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주 잠시지만, 비행에 빠진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비행, 옳지 못한 행동을 매일 같이 하고 다녔던 때였다. 열 살 때였으니까 비행청소년도 아니고 비행어린이였다고 해야 하나.

술을 마시고, 난잡하게 놀기엔 안타깝게도 너무 어린 나이였고, 다만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가능한 한 모든 악행을 저질렀다.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고,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고, 닥치는 대로-이 말 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돈과 물건을 훔쳤다. 몰래 담배를 피우기도 했고, 몸싸움까지는 안 갔지만 그 직전까지 갈 정도로 반 애들과 심하게 싸운 적도 있었다.

사실, 2학년 때까지 나는 전혀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말수 적고, 착하고, 내성적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최고의 모범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나를 두고 많은 어른들이 우려를 표했다. 숙제를 전혀 해놓지 않고, 마치 해온 것처럼 어줍잖은 꼼수를 쓴 나에게 벌을 주다가 담임선생님은 “전혀 그럴 것 같이 안 생겼는데....”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수시로 지갑에 손을 대고 무슨 잘못인지 학교에 불려가기까지 할머니와 엄마는 “다 친구를 잘못 사귄 탓”이라 돌려버리기도 했다.

그랬다. 그 때 내겐 비행을 함께하던 친구가 있었다. 함께 했다는 것은 적합지 않겠다. 내 비행을 지켜보고 방관했던 친구가 있었다. 훔쳐온 돈으로 군것질을 함께 했으며 가끔은 그냥 돈을 주기도 했다. 그 애는 그게 다 훔친 돈이라는 걸 알면서 아무 말 없이 받아쓰고 내 곁에 있었다. 함께 다른 애들과 싸웠고, 몰래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그게 어떤 형태의 우정이었는지, 혹은 상처받은 영혼들끼리 이해타산이 맞았던 건지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그 애는 늘 ‘죽음’에 대한 이야길 했다. 열 살짜리의 고민치고는 참 심오했다. 물론,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끄덕끄덕 동조를 했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어떤 고민을 이야기했던가. 그게 무엇이든 진실을 이야기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내가 왜 그렇게 모진 방황을 거쳐야만 했는지 알겠다. 나에게 상처 입힌 어른들, 뭣같은 세상에 열 살짜리 꼬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음을... 지금은 알겠다. 그 일을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작고 어렸다. 적어도 사랑하는 가족들이라면 그런 식으로 묻고 지나가서는 안 되는 거였다. 어쨌든, 당시 내가 1년 남짓 저질렀던 온갖 비행과 악행들은 나름대로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 상처를 그대로 담아두고 다시 착한 아이로 돌아가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나쁜 아이로라도 살아야 했던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1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정도 복구가 되었다. '착한 아이'라는 본성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던 도벽에의 충동도 어느 정도 사그라졌고, 숙제도 공부도 조금씩 할 맘이 생겼다. 그렇게 4학년이 되어서는 그 애와 반이 갈리고, 나 또한 이전의 착한 아이로 거의 돌아왔다. 할머니와 엄마는 역시 ‘다 친구 잘못사귀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결론지었고, 내 비행의 원인을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나 또한 ‘그런가 보다’하고 살았다.

내 비행의 원흉으로 지목된 그 애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후에는 맨송맨송하게 지냈다. 공부는 그저 그랬지만 사실 그렇게 못된 애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날 힘들게 했던 애로 여기고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괜한 누명을 씌웠으니 미안하기도 하다.

6학년 때였던가, 그 애와 다시 한 반이 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이미 나는 완벽한 모범생으로 거듭나있었다. 반에서 1등은 못돼도 2등 정도는 늘 차지하는 성적이었고, 부반장까지 역임했으니. 그 애와는 노는 무리도 달랐다. 친하지 않아서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는데 그 애와 그 애의 친구들이 날더러 ‘고상하다’며 비꼬고 놀렸던 건 기억난다. 지난 과거를 떠올리게 했음은 물론이다.

왜 갑자기 그 애 생각이 나는 걸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의 아픈 시절을, 그 애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한 게 많지만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 그 애도 아마 그럴 것이다.

by 트래블러 2012. 2. 10.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