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이끈 박칼린 감독의 애제자, 카리스마 있는 보컬 트레이너, 까칠남…. 주말 예능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은 무명에 가까웠던 신인 뮤지컬 배우 앞에 이 많은 수식어를 선사했다. 예능의 힘이다. 최근 뮤지컬 <남한산성>에서 ‘정명수’ 역으로 또 한 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멋진 배우, 최재림을 만났다.

따뜻한 리더십으로 오합지졸 합창단에서 환상의 하모니를 이끌어낸 박칼린 감독, 그 곁에서 무심한 듯 부루퉁한 표정으로 은은한 카리스마를 내뿜던 젊은 남자를 기억하는가. 도대체 정체가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으리라. 박칼린 감독이 애제자라며 아끼는 보컬 트레이너 정도로만 알려진 그는 요즘 가장 촉망받는 신인 뮤지컬 배우, 최재림이다.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연예인들에게 큰소리로 호통을 치는가 하면 앙증맞은 율동으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 그는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충분히 알렸다. 방송은 끝났지만 아직 인기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은 지금, 그는 뭘 하고 있을까. 최재림이 본업인 뮤지컬 배우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대형 뮤지컬 <남한산성>이 공연되고 있는 성남아트센터를 찾았다. 김훈 원작의 <남한산성>에서 그가 맡은 배역인 ‘정명수’는 천민 출신이지만 뛰어난 능력과 야욕으로 청나라 역관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작품에서는 주인공 ‘오달제’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중심인물로, 최재림은 악역을 제대로 소화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게다가 스타급 배우 못지않게 이미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어 이제 겨우 세 번째 작품을 맡은 신인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가 이렇듯 많은 사람의 기대와 축복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은 스승 박칼린 감독의 후광 덕분일까, 아니면 운과 실력을 동시에 타고난 덕분일까. 열화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커튼콜이 끝난 후 커다란 키와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청년, 최재림을 만났다.
팬이 많이 생긴 것 같더라. 요즘 인기를 실감하고 있나?
무대에 서는 배우로서는 박수소리가 전보다 더 커진 것 정도? 미니홈피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도 많이 늘었다. 방송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진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공연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주연이라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공연을 위해 달려온 기간이 2개월 남짓인데 솔직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거의 쉬는 날 없이 매일 공연에 매달려왔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한 회 한 회 전력을 다해 임하고 있다.
‘정명수’란 캐릭터가 매우 매력있다. 어떤 면을 보고 공연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남한산성> 출연을 확정하고 나서 배역을 받았다. 당연히 캐릭터 간 구도나 정명수가 어떤 역할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대본을 보니까 내가 담당해야 할 역할과 분량이 만만치가 않아서 걱정이 앞서더라. 연습 시작하면서 하나하나 숙제를 풀어가는 기분으로 배역에 다가섰다. 표면적으로는 조국을 배신한 악역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인물이어서 몰입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내가 만약 정명수와 같은 처지에 놓였어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멤버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나?
방송 이후 다들 너무 바빠졌다. 서도훈 씨나 서인국 씨와는 꽤 친해져서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편이다.
합창단 트레이닝은 이번이 처음이었나?
이전에 1 대 1 보컬 트레이닝은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다수를 상대로 한 트레이닝은 처음이었다. 처음 칼린 선생님이 함께하자고 말씀하셨을 때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지만 새로운 도전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 더 컸다. 1 대 1이 아니다 보니 노래하는 것을 하나하나 잡아주긴 힘들었지만, 곡 자체의 느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한 달이 넘게 방송되면서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악플도 있었나?
방송에 나간 그대로이기 때문에 크게 할 말이 없다. 만약 내가 어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연출했다면 잘못일 수도 있겠지만 있는 그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칭찬도 많이 받고 비난도 받았지만 거기에 좌우되지 않으려고 한다.
시종일관 까칠한 모습이다가 막판에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반전의 감동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나한테는 정말 큰 감동이었다. 두 달 동안 힘들게 연습했던 시간들이 필름 돌아가듯 스쳐 지나가고, 시합 전에 보여줬던 하모니 그 이상을 보여주니까 감동이 밀려오더라. 한편으로는 나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 ‘나도 저들 사이에 함께 서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열망도 참기 힘들었다.
방송이 끝난 후 멤버들에게서 어떤 말을 들었나?
다 끝나고 쫑파티를 했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서로 서운했던 점도 털어놓고, 재미있었던 이야기도 나누고. 농담 섞어서 ‘너 이제는 형이라고 불러라’ 하는 분도 계셨다. 연습할 때는 내가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연습할 때는 정말 일정이 너무 빡빡했기 때문에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굉장히 장난도 잘 치고 활발한 성격인데 너무 까칠한 면만 부각된 것 같다.
박칼린 감독이 인정한 제자라는 점에서 좋은 출발을 한 것 같다.
아직 배우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성악을 전공한 목소리라 가창력 면에서 칭찬을 조금 받은 것뿐이다. 어쨌든 칭찬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만 그 기대치 이상을 보여주기 위해 쉴 틈이 없어졌다는 것이 괴로울 뿐. 하지만 그 부담감이 싫지는 않다. 그게 다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박칼린 선생님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차기작은 정해졌나?
나의 차기작은 ‘졸업’이다. (웃음) 아직 대학생 신분이라 학교부터 졸업해야 한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졸업전 준비에 매진해야 할 것 같다. 진짜 시작은 내년부터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
성악을 공부하다 뮤지컬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 있나?
나는 아직 앞을 향해 열심히 달리기만 해도 모자란 처지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왔는지 돌아볼 상황이 못 된다. 아직은 무대에 서는 것이 좋고, 공연하는 것이 마냥 즐겁다. 한 10년쯤 후 여유가 생기면 그때 뒤돌아보며 내 선택이 어땠는지 생각해보겠다.


by 트래블러 2010. 11. 22. 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