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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누는 삶이 아름답다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스티브 김 ‘아시아의 빌 게이츠’, ‘코리안 드림의 대표주자’. 스티브 김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미국엘 건너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3년에 ‘자일랜’이라는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 회사를 창업했다. 자일랜은 창업 3년 만에 나스닥에 상장되는 기염을 토했고, 창업 5년 만에 연매출 3억5천만 달러를 달성함으로써 IT업계의 신화를 창조했다. 큰 성공을 거둔 후 회사를 20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그야말로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그는 지난 2007년 30여 년간의 미국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영구 귀국했다. 꿈·희망·미래재단은 그가 한국에서 본격적인 사회복지 사업을 펼치기 위해 2001년에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젊어서는 버는 돈이 내 돈이지만, 나이 들어서는 쓰는 돈이 내 돈’이라는 그의 인생철학은 많은 이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소통 요즘 강연도 많이 하러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있다. 아이들부터 청년들, 직장인들까지 접할 기회가 참 많은데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 ‘삶이 참 각박하다’는 것이다. 아이들 교육부터 시작해 사람들이 참 힘들게 산다. 그래서는 행복할 수가 없다. 결국 모두가 지치고 만다. 게다가 점점 소통이 안 되면서 경쟁 양상이 심해졌다. 많은 사람이 학연, 지연 등 쓸데없는 네트워킹에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양적인 관계가 아니라 질적인 관계가 더 중요하다. 질적인 관계란 바로 ‘가족’이다. 나 또한 한 번의 실패를 겪었다. 가정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면서 나는 일과 성공을 도피처로 삼았다. 내가 행복한 가정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두 번째 결혼을 통해서였다. 일에만 매달리면서 개인적인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인생의 깊이를 모르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저녁은 항상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 아내, 아이들과 대화가 이어진다. 도전 자기가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젊은이가 대기업만을 목표로 삼는데, 내가 보기엔 차라리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게 낫다. 나도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해 대기업의 엔지니어가 되었는데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 내가 거대한 톱니바퀴의 작은 부속품일 뿐이라는 생각에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을 위한 돌파구를 위해 중소기업에 들어갔고, 또 ‘창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물론 엄청난 고생과 노력이 뒤따라야 했지만 행복을 위해 한 발 한 발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기쁨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좋은 학교 나와서 취직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운이 좋아 취직했다 해도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재미도 없고 능력 발휘도 못해 결국 실패하게 된다. 행복 막상 성공하고 보니 그때부터 과연 무엇을 위한 성공이었나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성공’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무조건 앞만 보며 달린다. 보통 그 성공은 ‘돈’이나 ‘권력’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나 또한 골프도 치고, 여행도 다니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려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행복이 아니었다. 내가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를 생각해보면 큰돈을 벌었을 때보다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을 즐기고, 주변에서 인정해줬을 때였다. 성공은 행복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목표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돈, 명예, 권력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은퇴 한국의 직장인들을 보면 무쇠 체력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렇게 일하고서도 회식을 3차까지 한다. 그 몸으로 다음 날 출근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일하다 은퇴하면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어찌할 줄 모른다. 일하면서 번 돈은 모두 자식 교육에 들어가고 남은 돈이 없으니 무력감에 시달린다. 은퇴 후 삶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돈이 많다고 은퇴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꾸준한 운동과 수면, 절제하는 생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외롭고, 삶이 각박해지는데 이럴 때 진심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한 명은 천군만마보다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고향 젊어서는 세계를 누비는 꿈을 꾸더라도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 1976년에 한국을 떠나 30년을 미국에서 살아온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미국에서 이룰 것은 다 이룬 상태였다. 그러나 새로 시작하는 사회복지 사업만큼은 한국에서 펼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결국 아내와 깊이 의논한 끝에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많은 사람이 만류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2007년, 그러니까 3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하던 아이들도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한국이 이제는 좋다고 한다. 나도 한국에서 펼쳐가는 새로운 사업에 열정을 쏟으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게 ‘미국에서 돈 벌어 한국에서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부 나는 자일랜에 있을 때도, 그전에도 기부 활동을 곧잘 하는 편이었다. UCLA에 1백만 달러를 기증하기도 했고 한미장학재단을 통해 공부 잘하는 한국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자일랜을 매각한 후 시간 여유가 생겨 기부나 사회 공헌 활동에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이왕이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전국을 돌며 아동복지시설과 노인복지시설 여러 곳을 들렀다. 그러나 20년 전과 달리 매우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는 모습에 내가 할 일이 없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나는 ‘먹이는 사업’이 아니라 ‘살리는 사업’ 쪽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하기로 했다. 사람이 꿈을 접을 때 입은 상처는 평생 간다.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꿈·희망·미래재단이다.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약 2백여 명의 학생을 지원해왔다. 나는 돈 쓰는 일 역시 돈 버는 일과 마찬가지로 계획성 있고 치밀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돈 버는 부자가 아니라 돈 쓰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나이 듦의 기술 나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오히려 나의 천직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르치는 일’이다. 학생들이 눈을 빛내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면 삶의 열정이 새롭게 솟아나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축적한 부가 어느 정도 되는지, 그것을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물려줄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나는 내 자녀들에게 물질적인 재산이 아닌 바른 정신과 바른 자세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물려주고 싶다. 사실 많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재능과 에너지를 죽이는 일이다. 한국에서도 점점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행복하고 자식들도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싶다면, 사회적인 위치가 높아지고 경제적인 부가 쌓이기 시작하는 중년부터 나눔을 실천하고 은퇴 후 삶을 설계해야 한다. 무조건 모든 것을 주기보다는 나눔으로써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리빙센스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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