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일명 루저 신드롬에 휩싸여 있다. 카페에서도, 술자리에서도 온통 '루저'가 화젯거리다. 논란이 시작된 것은 지난달 11월 9일, KBS < 미녀들의 수다 > 에 출연한 한 여대생의 당돌한 발언 때문이었다. 한국의 미녀 여대생들과 외국인 미녀들과의 토론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방송에서 '키 작은 남자는 일단 싫다'며 여대생들 대부분의 키 작은 남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 특히, 여대생 패널 중 한 명인 이도경씨는 "외모가 중요한 요즘 같은 시기에 키는 경쟁력"이라며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못 박았다. 이어서 "내 키가 170cm니까 남자는 180cm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더 이상 여자들에게만 들이대는 잣대도 아니다. 키 작은 남자, 머리 벗겨진 남자 등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남자도 여자 못지않게 많다. 한데, 한 당돌한 여대생의 발언 정도로 치부될 수 있는 이 '루저 논란'이 인터넷상에서 일파만파로 퍼져 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루저 발언이 문제가 된 직후 해당 여학생과 KBS 측의 대응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이도경씨는 "대본대로 했을 뿐"이라며 제작진에 책임을 미뤘고, KBS 작가진은 "아무리 대본에 있었더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토론일 뿐"이라며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논란이 커지자 KBS는 < 미녀들의 수다 > 제작진을 전면 교체하는 용단(?)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려 했으나 이제는 프로그램 폐지론도 거세지는 상황이 됐다. 또 '패배자, 인간쓰레기' 등을 뜻하는 '루저(Loser)'라는 자극적인 단어에 소위 열 받은 네티즌들이 각종 패러디물을 쏟아내면서 논란은 커져갔다. '루저 놀이'라고도 불리며 각종 영화 포스터, 드라마 장면 등이 패러디되고 '톰 크루즈' '웨인 루저' 등 키 180cm 미만의 스포츠, 연예계 인사들의 프로필을 모아 '루저 모음집'이 떠돌기도 했다.

루저 놀이는 곧 '루저 대란'으로 비화되었다. 신장 162cm의 한 30대 남성이 KBS를 상대로 1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것이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이 남성은 "방송의 발언과 관련해 커다란 정신적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를 시작으로 적게는 5백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키가 180cm가 안 되면 무조건 루저로 치부되는 탓에 배우 이준기, 빅뱅의 태양 등이 '나도 루저'라며 상처받은 마음을 드러냈다. 방송인 손석희씨도 < 100분 토론 > 을 통해 "180cm가 조금 못 되는 나도 루저"라며 프로그램 말미에 "이상 루저들의 대담이었습니다"라는 재치 있는 멘트를 날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녹화방송임에도 제작진이 사전에 이를 편집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며 마녀사냥 식으로 한 출연자에게만 비난이 집중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논란의 중심이 된 이도경씨는 신상 명세가 모두 공개되었고, '성형 전 사진'이란 제목으로 과거 사진이 떠도는 등 인권 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일파만파 퍼져 나가는 이번 '루저 사태' 속에서 많은 사람이 스스로 묻고 있을 것이다. "진짜 루저는 무엇일까?" 키가 작아도 멋지게 성공한 유명인들이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유치한 명제를 완벽하게 부정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까?

by 트래블러 2010. 1. 10.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