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컬러와 감촉의 리넨으로 만든 도트 패턴 아기 신발. 신는 아이 발도 편하다.

가을비가 추적거리는 어느 목요일 아침에 만난 윤아영 씨는 블로그와 쇼핑몰을 보면서 상상했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앳된 외모와 애교가 흘러넘치는 목소리는 물론 손수 만든 소품까지 그야말로 ‘러블리’ 그 자체. 아토피로 고생하는 둘째 아들을 위해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오가닉 코튼으로 내의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녀에게 ‘에코맘’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최근에 <에코맘 윤아영의 아이 옷 만들기>란 책을 내면서 많은 주부의 워너비가 되고 있지만, 실제 만난 그녀는 아이에게 극성인 완벽주의 주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주부 9단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살림 솜씨
열두 살, 열한 살인 연년생 아들 둘을 둔 엄마치고는 너무도 앳되고 여린 외모에 한 번 놀랐고, 모기같이 가느다랗고 여린 목소리가 아들 앞에서는 우렁우렁하게 커진다는 데 또 한 번 놀랐다. 소위 말하는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그녀는 남들보다 결혼과 출산이 빠른 편이었다. 솔직한 고백에 따르면 딱 3개월 해본 사회생활이 그렇게 지긋지긋했단다. 오랜 연인이었던 지금의 남편과 서둘러 결혼하며 다복한 가정을 꿈꾼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그녀가 대학에서 배운 의상 디자인은 첫째 율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빛을 발했다. 이상적인 가정을 꿈꾸는 스물다섯 어린 주부가 손수 만든 겉싸개며 배냇저고리는 모두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어여쁘고 사랑스러웠다.
“엄마가 살림을 그렇게 잘하셨어요. 계절마다 테이블보며 피아노보를 싹 갈고, 늘 뭔가를 만드시거나 요리를 하고 계셨으니까요. 저희는 한 번도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싫다는 투정에도 다 맞춰주셨고요. 그게 좋아 보였던 것 같아요. 사회적인 성공보다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식 많이 낳고 다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그게 제 유일한 꿈이었으니까요.”

“다른 아기들이 모두 분홍색이나 하늘색 등 천변일률적인 옷들만 입고 있으니 그 안에서 우리 애가 확 눈에 들어오기는 하더라고요. 병원 간호사들이 어느 브랜드 옷이냐며 묻기도 하고…. 직접 만든 옷이 이렇게 아이를 특별하게 만드는구나 싶어 어깨가 으쓱했죠.” 그때부터 아이 옷은 물론 지인들에게도 아기 신발 등을 직접 만들어 선물하곤 했다. 그렇게 시작된 취미는 이듬해 아토피를 앓는 둘째 준이가 태어나며 본격화되었다. “첫째는 안 그랬는데, 똑같이 먹이는데도 준이는 체질이 그렇더라고요. 아토피가 심해지면 정말 심각하거든요. 잠도 못 자고 진물이며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엄마는 애만 쳐다봐야 하죠. 그러기 전에 뭐든 다 해주고 싶었어요. 병원 치료도 받고 먹이는 것도 신경 썼지요, 인테리어도 친환경으로 싹 다 바꿨어요. 그러다 친정아버지에게 ‘일본에는 유기농으로 재배한 면사로 만든 원단이 있다’는 얘길 들었죠.” 윤아영 씨의 아버지는 자연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윤동혁 PD다. 아버지의 인맥까지 동원해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유기농 순면으로 준이에게 내의를 만들어 입혔다. 하루아침에 낫지는 않았지만 그런 엄마의 정성 덕분인지 아토피가 점점 나아 일곱 살이 될 즈음엔 언제 앓았나 싶을 정도로 완치되었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중심을 잡다
그렇게 5, 6년을 정신없이 육아에 매달리며 보냈다. 어느덧 그녀의 나이도 서른 줄에 접어들었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더라고요. 집에서 남자애 둘하고 씨름을 하다 보니 저도 너무 지친 거예요. 괜히 남편이 원망스럽고, 모든 일에 가시가 돋쳤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나만의 일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더라고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찾다 보니 그것이 바로 아이 옷을 만드는 일이었다. 아토피로 고통 받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엄마 마음을 알기에, 또 백화점에서 산 비싼 옷으로 허영심을 대리만족하는 대신 직접 만들어 입히는 기쁨을 알기에, 다른 엄마들과도 그런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 “엄마들이 손쉽게 따라 만들 수 있도록 DIY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요. 2004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저희와 같은 콘셉트의 쇼핑몰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주문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쇼핑몰을 운영하면서도 ‘가정이 먼저’라는 원칙은 절대 깨지 않았다. 너무 일이 고되다 싶으면 아예 보름간 ‘출장 중’ 팝업을 띄워놓고 일을 접었다. 어떤 경우라도 아이와 남편을 보살피는 주부로서의 본분을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쇼핑몰 사업은 윤아영 씨에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을 가질 수 있게 해줬지만 힘든 점도 적지 않았다. 사회생활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그녀이기에 여사장이라고 무시하는 공장 사람들의 안하무인 격 태도나, 상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소위 ‘진상’ 손님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던 것. 사업 초기에는 여리고 예민한 특유의 성격 탓에 한 번 시달릴 때마다 며칠씩 앓아눕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상처를 받으며 그녀가 얻은 것은 보다 단단해진 내면과 유연하게 상황을 대처해나갈 수 있는 힘이었다. 일을 하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예전에는 굉장히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이었어요. 신랑이 바쁘다며 내 전화를 빨리 끊으면 바로 다시 전화해 ‘자기는 내가 중요해, 일이 중요해?’ 하면서 울고불고 투정을 부렸던 철없는 아내였죠. 그런데 일을 하니까 남편 입장이 이해가 되는 거예요. 제가 직접 돈을 벌어보니까 돈 10만원 벌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싶더라고요.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타던 모범택시도 제가 직접 돈을 번 다음부터는 한 번도 못 탔어요.”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욕심 많은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도 늦고 공부도 못하는 두 아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읽으라는 책은 쳐다보지도 않고 집 안에서 축구를 한다며 살림을 다 망가뜨려놓지 않나, 장래 희망이라고 말하는 게 ‘손만두집 주인’이라질 않나, 누구를 닮아 이렇게 이상한 아이들이 나왔는지 한숨만 쉬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큰애가 ‘엄마,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려고 하는 것도 다 행복해지려고 가는 거 아냐? 나는 손만두집 근처에만 가도 기분이 좋은데’ 그러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나면서 네 말이 맞다 싶었죠. 그 뒤로는 학원도 다니기 싫다고 하면 안 보내요. 건강하고 잘 크는 것만으로도 됐다 싶어요.”

궁전같이 커다란 집, 완벽한 인테리어, 최고의 학군에 다니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 결혼 전 윤아영 씨가 꿈꿨던 이런 이상적인 가정과는 분명히 다른 현실이지만, 그녀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고 했다. 블로그에는 그녀의 대소사에 함께 웃고, 울고, 감동하는 수백 명의 팬이 있고, 건강하고 착한 두 아들, 세상 그 누구보다 믿음직한 남편까지, 오히려 가진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단다. 지금도 많은 주부가 TV나 책에 나오는 호화로운 집을 보며 환상을 좇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복한 가정의 시작은 남이 가진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내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는 게 아니라 현재 내 곁에 있는 말썽쟁이 아이가 잘 입고 잘 먹을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후 윤아영 씨의 얼굴에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가 번졌다.
윤아영 씨가 제안하는 에코 라이프 실천법
1 먼저 마트를 끊으세요
유기농 제품이 가격은 비싼데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가 없어 의심받곤 하죠. 하지만 특히 먹을거리는 유기농 제품을 이용하는 것이 좋아요. 가족 하루 외식 가격 정도면 한살림이나 생협을 통해 유기농 농산물을 한 달치를 구입할 수 있답니다. 일단 습관적인 마트 쇼핑부터 줄이세요.
2 물려 입는 옷이 좋아요.
일반 면에는 농약, 유연제 등 화학성분이 스며들어 있어 오히려 새 옷이 아이 피부에 좋지 않다고 해요. 오래 입은 옷은 세탁을 거듭하면서 화학성분이 다 빠지게 되죠. 어린아이의 옷인 경우 낡고 헤진 곳에 토끼나 하트 문양을 아플리케로 덧대주세요.
3 너무 새하얗고 부드러운 옷은 의심해봐야 해요.
아기 옷을 만드는 보들보들한 천이 엄청난 양의 유연제와 기름에 담가서 만든 것이래요. 아토피가 있는 아이에겐 치명적이죠. 흰색 옷도 형광증백제로 화학 처리한 경우가 많아요. 약간 누르스름하더라도 자연스러운 색이 피부에 좋답니다.

by 트래블러 2010. 11. 22. 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