, 월급 인상도 아닌 Funk & Groove!


늦여름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지난달의 어느 일요일, 메리고라운드를 만나기 위해 홍대의 한 연습실을 찾았다. 한두 명씩 멤버들이 모이다 보니 어느새 7명. 지난 아시아컴퍼니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거머쥔 실력파 밴드 메리고라운드는 보컬 한수희와 조현상, 키보드에 유승혜와 박용준, 기타 정지민, 베이스 김정수, 드럼 최용석으로 이뤄져 있다. 메리고라운드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내 밴드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중 뜻이 맞는 이들끼리 모여 만든 팀이다. 지난달,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을 통해 대상을 타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보컬을 비롯한 멤버들도 회사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잘 봤다며 사인을 받아가는 직원도 있었을 정도. 그러나 메리고라운드는 이미 다른 밴드 대회에서도 수많은 상을 받았고, 홍대 클럽 무대에 설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밴드다. 최근에는 대상 수상곡인 ‘달려! 미스터 Funk’를 비롯해 자신들이 작사, 작곡한 음악들로 자신들만의 음악 색깔을 뿜어내고 있다. 여자 보컬을 맡고 있는 한수희 씨와 기타의 정지민 씨는 밴드 활동을 하면서 연을 맺은 부부 사이다. 즐거운 취미생활을 통해 인생의 짝까지 만났으니 이들에게 밴드 활동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번 수상은 더욱 의미가 깊다고 했다. “우리도 우리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곡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차에 자작곡으로 실력을 겨룰 수 있는 대회에 도전하게 된 거죠. 제가 곡을 만들고 보컬 조현상 씨가 가사를 붙였는데 너무 괜찮은 거예요.”(유승혜)

“사실 제약 사항이 무척 많았어요. 일단 저희 부부가 오랫동안 계획하고 있던 여행이 대회 일정과 딱 겹치는 바람에 못 나갈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애초에 기타와 여자 보컬이 없어도 가능한 곡으로 썼어요. 하지만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천안함 사고 때문에 모든 행사 일정이 뒤로 미뤄졌어요. 여행을 다녀온 뒤 합류할 수 있게 됐죠.”(한수희)

최고의 회사를 다닌다는 자부심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더 자랑스럽다는 메리고라운드 멤버들. 이 젊은 직장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듣는 사람의 피까지 뜨겁게 달구는 힘이 있었다.
Interview
-이번에 대상 받은 것을 축하한다. 상금은 어떻게 썼나?
정지민 : 생각보다 상금이 많아서 우리도 깜짝 놀랐다. 이런 부수입이 대회에 도전하는 묘미가 되기는 하지만(웃음). 상금 5백만원은 일단 저축해두었다. 나중에 우리 자작곡으로 싱글앨범을 낼 계획인데 그때 녹음비로 쓸 거다.
-KBS <남자의 자격> 팀과 함께 도전했는데, 실제로 보니 실력이 어떻던가?
유승혜 : 직장인 밴드라고 해도 이전에 조금씩 배운 경험이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남자의 자격> 팀은 거의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무대 매너도 좋았다. 역시 끼가 있는 사람들이 다르긴 다른 것 같다.
-곡을 직접 들어보니 흥겹고 신나는 리듬이 인상적이다. 아마추어가 작곡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도 있는 듯하다.
한수희 : 이 곡을 만든 유승혜 양이 바로 유재하가요제 은상 수상자다. 우리 밴드의 음악적 지주라고 할까? 우리 밴드의 색깔을 가장 잘 녹여낸 곡인 것 같다. 다른 무대에서도 불러봤는데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유승혜 : 원래 음악을 했는데, 여러 가지로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취직을 했다. 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잊고 살다시피 했는데 대학교 선배이기도 한 정지민 씨가 ‘직장인 밴드 한번 해볼래?’ 하고 가볍게 권유하기에 별 생각 없이 시작했다. 이렇게 죽자 사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일 줄 몰랐다.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다시 음악을 하면서 전보다 사는 게 재미있는 것은 확실하다.
-회사 업무가 많을텐데, 연습 시간 맞추기가 쉬울 것 같지 않다.
한수희 : 야근이나 출장이 많아서 일요일 외에는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하지만 다들 의욕이 있어서인지 매주 한 번씩은 꼭 연습하자는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다. 이제는 일요일마다 얼굴을 보지 않으면 왠지 섭섭하다.
-직장인 밴드라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유승혜 : 우리는 스스로 회사 소속을 밝히지 않는다. 물론 회사에서 밀어주면 더 편하고 좋은 건 있겠지만 우리 이름으로 인지도를 얻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인 밴드여서 좋은 점은 늘 가까이에 함께 있다는 것? 갑자기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사내 메신저로 즉시 주고받을 수도 있고, 쉬는 시간에 잠깐 만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 이건 회사에 비밀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잘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서로 맞춰가는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최용석 : 다들 어느 정도 악기 연주 경험이 있는 반면 김정수 군은 베이스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밴드에 들어왔다. 그런데 엄청난 연습벌레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까지 연습하는 걸 보고 나머지 멤버들도 많은 자극을 받았다.
김정수 : 처음에는 뭘 모르고 시작했는데 점점 실력이 느는 게 보이니까 재미있었던 것 같다. 재미있으니까 더 몰입하게 되고, 더 잘하고 싶었다.
-요즘 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직장인 밴드가 많이 늘고 있는데, 대부분 자기만족 수준에서 끝나거나 몇 년 안 돼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많다.
한수희 :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음악적인 욕심이 굉장히 큰 편인 것 같다. 웬만한 밴드 대회는 다 나가는 편이다. 일단 목표가 생기면 연습할 때도 더 의욕과 결속력이 생기는 것 같다.
정지민 : 맨 처음 대회에 나갔을 때는 우리도 예선에서 꼴찌를 했다.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아무튼 너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만약 거기서 그쳤다면 우리도 흐지부지됐을지 모르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많이 배우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었던 것 같다.
-밴드 멤버들 간의 팀워크도 음악적 성취만큼이나 중요할 거라 보는데.
유승혜 : 클럽 공연 가서 보면 인디밴드들도 공연 끝나고 내려오면 마치 남처럼 흩어지더라. 팀워크 없이 프로젝트로 엮인 팀이 종종 있더라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연습 때건 공연 때건 끝나면 무조건 뒤풀이를 해 노는 게 반이다.
한수희 :그런 프로 인디밴드보다는 우리가 더 신나게 공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게 직업이 되면 힘들어진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우리에게 음악은 일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낙원이다.
-마지막으로 공식 질문을 던지겠다. 나에게 메리고라운드란?
정지민 : 또 하나의 가족?(일동 야유) 회사 홍보하려는 게 아니고, 정말 그렇게 느껴진다.
조현상 : 놀이다. 우리가 여기 아니면 어디 가서 놀겠나. 우리 직장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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