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화제의 인물
교육인은 희망의 신이다
조벽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가르친다는 것,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무게감은 때로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날개를 맘껏 펼칠 수 없는 답답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조벽 교수를 만나 이 시대 교육인들이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조언을 들어봤다.

Written by 홍유진 Photo by 백기광

요즘 조벽 교수는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명강의 노하우 노와이’ 등 잘 나가는 교육서를 집필하면서 각종 지자체 및 학교를 돌아다니며 교수법에 대한 강의를 펼치기도 한다. 또, 각종 기업 등에 특강을 나가 인재를 기르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는가 하면, 최근에는 KBS 예능프로그램인 ‘도전자’에 멘토로 출연해 주옥같은 조언을 던지기도 한다.
그렇게 조벽 교수는 교수법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름난 유명인사다.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뛰어난 교육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기계공학박사인 그는 공학을 가르치는 평범한 대학교수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좀 더 잘 가르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시건공과대학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오랜 기간, 창의력을 위한 혁신센터와 학습센터의 소장을 역임해왔으며 미국 과학재단 연구상, 미시간 주 최우수 교수상, 미국공학교육학회 교육자상 등을 수상했다. 잘 가르치고 싶다는 교육에의 열정이 그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제 그는 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진정한 교육을 펼칠 수 있는지에 대해 가장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전문가가 되었다.



절망하는 교육자들

조벽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EBS다큐프라임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나름대로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는 현직 교사들의 멘토로 출연해 진정한 교육의 가치가 무엇인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콕콕 짚어주는 그의 모습이 통쾌하다 싶을 만큼 대단했다.
이처럼 그는 ‘교사를 가르치는 교수’로 더 유명하다. 가르치는 사람을 가르친다. 즉,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일인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 그이기에 최근의 학교붕괴 현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크게 드러냈다.
“최근 교실 분위기의 현상은 가정 붕괴 현상과 맞물려 있어요. 사실, 옛날에는 가정에서 인성을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교과만 가르치면 되었거든요. 하지만 가정이 붕괴되면서 학교가 떠맡아야 하는 교육의 영역이 더 광범위해지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기는 거고요.”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학생은 선생을 불신하며, 학부모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매번 정부에서는 교육혁신을 부르짖지만 더 나아지기는커녕 아이들의 부담만 가중되는 형국이다.
“이건 교육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 사회의 모든 문제는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교육문제, 정치문제, 경제문제를 모두 따로 놓고 보니 풀릴 길이 없습니다. 모든 분야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풀어나가야 하는데 서로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하기만 해요.”
조벽 교수는 그동안 많은 교사들을 직접 만나고 상담해왔다. 지난 10년 간 그가 교사들을 만나며 내린 판단은 ‘점점 절망하는 교사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는 것.
“절망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사인이라고 봐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희망을 주는 거거든요. 그런데 희망을 줘야 할 주체인 교사들마저 절망하게 하는 교육이라면 학생들도 절망을 배울 수밖에 없는 거죠.”
사람이 절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있다. 즉, 많은 수의 교사들이 교육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데에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분명 교사들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교사란 많은 것을 아는 사람, 지식이 많고 똑똑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에요. 교사는 공부의 신이 아니라 희망의 신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자는 한 사람의 인생의 한 부분에 개입해 변화를 일궈내야 하고, 그 변화는 반드시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조 교수는 ‘교육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즉, 인성교육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목적이라는 소리다.

"교사란 많은 것을 아는 사람, 지식이 많고 똑똑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에요. 교사는 공부의 신이 아니라 희망의 신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자는 한 사람의 인생의 한 부분에 개입해 변화를 일궈내야 하고, 그 변화는 반드시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교육의 틀을 깨라

하지만 이미 지난 수십 년의 시간동안 우리나라 교육계의 방향은 점점 비정한 경쟁주의, 치열한 입시지옥 쪽으로 고개를 튼 지 오래다. 아이들은 초점 잃은 눈빛으로 학교와 학원을 왔다 갔다 하고, 어른들은 네 탓이니, 내 탓이니 옥신각신하며 싸우는 데만 급급하다.
“치열한 입시지옥 그 이면에는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왔던 진짜 현실이 숨어 있어요. 매년 200여명의 10대 아이들이 자살을 택하고, 152명의 아이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한다고 합니다. 또, 세 명 중 한 명은 진심으로 학교를 떠나고 싶어 하죠. 이렇게 어마어마한 숫자의 학교부적응 학생들은 나중에 성장해서도 사회 부적응자가 될 가능성이 커질 겁니다. 그 사회적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까요?”
아이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교육은 결국 학교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이는 나중에 부메랑처럼 엄청난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올 거란 소리다. 특히 학교에서 벌어지는 기가 막힌 사건 사고들은 그 빈도가 예전에 비해 훨씬 잦아지고 있다. 이미 현장에서는 ‘이거 큰일 났구나’하는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이건 분명 위험한 조짐입니다. 지혜로운 사회는 이런 조짐이 눈에 보일 때 적절한 대응을 할 줄 압니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한 사회는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지경에 가서야 허겁지겁 뒤처리를 하죠.”
우리나라의 교육계가 지금 무척이나 중요한 순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모든 교육인들이 직시해야 한다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이처럼 공교육이 무너져가고 있는 데에는 앞서 언급했듯 학교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 너무 광범위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교수는 교육의 틀이 앞으로 좀 더 유연해지고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교육계 종사자들은 선을 긋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공교육과 사교육의 대립이 심한데 앞으로의 평생교육시대에는 이러한 구분이 점점 의미없어질 겁니다. ‘교육=학교교육’이라는 생각의 틀부터 깨야 합니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평생 일을 하는 것이 전통적인 패턴이었을 때는 그 구분이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라는 거다.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한 명에게 투자하는 교육비가 대학 4년 등록금에 맞먹는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공부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고 익히며, 그것은 삶을 더 윤택하게 하고 활기차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테면 기업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통해 학위를 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겠죠. 일하면서도 학위를 딸 수 있다면 굳이 대학 입시에 매달릴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전통 교육기관이 모든 것을 독점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교육혁신이 더 느려지고 있습니다.”

교육, 그 의미를 확신하다


조벽 교수는 언젠가 교육과학기술부 정책 모임에서 정식으로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제는 사교육을 정규교육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 즉, 사교육을 정식 협력기관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제 교육은 초중고등학교, 대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학습의 장이 되어야 한다.’
“사(私)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사(死)교육이 문제죠. 훌륭한 교육은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는 교육이에요. 지금도 적성에 따라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주 극소수의 학생들만 예고나 과학고에 갈 수 있을 뿐이죠. 그조차 등급이 매겨져 선을 긋는 데 이용되고 있어요.”
선택의 기회를 갖지 못한 학생들이 사교육을 선택하는 것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법이다. 이미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고 있는 사교육의 인프라를 정규 교육으로 흡수하고 인정해주면 어떻겠느냐고 그는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외면하고 억압하는 게 아니라 좀 더 구체화하고 조직화해서 교육의 틀을 제대로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평생교육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학위나 간판이 아닌 진정한 실력과 자신만의 개성이기 때문이다.
조 교수의 말처럼 이렇게 세상은 쉴 새 없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사람들의 마인드와 라이프스타일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교육자들이 거기에 발맞추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계속하지 않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교육계는 많은 분야 중에서 가장 변화가 느리고 보수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이유를 조 교수는 시스템과 교육의 방향이 불일치하는 데서 온다고 설명했다.
“말로는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하면서 실제 학교 현장에서 창의적인 학생은 튄다고 욕을 먹잖아요. 시스템과 교육의 방향이 맞지 않는 거죠. 그 사이에서 교사들과 학생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고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육의 방향에 시스템을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만 진정한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 가 없을 터이다.
“유능하고 행복한 사람의 특징이 뭔 줄 아세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의미가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랍니다. 교사들이나 강사들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교육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확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어떤 이가 ‘나로 인해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서 뭘 가르치든 분명 훌륭한 교육자일 겁니다.”
by 트래블러 2011. 11. 22. 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