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린다. 무심코 작업에 열중하던 그의 손이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든다. "MBC입니다. 저번에 밥장 씨 방송, 너무 반응이 좋아서요. 오늘 추가 촬영을 하러 가 도 괜찮을까요?" 지난 주, 그를 취재했던 MBC 싱싱뉴스 촬영팀이다. 빡빡한 작업 일정 중에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에 귀찮을 법 한데도 그의 목소리는 밝고 경쾌하다. "네, 물론이죠. 제 작업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오늘은 어디에 갈까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다 고된 촬영까지 감수해야 하지만 그에게 인터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이다. 때로, 좋은 사람들을 만 나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그가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심지어 자신조차도 - 예상하지 못했다. 미술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그림 쪽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가진 것이 있다면 그의 그림을 좋아해주고 의기를 북돋워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정도일까? 어제는 광화문 스폰지하우스에서의 전시회가 끝났다. 절친한 선배인 스폰지하우스의 조성규 대표와의 인연으로 작업한 독립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의 포스터 작품,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려 완성한 대작 ‘love island’ 등 그의 손을 떠난 정든 작품들이 관객과 만났다. 전시장에서 자신의 그림을 보는 관객들을 구경하는 것도 밥장 씨에겐 크나큰 즐거움 중의 하나. 그의 그림 전시회 풍경은 다른 전시회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0.3mm의 가는 펜촉으로 세밀하게 표현된 그의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그림을 ‘본다’기 보다는 ‘읽는’자세가 되기 마련이다.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고, 땅에서는 정글인 듯 온갖 식물들이 자라고, 착한 눈의 키다리 골렘과 인어공주 사이렌, 브로콜리 천사들 이 노니는 환상의 세계…. 어떤 냉정한 관객도 그의 그림 앞에 선 순간만큼은 그림 너 머의 상상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저녁 7시, 블로그로 세상과 접촉하다
분주한 하루는 또 이렇게 저물어간다. 어둑어둑한 창 밖으로 북한산의 능선이 희미해 진다. 그의 작업대 위에는 현재 그리고 있는 펜화, <각설탕 천사들의 연대기>가 펼쳐 져 있다. 흰 종이 위에 붉은색 로트링 펜으로 그려나간 그림 속에선 사람이 아무도 없 는 카페에서 황금비율의 커피를 내리고 딸기초코케잌을 만드는 각설탕천사들의 활약 상이 펼쳐지고 있다. 그의 상상이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매일 1개 이상 블로그 포스팅하기’라는 원칙을 세운 그는 일단 현재까지 작업한 것을 스캔 받 아 블로그에 올려놓는다. "오로지 세상을 달달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강림한 천사들의 이야기다. 수호천사들이 각설탕 천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끔 부지런히 커피를 볶고 에스프레소를 짜낸다. 그들의 수다가 길어질수록 그림도 함께 커지겠지." 혼자 일하는 밥장 씨에게 블로그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상사이자 의견을 함께 주고 받 을 수 있는 동료, 힘을 얻을 수 있는 응원군이다. 그가 올린 게시물 아래에는 기다렸 다는 듯 수많은 상사들과 동료들과 응원군들이 댓글을 단다. ‘각설탕 천사의 활약이 궁금해요’, ‘빨간 각설탕이 섹시미까지 갖춰버렸네요.’ 그의 블로그 이웃은 이미 수천 명에 이른다. 방문자들이 남긴 글을 하나하나 읽고 답글을 쓰는 시간이 그에겐 하루 중 가장 기쁜 시간이다. 날개 달린 각설탕 천사는 밥장 씨의 마스코트이다. 0.3mm 로트링 펜으로 꼬물꼬물 그려나간 그의 그림들이 곳곳으로 뻗어나가 온 세상을 달콤하게 만들어주기를 그는 상상한다. 그래서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그리고 가슴 설레는 매일을 살 수 있어 행복한 밥장 씨에게서는 달달한 각설탕의 맛과 향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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