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대기업 엘리트 사원 10년 차가 그림쟁이로 변신했다! 독특한 이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장석원 씨. 이제는 밥장이라는 이름을 걸고 그림으로 세상을 만난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그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일상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


서른아홉 그림쟁이의 달콤한 인생

비정규아티스트 밥장

이름 : 장석원
직업: 일러스트레이터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SK그룹 공채에 수석으로 입사했으나 이렇게 평생을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안정적인 직장을 버림. 이후 음악잡지 편집장, 각종 프로젝트 기획 등

다양한 분야를 전전하다 2005년 불현듯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 <비정규 아티

스트의 홀로그림>, <HOT> 등의 책과 ‘밥장의 에피파니’(blog.naver.com/jbob70)라

는 블로그를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그림으로 먹고 사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는 새로운 상상력을 위해 올해 말 뉴욕으로 날아가 달콤한 꼬물꼬물 바이러

스를 세계에 전파할 예정이다.

오전 8시, 신나는 하루가 시작되다

그의 아침이 변했다. 요즘 눈 뜨자마자 그가 하는 생각은 이렇단다.
‘오늘은 어떤 재미난 일이 벌어질까?’
그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는 사람들의 전화가 거의 오전에 걸려오기 때문에 밥장 씨는

적어도 오전 여덟 시에는 무조건 깨어있는 편이다. 그는 창 밖으로 멀리 펼쳐진 북한

산 자락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고 나서 어머니와 둘이 아침드라마를 보며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친 밥장 씨가 작업실로 출근하는 시간은 단 10초. 물론 프리랜서인 그에게

‘출근’이란 의미는 색다르다. 침실과 작업실 사이의 3미터 남짓한 거리가 바로 그의

출근길.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는 관용 표현이 그에게만은 딱 들어맞는 셈이다.
이미 10년이나 회사생활을 해봤던 그로선 현재의 자유로운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프리랜서 생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그가 꼽는 것은 '내가 내 시간

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물론 그 자유가 잠을 더 잘 수 있고, 아침드라마를 볼 수

있고, 자기 시간을 자기 맘대로 쓰는 것만을 뜻하진 않으리라. 오히려 그는 여느 직

장인보다도 시간 관리에 철저하다. 그의 PC에 저장되어 있는 날짜별 일정표가 그가

오늘 어떤 작업을 하고 해야 하는지, 예정된 일정이 무엇인지 비서처럼 알려준다.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상상디자인 카툰 그리기, 클래지콰이 호란의 북칼럼 책에 들어

갈 일러스트 작업, 세상에 하나 뿐인 상품을 만드는 온리원 프로젝트에 제출할 작품

그리기, 각종 전시 준비…. 일일이 나열하는 것조차 숨찰 정도지만 이러한 작업 하나

하나는 그에게 일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모험과도 같다. 하루의 일정을 확

인하고 펜을 잡는 그의 얼굴엔 어느새 신나는 미소가 떠오른다.

오후 1시, 그림으로 만나는 새로운 세상 그리고 사람

전화벨이 울린다. 무심코 작업에 열중하던 그의 손이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든다.
"MBC입니다. 저번에 밥장 씨 방송, 너무 반응이 좋아서요. 오늘 추가 촬영을 하러 가

도 괜찮을까요?"
지난 주, 그를 취재했던 MBC 싱싱뉴스 촬영팀이다. 빡빡한 작업 일정 중에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에 귀찮을 법 한데도 그의 목소리는 밝고 경쾌하다.
"네, 물론이죠. 제 작업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오늘은 어디에 갈까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다 고된 촬영까지 감수해야 하지만 그에게 인터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이다. 때로, 좋은 사람들을 만

나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그가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심지어 자신조차도 - 예상하지 못했다. 미술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그림 쪽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가진 것이 있다면 그의 그림을 좋아해주고

의기를 북돋워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정도일까?
어제는 광화문 스폰지하우스에서의 전시회가 끝났다. 절친한 선배인 스폰지하우스의

조성규 대표와의 인연으로 작업한 독립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의 포스터 작품,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려 완성한 대작 ‘love island’ 등 그의 손을 떠난 정든 작품들이 관객과

만났다. 전시장에서 자신의 그림을 보는 관객들을 구경하는 것도 밥장 씨에겐 크나큰

즐거움 중의 하나. 그의 그림 전시회 풍경은 다른 전시회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0.3mm의 가는 펜촉으로 세밀하게 표현된 그의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그림을 ‘본다’기

보다는 ‘읽는’자세가 되기 마련이다.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고, 땅에서는 정글인 듯

온갖 식물들이 자라고, 착한 눈의 키다리 골렘과 인어공주 사이렌, 브로콜리 천사들

이 노니는 환상의 세계…. 어떤 냉정한 관객도 그의 그림 앞에 선 순간만큼은 그림 너

머의 상상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저녁 7시, 블로그로 세상과 접촉하다

분주한 하루는 또 이렇게 저물어간다. 어둑어둑한 창 밖으로 북한산의 능선이 희미해

진다. 그의 작업대 위에는 현재 그리고 있는 펜화, <각설탕 천사들의 연대기>가 펼쳐

져 있다. 흰 종이 위에 붉은색 로트링 펜으로 그려나간 그림 속에선 사람이 아무도 없

는 카페에서 황금비율의 커피를 내리고 딸기초코케잌을 만드는 각설탕천사들의 활약

상이 펼쳐지고 있다. 그의 상상이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매일 1개

이상 블로그 포스팅하기’라는 원칙을 세운 그는 일단 현재까지 작업한 것을 스캔 받

아 블로그에 올려놓는다.
"오로지 세상을 달달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강림한 천사들의 이야기다. 수호천사들이

각설탕 천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끔 부지런히 커피를 볶고 에스프레소를 짜낸다.

그들의 수다가 길어질수록 그림도 함께 커지겠지."
혼자 일하는 밥장 씨에게 블로그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상사이자 의견을 함께 주고 받

을 수 있는 동료, 힘을 얻을 수 있는 응원군이다. 그가 올린 게시물 아래에는 기다렸

다는 듯 수많은 상사들과 동료들과 응원군들이 댓글을 단다.

‘각설탕 천사의 활약이 궁금해요’, ‘빨간 각설탕이 섹시미까지 갖춰버렸네요.’
그의 블로그 이웃은 이미 수천 명에 이른다. 방문자들이 남긴 글을 하나하나 읽고

답글을 쓰는 시간이 그에겐 하루 중 가장 기쁜 시간이다.
날개 달린 각설탕 천사는 밥장 씨의 마스코트이다. 0.3mm 로트링 펜으로 꼬물꼬물

그려나간 그의 그림들이 곳곳으로 뻗어나가 온 세상을 달콤하게 만들어주기를 그는

상상한다. 그래서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그리고 가슴 설레는 매일을

살 수 있어 행복한 밥장 씨에게서는 달달한 각설탕의 맛과 향이 난다.

Fin.

에디터 홍유진_ 사진 박영현

by 트래블러 2009. 8. 7. 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