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면 발레의 현신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춤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고 관객과 무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원국. 나이 들어간다는 절박함만큼이나 춤을 꼭 붙들고 있는 그의 몸짓은 그 자체로 춤의 다른 이름이 되고 있다.
“나는 44세의 발레리노다!”
모 증권회사 광고에서 붕대를 감은 맨발로 땅을 박차고 오르는 그의 모습은 예술성과 한결같음이 빚어낸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흔히 ‘발레’ 하면 발레리나를 떠올리는 우리들에게 ‘이원국’이란 이름은 발레리노의 존재감을 드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탁월한 실력과 감각으로 유니버설발레단,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자리를 꿰차는가 하면 당세르 노블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2005년 국립발레단을 은퇴한 그는 대학이나 또 다른 컴퍼니에 들어가 지도자의 역할을 하는 대신 다시 한 번 무대를 갈구했다. 이제는 아예 ‘이원국 발레단’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민간 발레단을 세우고 좀 더 관객 가까이, 보다 낮은 곳으로 다가간 것이다. 이원국 단장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노원문화예술회관의 지하 연습실. 그가 창단한 민간 발레단인 이원국 발레단이 지난해 노원문화예술회관의 상주 예술 단체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노원구 시민들은 1년 내내 <지젤>같은 정통 발레부터 ‘해설이 있는 발레 이야기’와 같은 퓨전 발레까지 폭넓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군부대와 같은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는 등 발레가 보다 깊숙이 우리 일상에 침투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하는 중년의 발레리노, 이원국은 발레의 다른 이름이었다.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최근 -지젤- 공연을 성황리에 잘 끝냈다. 매달 ‘해설이 있는 발레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고 또 매주 월요일에는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에서 상설 발레 공연을 갖고 있다. 내일은 원주에 있는 공군 비행단을 찾아갈 예정이다. 이처럼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 색다른 발레 공연을 보여주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군부대 같은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 공연하는 일이 말처럼 쉬울 것 같지 않다. 특히 발레의 특성상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나?
찾아가는 공연의 경우 춤을 추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조명도 음향 시설도 없고, 바닥이 미끄럽고 층고도 낮고…. 그런 것을 감안하고 가는 공연이기 때문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국립발레단 공연처럼 큰 무대에 주로 서다가 작은 공연을 하다 보면 그 차이가 피부에 와 닿을 것 같다.
아무래도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무대가 크다 보니 군무가 많고, 전체적으로 완성도 있는 극작품을 많이 하게 된다. 또 관객들도 마니아들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미리 알고 오시는 분이 많다. 하지만 지금 이원국 발레단이 지향하고 있는 ‘찾아가는 발레 공연’의 경우 관객들이 발레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아마 70~80% 이상이 발레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관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분위기나 반응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발레는 오페라극장에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무용수를 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소극장 공연도 이채롭다. 무대장치나 화려한 조명이 없으니 무용수의 몸짓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다. 표정, 땀방울, 근육의 움직임 같은 것을 코앞에서 보니 소름이 돋을 정도로 느낌이 강렬하다는 관객도 있었다.
매주 월요일에 대학로 소극장에서 여는 상설 발레 공연은 꽤 오래된 걸로 알고 있다.
지난주에는 정말 많은 관객이 찾아와서 기뻤다. 현장에서 직접 표를 구매한 관객이 절반 이상이라고 알고 있다. 보다 대중 가까이에 다가가는 공연이 되기 위해 정통 발레뿐만 아니라 가요, 팝송, 트로트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로 꾸미고 있다. 나로서는 이 소극장 공연이 ‘발레는 어렵고 고급스러운 예술 장르’라는 편견을 허무는 작업인 셈이다.
지난해부터는 노원문화예술회관에 둥지를 틀었다. 어떻게 계기가 되었나?
‘공연장 상주 예술단체 육성사업’이라 해서 서울시 안에 있는 공연장과 연극, 발레, 무용 등 공연단체를 서로 연결시키는 사업이 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공연예술 활성화를 위해 지원하고 있는 사업인데 거기에 신청서를 내서 뽑힌 거다. 작년 9월부터 들어왔고, 정기공연을 비롯해 매달 ‘해설이 있는 발레’나 여러 가지 대중화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열심히 활동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 뽑힌 예술단체들 중에서도 우수한 활동을 했다고 해서 내년에는 인센티브도 받게 됐다. 노원구 시민 65만 명이 다 발레 공연을 볼 때까지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언제부터 발레 대중화를 위해 일하겠다는 생각을 했나? 은퇴 후 대학에서 후학양성을 한다든지, 편한 길이 많았을 텐데.
30대 중반이었던 2000년쯤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나이 많은 발레리노를 보는 사람들의 편견도 있고. 아직 내게는 무대에 대한 열정이 많이 남아 있는데 언제고 춤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이 심했다. 게다가 나로선 지도자의 길을 걷는 데 별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차라리 공연장까지 찾아오기 힘든 분들, 문화 소외 지역에 사시는 할머니라든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 공연을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발레 대중화’에 대한 목소리를 내게 된 거고. 내게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 같다.
한 증권회사의 CF에 나온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나는 모래사장에서 연습을 많이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다를 배경으로 모래사장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콘셉트였다. 수백 번 뛴 보람이 있었다. 내가 봐도 만족스럽더라. 스태프들이 내 발이 너무 깨끗해서 놀랐다고 했다. 강수진 씨 발처럼 변형된 모양을 상상했던 것 같은데 난 그 정도는 아니다.
발레리노는 몸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직업이다. 나이에 따라 춤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렇다. 20대의 몸이 막 떠오르는 태양과 같다면 30대의 몸은 그 태양마저 품는 바다 같고, 40대의 몸은 자연 그 자체다. 너무 거창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늘 채찍질이 필요하다는 것은 똑같다.
어떤 발레리노로 남고 싶은가?
내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내 춤을 보기 위해 관객들이 찾아왔듯이, 나도 관객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렇게 끝까지 관객들과 함께한, 그래서 그들이 가장 사랑한 발레리노로 남았으면 좋겠다.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멋진 춤이라도 그저 헛되지 않겠는가.


by 트래블러 2010. 12. 8.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