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ccess 성공 그리고 休
삼청동, 늦가을의 행복을 만끽하다

삼청동은 옛날부터 경치가 아름답고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려 도심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는 곳으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그 이름도 산이 맑고(山淸) 물도 맑으며(水淸) 그래서 사람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人淸)는 뜻의 삼청(三淸)동이 되었을까.
물론 이제는 과거와 크게 달라졌지만,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기에 서울 안에 이만한 명소가 없다.

Written by 홍유진 Photo by 김성만



삼청동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늦은 오후였다. 가을은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간다. 그만큼 해지는 시간도 빨라져 놀빛에 젖은 삼청동의 거리는 더욱 운치 있어 보였다.

이곳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삼청동은 경복궁의 동북쪽, 도심으로부터 살짝 비껴나 맑고 그윽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과거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명사들이 이곳을 찾아 삼청동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로 읊기도 했다.

북촌(北村)의 시장은 거리와 잇따르고, 무성한 가을 숲은 성곽을 뒤덮었네.
삼청보전(三淸寶殿)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한번 종소리 울리니 궐문(闕門)을 닫네.
흐르는 물은 바위 아래로 떨어지고, 이슬 젖은 풀 사이로 반딧불 날아드네.
멀고 먼 세상근심 이제야 잊고자, 밤 이미 깊었지만 돌아갈 줄 모르네.


조선시대 문신 용재 성현이 남긴 한시다. 비록 시대는 달라졌으나 도심 가까운 곳에 복잡한 세상사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하는, 그래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삼청동에 대한 고마움마저 느껴진다.
굳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약 십 년 전만 해도 삼청동은 조용하고 고즈넉한 매력을 지닌 도심 속의 숨은 보석 같은 명소였다. 그러나 입소문과 인터넷의 발달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상가와 카페, 레스토랑으로 가득한 번화가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삼청동만의 잔잔한 매력이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삼청동에서 호젓한 산책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일행이 방문한 시간이 평일의 늦은 오후였는데도 불구하고 삼청동 거리는 자동차와 쇼핑객들로 주말 못지않게 붐볐다. 다만, 걷다가도 잠시 멈춰 서서 갤러리의 그림을 감상하고, 좁은 골목에 들어가 커다란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다른 번화가와 조금 다른 점일 터였다. 아직 삼청동은 먹고 마시고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작고 사소한 풍경에 눈길을 던져주고, 한 걸음 한 걸음 속에 찰나의 사색이 묻어나는 곳이었다.

예술의 향연 속에 길을 잃다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나와 경복궁 사잇길로 들어서서 길을 따라 쭉 올라오다보면 점점 좁아지고 복잡해지는 삼청동길을 자연스럽게 걷게 될 것이다. 맨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작은 미술관과 갤러리들이다.
복잡하고 번화한 삼청동 길에 예술의 향기와 삶의 여유를 불어넣어주는 것이 바로 이 갤러리들이 아닐까. 사실, 삼청동은 인사동과 함께 갤러리와 화랑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갤러리 현대, 금호미술관 등 유수의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비교적 규모가 큰 갤러리는 물론 젊은 작가들의 개인전 위주로 작지만 개성 강한 전시를 선보이는 갤러리들이 무려 60여 곳에 이른다.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를 미리 알아두고 일부러 찾아가 보는 것도 좋지만, 산책하듯 거닐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갤러리에 무작정 들어가 보는 것도 신선한 문화체험이 될 것이다.
기획전의 경우 간혹 입장료를 받는 곳도 있지만 갤러리 관람은 대개 무료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전시하는 소중한 곳이니만큼 크게 떠들거나 음식물을 갖고 들어가는 등 에티켓에 어긋나는 행동은 주의하는 것이 좋다. 삼청동길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에 숨은 화랑을 찾아보는 것도 삼청동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행복한 문화나들이, 작은 이색박물관들

정독도서관에서 삼청동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박물관길'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북촌의 역사를 담고 있는 북촌생활사박물관부터 전통 창호가 전시된 아름다운 한옥집 청원산방, 작지만 매력적인 테마를 가지고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사립 박물관의 수가 이 근방에만 스무 곳이 넘는다.
떠들썩한 홍보로 방학 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대규모 기획전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가끔은 작은 전시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 방학숙제를 위한 관람이 아닌, 놀이터나 공원에 가듯 가볍게 나들이 갈 수 있는 작은 박물관. 아이들이 무언가를 느껴도 좋고, 그저 재미나게 즐기기만 해도 좋지 아니한가. 3천원에서 5천원의 저렴한 관람료로 아이들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문화체험이 될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삼청동 곳곳의 식당과 카페에 불이 켜지고, 좁은 길을 오가는 사람도 더욱 늘었다. 발품을 팔며 눈요기를 한만큼 주린 배를 채워야 늦가을 삼청동 투어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삼청동은 그저 발길 닿는 곳, 어디에나 근사한 맛집, 멋집이 널려 있으니까. 가을의 정취를 즐기며 풍류를 이야기하던 조선시대 선비들 대신 대한민국의 현대인들이 삼청동의 또 다른 매력 속에서 기억에 남을 가을을 보내고 있다.


삼청동 박물관 투어
북촌생활사박물관 서울의 북촌에서 수집한 우리 근대 생활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다. 끊임없이 새 물건이 쏟아져나오는 현대에 손때묻은 옛것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조용히 곱씹을 만하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6시까지, 관람료는 성인 5천원, 고등학생이하는 3천원이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35-177 문의 02-736-3957, www.bomulgun.com
부엉이박물관 배명희 관장이 약 40여년 간 각 나라에서 수집한 갖가지 부엉이 예술품이 2천여 점에 달한다. 관람료는 찻값을 포함해 5천원.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개관하며 관람시간은 10시부터 6시까지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27-21 문의 02-3210-2902, www.owlmuseum.co.kr
세계장신구박물관 세계 곳곳의 장인들이 만든 장신구 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역사와 미술, 문화가 깃든 예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휴관하며, 개관시간은 오전 11시부터 5시까지다. 관람료는 어른 7천원, 학생 5천원.
위치 서울시 종로구 화동 75-3 문의 02-730-1611, www.wjmuseum.com
북촌동양문화박물관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를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 될 것이다. 매주월요일 휴관하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관람료는 성인 5천원, 고등학생이하는 3천원이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35-91 문의 02-486-0191, www.dymuseum.com
by 트래블러 2011. 11. 22. 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