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명품열전’이라는 고정 칼럼으로 물건의 가치에 대해 재기발랄한 글을 선보인 패션 저널리스트 홍석우.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리빙센스>에 펼친 칼럼을 마무리하며 산뜻한 패션만큼이나 건강하고 멋진 그의 명품론을 직접 들어봤다.

패션, 그 새로운 낙원에 빠지다

여자들에게 명품은 늘 뜨거운 화두다. 때론 사치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품격을 높여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런 명품에 대해 젊은 남자가 재잘재잘 수다를 떨 듯 펼쳐낸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보통 명품이라고 하면 백화점 1층에 있는 수백만 원짜리 유러피언 브랜드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사실 명품의 정의는 매우 주관적인 것 같아요. 이를테면 50만원짜리 셔츠가 반드시 3만원짜리 셔츠보다 낫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비싼 물건을 맘먹고 산 게 아니더라도, ‘이 물건 참 잘 샀다. 참 잘 만들었다’ 싶은 제품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 물건을 오랫동안 쓰면 그게 명품이 된다고 생각해요.” 패션 칼럼니스트 홍석우 씨는 패션 포털사이트인 ‘무신사(www.musinsa.com)’를 통해 칼럼니스트로 데뷔, 데일리 프로젝트의 바이어로 일하며 패션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현재 칼럼을 쓰는 일 외에도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등 전방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리빙센스>에 ‘명품열전’을 연재하며 그만의 독특한 명품론과 패션관으로 많은 독자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원래 제가 패션 칼럼을 쓰다 보니 이런 주제는 어떻겠냐며 제의가 왔어요. 패션은 사실 의식주 중 하나로 생활 속에서 늘 접하잖아요. 하지만 일부 유명 브랜드, 모델, 셀러브리티들의 이야기는 패션의 영역이긴 하지만 나랑은 전혀 다른 세계 얘기죠. 그런 얘기들을 친절하고 재미있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요.”

그가 처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고 감각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친구들과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것이 전부였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제가 패션에 눈을 떴을 때는 강남 스타일, 강북 스타일로 나뉘어 다들 똑같은 옷을 입던 때였어요. 저도 아무 생각 없이 남들처럼 입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거예요. ‘유니폼도 아닌데 왜 다들 같은 옷을 입고 있지?’ 하고요.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이었어요.”

그때부터 패션 잡지도 사보고 동대문을 돌아다니면서 독특한 옷도 사 모으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뿐인 패션을 하나씩 찾아갔다. 브랜드에 파고들기 시작하니 오리지널리티가 무엇인지 안목도 덩달아 생겼다. 패션의 세계는 그동안 그가 몰랐던 또 하나의 낙원이었다.

나만의 패션을 완성시키는 명품 하나

“2003년 즈음이었을 거예요. ‘무신사’라고 스트리트 패션을 다루는 웹사이트가 오픈했는데 거기에 제 친구가 있었어요. 제가 워낙 스트리트 패션에 관심이 많아 친구에게 제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떠냐고 물어봤죠. 그런데 이 친구가 ‘넌 사진에는 별 소질이 없고, 차라리 글을 쓰는 게 어떠냐’며 제의를 하더라고요. 평소에 글 쓰는 걸 좋아해 블로그에도 올리고 그랬기 때문에 시작하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청탁을 받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데일리 프로젝트의 바이어로 일하면서부터였고, 이후 독립한 그는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스타일링도 하는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다. <리빙센스>에는 세계의 유명 브랜드에 얽힌 일화들, 모델들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매달 흥미로운 주제에 매달려 스스로 공부도 하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고. 연재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어보았다.

“뉴욕 출장이랑 칼럼 마감이 겹쳐서 아주 난감했던 적이 있어요. 아마 캠페인 모델에 관한 칼럼이었을 거예요. 결국 인천공항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했지요. 내용 자체는 재미있게 썼는데, 혹시 펑크 날까 봐 어찌나 맘을 졸였는지 몰라요.” 1983년생, 올해 나이 스물여덟. 이제 막 꿈을 찾기 위해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에 이처럼 자기 확신을 지닌 젊은이도 드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홍석우 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인 ‘유어보이후드(www.yourboyhood.com)’만 훑어보아도 그가 얼마나 분명한 색깔을 지녔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스트리트 패션을 다루는 블로그가 있었으면 했는데 아무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 거예요. 외국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국에 이런 패션 피플도 있다는 걸 말이죠. 수입에 도움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 작업을 통해 참 많은 것을 얻었어요. 외국의 아티스트에게서 연락을 받기도 하고, 교포가 격려의 메일을 보내주기도 했어요. 덕분에 스트리트 패션계에서 나름 포토그래퍼로 인정받게 되었죠.”

좋아하는 일,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이뤄내고야 마는 의지와 고집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매력일 듯싶다. 이는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패션을 찾아 자기만의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일 터다. “요즘 패션 추세는 어떻게 하면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일까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사회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연령에 맞는 패션은 따로 있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가장 멋있는 패션은 연령에 맞는 옷을 입었을 때라고요. 다만 가끔씩 기분 좋은 일탈을 해볼 수는 있겠죠. 늘 가던 백화점 대신 가로수길에 가본다거나, 늘 사던 옷 대신 돈을 모아 조금 비싸지만 잘 만든 제품을 한두 개 마련해본다거나. 그런 것들이 모여 자신의 스타일을 만드는 거거든요.”

아이팟으로 헤비메탈을 듣고, 자전거로 30㎞를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패션 아이템으로 멋을 내는 것 또한 하나의 취미생활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게 홍석우 씨의 지론. 앞으로도 그만의 시각과 스타일대로 한국인의 스트리트 패션을 글과 사진으로 담고, 거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얹어갈 예정이라는 홍석우 씨. 진중한 눈빛이 그의 이름을 건 패션 저널이 조만간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진행 홍유진 사진 박순애

출처: 리빙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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