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와 화요일마다 만나 글쓰기 모임을 갖기로 했다.

별건 아니고, 주제 하나를 잡아 정해진 시간동안

자유롭게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엉켜있던 생각을 정리해보자는 취지랄까.

일단 꼽아본 주제는 아래와 같다

행복의 순간

나의 몸에게 보내는 편지

내 인생에서 연애가 가지는 의미

찰나의 인연

최고의 여행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음악

친구에 대하여

청춘의 아름다움

나에게 가족이란

지난 화요일 첫 모임을 가졌는데 첫번재 주제는 '행복의 순간'이었다.

가능한 한 재단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는대로써내려갔는데

1시간이란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

30분쯤 됐을 때 쓸거리가 바닥이 나버렸다.

거의 쥐어짰다는.... 내 사유의 한계가 절망스러울 따름이다.

행복의 순간(20100308)

그가 말했다.

“군 제대하고 말이야. 오후 늦게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던 길이었어. 뭘 하러 가던 길이었는지,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는 기억도 안 나. 그냥,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무도 없는 버스 안에 앉아있는데 창문 한가득 늦은 오후의 노오란 햇살이 들어오던 것만 생각나. 그 햇살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너무나 행복했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더라.”

지난 몇 번의 연애 중 가장 기억에 안 남는 남자가 한 말이었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도, 몇 번 안 되는 데이트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데 잠깐 흘러가듯 말했던 이 얘기만은 뇌리에서 잊히지가 않는다. 어떤 위대한 철학자가 행복에 대해 거창한 수사를 붙이건 간에 그에게 있어 행복은 ‘늦은 오후 버스 창 가득 들어오는 노오란 햇살’로 정의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행복은 그저 찰나다.

행복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분식점을 하던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과 뜨거운 오뎅국물이다.

행복은

아무런 할 일이 없는 한가로운 오후, 잔뜩 빌린 만화책이다.

행복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줄기 눈물을 흘리던 여고생 시절의 감상이다.

행복은

무더운 여름, 시원한 캔맥주 한 모금.

그저 찰나일 뿐이라 생각하면 행복이란 게 무상하고 덧없게 여겨지지만, 행복이라고 느낀 순간 그 찰나는 영원이 된다. 옛 애인 또한 버스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을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에 젖을 테니까 말이다.

행복은 절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정작 삶의 중요한 순간에는 그 삶의 속도를 쫓아가느라 행복을 느낄 새가 없다. 행복은 과거형이 아니다. 현재 느끼지 못하고 ‘옛날에 그 때 참 좋았었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회상이고 아련함일 뿐이다. 행복은 미래형도 아니다. 대학에 합격하면, 그 사람과 사랑하게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행복이 찾아올 거란 것은 착각일 뿐이다. 차라리 그 행복을 상상하는 현재의 감정이 더 행복에 가깝다. 이렇게 행복은 반드시 지금 느끼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 때 인식하지 못한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이렇게 행복은 방심할 때 찾아온다. 아무도 없는 버스 안에서 넋 놓고 있을 때, 뜨거운 오뎅 국물에 스르르 언 몸이 풀어질 때, 만화책을 잔뜩 빌려 들고 집에 가는 길에 불현듯 말이다.

이 진리를 알게 된 순간,

나에게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

수시로 자신에게 ‘너 지금 행복하니?’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모르고 지나갈까 봐 걱정이 되어서인지, 진짜 행복한지 아닌지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다.

어쨌든 나는 지금도 묻는다.

너 지금 행복하니

기분좋은 음악과 마음에 맞는 친구, 따뜻한 커피(다 마셔버렸지만), 이만하면 됐다 싶다.

또, 돌아가서 편히 몸을 눕힐 보금자리가 있고, 사랑하는 동반자가 거기 있고, 말랑말랑 보드라운 고양이도 한 마리 있고,

글쓰기라는 알량한 재주로 할 일도 있고, 그걸로 돈도 벌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와, 이만하면 정말 행복한 삶이다.

그렇다.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항상 이랬다. ‘이만하면 행복한 삶이다.’

어떻게 보면 적잖이 자조 섞인 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의 나에겐 이런 자조 섞인 답조차 힘든 얘기였다.

어린 시절의 나에겐 세상만사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 투성이었다. 어른들은 무서웠고, 욕심 많은 동생과 다투는 일이 잦았다. 이따금 상장을 타올 때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워낙 잘난 동생에 묻혀 지나가곤 했다. 집은 가난하고 어른들은 엄격해 내 욕구를 드러내기도 충족시키기도 어려웠다. 누구도 넌 예쁘고 사랑스럽고, 총명한 아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여자애라서, 맏이라서, 어린애라서 감당해야 하는 의무만이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 더 들어가보자.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불행한 어린 나 또한 살기 위해 행복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찾아 들어간 곳이 책 속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신데렐라’였다. 불행한 현실의 내가 어떤 마법을 만나면 신데렐라처럼 행복해질 것만 같았다. 모두가 나를 우러러보고, 감탄하고, 사랑해줄 것만 같았다. 그게 행복인 줄 알았다.

골방에 틀어박혀 많은 책을 읽었다. 책 속에 들어가면 온갖 신기한 일들, 흥미진진한 일들이 가득했다. 이따금 슬픈 결말을 맞게 될지라도 그것 역시 달콤한 슬픔이었다. 밖의 괴로운 일들을 나는 책을 읽을 때만큼은 깨끗하게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은 아니었다.

내가 자조 섞인 대답이나마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다.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밖에서 행복을 찾으니 더 이상 책 속으로 숨어들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나 자신이 좋아졌다. 맘에 드는 내가 겪어내는 모든 순간, 순간이 행복으로 물들었다. 나는 나에게 물었다. ‘너 행복하니?’ ‘응. 행복해. 최고야.’

고등학교 2학년 때 일기장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내 인생에서 이만한 행복을 느낄 때가 또 올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평생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신데렐라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고의 행복인줄만 알았던 여고생 시절을 벌써 저만치 보낸 이후로도 행복의 여신은 결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수많은 시간을 살아내고, 수많은 행복의 찰나를 스쳐 보낼 것이다.

결국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란 행복의 찰나를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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