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열두 번째 아이를 끝으로 더 이상 낳지 않겠다던 서울 대표 다둥이 가족! 그런데 지난해 말, 이 집에서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사내아이가 또 태어났다. 열세 번째 아이다.
열두 남매의 부모로 유명한 남상돈(46)·이영미(44세)씨 부부에게 지난해 12월 29일 3.4kg의 건강한 사내아이가 또 품안에 들어왔다. 얼마나 금슬이 좋길래 아이를 열 세명이나 낳았을까.
“금슬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이번 아이만 해도 거의 1년 만에 함께한 잠자리에서 생겼는 걸요.”

게다가 배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속으로 ‘임신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임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태어날 아이는 태어나게 마련인가 보다. 아직 막내 이름은 지어지지 않았지만, 벌써 형,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큰 아이들이 동생을 잘 챙기고 있어요. 둘째 보라는 엄마 몸 추스르라고 새벽에 일어나 기저귀도 갈고 하더라고요. 큰아들 경한이는 동생들 방학이라고 역사책 읽기를 시키고 있고요. 웬만하면 가사나 육아 부담을 큰 아이들에게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이렇게 알아서 잘해주니 엄마로서는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첫아이를 가진 1988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는 인구가 줄어들어야 선진국에 가까워진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이영미씨도 그 캠페인에 발맞춰 ‘경한이 하나만 낳아서 기를까?’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 생명을 거부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아이를 낳을 때마다 느껴지는 행복함과 뿌듯함도 있었고요. 물론 힘들 때도 있죠. 하지만 제가 낳은 13명 아이들이 사이좋게 노는 모습을 보면 ‘내가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저는 셋째 이후부터 각서를 쓰고 출산을 했어요. 만약의 경우 잘못돼서 자궁을 들어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죠. 다출산 산모의 경우에는 자궁 수축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위험한 경우가 곧잘 생겨요. 고위험 산모에 들어가죠. 많이 낳았다고 출산이 쉬워지는 게 아니라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거죠.”
(사진 설명 글) 어떻게 그렇게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아요. 그때마다 제가 하는 대답은 한결 같아요.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세요’

집은 늘 어린이 놀이방, 그래도 행복해

요즘 저출산 문제로 사회 전체가 위기의식에 휩싸여 있지만 사실, 서울에서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교육비, 사회적 위험 비용 등 경제적인 문제도 문제거니와 불임부부가 늘면서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그래서 다둥이 가족으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KBS <인간극장> 등에 출연하며 다산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이영미씨에게 많은 사람이 고민을 토로한다고.
“어떻게 그렇게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아요. 특히 아들을 낳고 싶어 하시는 분들은 엄청 부러워하죠. 그때마다 제가 하는 대답은 한결같아요.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세요.’ 이것뿐이거든요. 사실 저는 한 번도 아이를 몇 명 낳아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이 모두 어리던 6~7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편해졌다며 행복해하는 이영미씨. 다행히 2005년 제기동 전세방에서 지금의 임대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임대아파트가 다자녀 가족에게 우선적으로 분양된 덕분이다. 방이 3개라 하나는 부부가 쓰고, 나머지는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 방으로 나눠서 쓰고 있다. 그래도 워낙 아이들이 많아 소란스럽고 부대끼기는 마찬가지이다.
“집 안은 늘 난리법석이에요. 자기 전에 한 번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 외에는 따로 잔소리하지도, 치우지도 않아요. 집이라기보다는 거의 놀이방에 가깝죠. 그래도, 아직 어리니까 장난감이든 책이든 가까이에 두고 마음껏 꺼내 놀고, 읽고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교육에 관한 한 이영미씨는 완전히 자유방임형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첫째 경한이는 새벽 5시부터 깨워 공부시키고 밥 먹이고 학교 보내는 것까지 일일이 다 챙겼다고.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 오로지 기댈 것은 육아백과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첫째, 둘째를 교과서적으로 키우다 보니, 부작용이 생기더란다.
“지금은 보라가 엄마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자기 키울 때 너무 엄격하게 규율과 규칙을 강조했기 때문에 자기가 지금 사회에 나가서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유연성이 좀 떨어지는 거겠죠. 그래서 교육방침을 바꿨어요. 육아를 오래 하다 보니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게 되네요.”

둘째인 보라양(21세)은 동생들을 잘 챙기는 든든한 누나로 TV에 얼굴이 알려지면서 몇 년 전 연예계에 데뷔했다. 처음부터 연예인이 되려는 건 아니었는데 기획사 사장님의 꼬임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단다.
“기획사에서 매일 보라네 학교 앞에 진을 치고 앉아 있었어요. 도넛을 30박스나 사가지고 학교 친구들에게 보라 이름으로 쫙 돌리기도 하고요. 결국 먹을 것에 넘어갔죠. 다행히도 지금은 연기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요. 얼른 CF나 몇 개 잡아서 보라 덕분에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면 좋겠네요.(웃음)”

동덕여대 방송연예학과 3학년에 다니면서 학업과 연예계 활동을 병행하는 보라양은 지난해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학비를 지원받고 있다. 2학년 등록금부터 6학기분을 지원받게 돼 이영미씨 가족으로서는 큰 힘이 되었다고.

이씨는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당시로서는 형제가 적은 편에 속했기 때문에 많은 형제들 틈에서 재미있게 지내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고. 그것 때문에 아이들을 이렇게 많이 낳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들끼리 규칙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작은 사회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애들이니까 가끔 싸우기도 하죠. 저는 절대 끼어들지 않아요. 그럼 큰 애들이 알아서 중간에서 중재를 하고, 적당한 선에서 화해를 하곤 다시 잘 놀아요. 컴퓨터 사용 같은 경우에도 일부러 규칙을 정해준 것도 아닌데 낮에는 작은 아이들이 사용하다가 형, 누나들이 오면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더라고요.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같아요.”


한 달이 멀다하고 다가오는 생일도 자기네들이 알아서 챙긴단다. 가끔 엄마가 깜박하고 미역국을 못 끓여도 섭섭해하기는커녕 먼저 전화해서 케이크라도 사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형제가 많으니 오히려 부모가 손을 댈 일이 줄어드는 셈이다.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선과 예의를 배우며 사회성도 기르고 협동심도 키우게 된다.

하나하나 끔찍하게 사랑스러운 보석들

아이들의 취향과 성격, 입맛도 다 제각각이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토마토케첩이 들어간 음식을 질색하는 아이도 있다. 한번은 점심때 미트소스스파게티를, 저녁때 샌드위치를 해줬는데 한 아이가 하루 종일 쫄쫄 굶은 것이다. 저녁에 아빠가 들어와 김칫국에 밥을 말아먹고 있으니 그때서야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고 한다.

“학원은 잘 다니는지, 시험기간은 언제인지 챙긴다고 해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달력에 적어놓고 들여다보기는 하는데, 너무 많다 보니 힘들죠. 그런 점에 있어 엄마로서 미안해요.”

이영미씨는 아이들에게 표현을 아끼는 편이다. 칭찬도 자주 하지 않는 편이고, 웬만한 일에는 야단도 잘 치지 않는단다. 엄마의 반응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아이들을 배려해서다. 그렇다고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1/13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13배로 늘어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다. 그래서 더 해주고 싶은 것도 많고 기대도 크지만 현실의 한계가 늘 발목을 잡는다.

서울시립대에 재학 중인 성실한 장남 경한군, 오는 6월 MBC 미니시리즈 출연을 앞두고 있는 탤런트 보라양, 엄마가 잘 챙겨주지 못해도 알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예비 고3 지나, 성격이 좋아 친구가 많은 진환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석우, 천재 소년 휘호, 동생을 잘 챙기는 세빈, 천방지축에 개구쟁이지만 말로는 누구도 이길 재간이 없는 다윗, 똑 부러지는 성격에 공부도 잘하는 세미, 춤을 잘 추는 소라, 자기 것을 잘 챙기는 경우, 이제 막내 자리를 내줘야 하는 열두 번째 아이 덕우, 그리고 또 찾아온 새로운 선물….

한 명, 한 명, 자식들의 이름을 꼽을 때마다 부부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세종대왕은 6명의 부인이 22명을 낳아줬지만 엄마는 혼자서 22명 낳아줬음 좋겠다!” 어느 날 역사책을 보던 다윗이 한 말이란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하나 둘씩 사회에 진출하며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할 것이다. 남상돈씨와 이영미씨는 그날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어찌 보내나 싶어 아까울 것 같기도 하다. 먼 훗날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 유산을 남겨줬는지 어려울 때, 기쁠 때 함께해주는 형제들을 바라보며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우먼센스 3월호
취재 홍유진(프리랜서)
by 트래블러 2010. 4. 16. 0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