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꽃이 안내하듯 늘어선 통나무 계단을 오르니 봄볕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나는 2층집이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다. 자발적 시골살이로 수만 가지 선물을 얻었다는 다큐멘터리 작가 박지현 씨. 그녀가 말하는 진정한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

‘살림’은 ‘살리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냉장고의 오래된 반찬을 정리할 때, 세탁물 분리를 제대로 안 한 바람에 멀쩡한 옷을 버려야 할 때 그 의미를 절감했다. 잘하면 살림, 못하면 죽임. 이거 만만치 않은 일이구나. 담양의 소문난 살림꾼, 박지현 씨를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4시간을 달려가면서 기대감에 부풀었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법한 세련되고 정갈한 풍경 속에서 사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부지런하고 깔끔을 떨어야 하는 걸까. 과연 그녀의 안내를 받아 둘러본 집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감각 있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풍경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지런함과 꼼꼼함이 아니라 삶의 지혜와 거리 두기였다.

마당과 길 어귀에서 뽑아온 머위와 돌나물, 쑥 등으로 봄 냄새 물씬 풍기는 점심을 먹은 후 그녀의 살림 이야기가 시작됐다. 까다롭지도, 유난스럽지도 않은 그녀의 살림은 집 안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자연과 인간, 가족과 이웃을 관통하는 우주 이야기로 다가왔다.

(좌)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소문난 살림꾼으로 <열두 달 살림법>이라는 단행본까지 출간한 박지현 씨.
(우)박지현 씨 부부가 직접 설계에 참여한 40여 평 규모의 2층짜리 집. 부부와 두 아이가 머무는 행복한 보금자리가 된 지 벌써 10년이다.

Story 1 감나무가 준 지혜, 욕심 버리기

그녀의 집 바로 옆에 박지현 씨 가족이 이사하기 전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감나무가 있다. 따로 거름을 주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아도 해마다 알이 토실토실한 단감을 먹게 해주는 고마운 이웃이다. 어느 날 지현 씨가 집 안에 있는데 감나무 있는 쪽에서 ‘뚝’하고 큰 소리가 나기에 급히 나가보았다고 한다. 집 방향으로 뻗어나간 허벅지만 한 굵기의 큰 가지가 부러져 땅에 떨어졌더란다. “참 굵고 튼튼한 가지였거든요. 사람 지나가는 방향으로 뻗어 있어 베어버릴까 고민한 적도 있었어요. 저절로 떨어져나간 걸로 보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나중에 알아보니, 큰 나무는 자기가 감당하기 어려운 가지는 스스로 떼어낸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몸의 일부를 떼어낸다는 것은 나무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더 깊게 뿌리를 박고, 더 멀리 가지를 뻗는 것은 본능적인 성장 욕구가 아닌가. 즉, 단출한 삶을 위해 자신의 일부를 희생시킨 것이다.

“꽤 큰 가지였으니까, 작은 욕심은 아닐 거예요. 자식 욕심일 수도 있고, 재물에 대한 욕심일 수도 있겠죠. 내가 저 감나무만도 못한 사람이구나,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감나무뿐만 아니라 사방에 반성할 거리가 지천이에요.” 방송작가로 바쁘게 일해왔던 박지현 씨도 성공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주에 가족들을 두고 서울 작업실에 매일같이 왔다 갔다 할 때도 있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시골에 내려와 살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로 맘먹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후배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유혹이죠. 둘 다 병행하고는 있지만, 작가로서 명예를 얻느냐, 살림에 몰두하느냐 선택의 고비가 와요. 사실 방송작가로 이름을 높이려면 들어오는 일을 다 해야 하는데, 여기 살면서 성공에 대해, 그리고 성공이 가져다줄 행복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어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꼭 성공해야 하나 싶은 거죠. 이대로 착한 아줌마로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고….”

많은 고민 끝에 서울 작업실을 완전히 철수하고 내려온 것이 3년 전이다. 그녀가 욕심을 버리기로 한 것은 비단 일뿐만이 아니다. 살림에 대해서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대단한 살림꾼라고 칭송받는 그녀도 고단하고 힘들 때면 며칠씩 청소를 놓아버리기도 한다. 저절로 하고픈 마음이 들 때까지 말이다. 그녀에게 설거지며 청소, 커튼 만들기와 된장 만들기 등의 살림은 원고 쓰기가 힘에 부칠 때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놀이이며 여흥이었다.

염색공예가인 친동생, 박희연 씨가 선물해준 하늘 무늬 광목. 봄 커튼으로도, 탁자보로도 쓰임이 다양하다.

Story 2 배롱나무의 가르침, 더불어 살아가기

거실 유리창 밖으로 곧 싹을 틔울 준비를 하는 헐벗은 배롱나무 세 그루가 보였다. 그녀는 이 나무를 보면서도 온갖 생각에 잠긴다. “가운데 나무는 앞쪽으로만 가지를 뻗었고, 왼쪽에 있는 나무는 오른쪽으로 거의 가지를 뻗지 않은 거 보이죠? 서로 조금씩 양보해가면서 자리를 잡은 거예요. 일부러 가지치기를 한 적도 없는데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나무도 저렇게 양보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구나 싶어 존경스럽더라고요.” 그녀가 시골에 와서 얻은 중요한 교훈 중 하나라고 했다. 처음 귀농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사방이 일 천지였다.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라났고, 쑥이며 머위 같은 나물들을 욕심껏 수확해 데치고 말리는 것도 일이었다. 냉장고에 가득가득 채워놓으면 마음이야 배불렀지만 어떻게 다 해치워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귀농하는 사람들은 한 2년간 잡초와 전쟁을 해요. 시골에 예쁜 집 짓고 푸른 잔디밭 가꾸며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거든요. 그런데 하루 이틀만 신경을 안 써도 잡초가 자라서 다 뒤덮어버려요. 말끔히 모아 마당 어귀에 쌓아놓으면 거기서 또 씨를 뿌린다니까요.” 지현 씨는 2년 만에 ‘잡초와의 전쟁’에서 ‘잡초와의 평화’로 방침을 바꾸었다. 그리고 이제는 ‘잡초와의 행복’을 꿈꾸고 있다. “잡초의 기준이 뭘까 생각해보니까, 사람이 기르지 않은 것은 다 잡초라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쑥도, 민들레도 다 잡초예요. 이런 풀들이 얼마나 쓸모가 많아요. 잡초가 피우는 꽃도 얼마나 예쁜지요. 새삼 대단하게 여겨지더라고요. 아웃사이더로 구박받으면서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살아남아 예쁜 꽃을 피워냈잖아요. 그러고 보면 잔디는 늘 똑같은 얼굴만 보여주니 지루하지요. 재미없는 초록이에요. 그저 ‘나를 보호해주세요’ 응석부리는 아기 같아요.”

뜨거운 땡볕 아래서 시무룩하게 고개 숙이고 있다가도 비만 오면 생생해져서 허리를 곧추 세우는 잡초들의 변화무쌍한 생명력. 척박한 땅에서 어렵게 뿌리내린 풀들은 그 빳빳함이 씩씩하고, 사람 다니는 길가에 핀 민들레는 땅에 바짝 엎드려 조용히 꽃을 피운다. 그 하나하나가 때론 미소 짓게 하고, 가끔은 눈물을 글썽이게 만든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잡초 한 포기가 좋은 책, 친구, 선생님 부럽지 않게 한다.

잡초와 ‘화친’한 후부터는 먹을거리에 대한 욕심도 많이 버렸다. 쑥이든 머위 나물이든 그때그때 한 움큼씩만 뽑아서 국도 끓이고 전도 부친다. 조금씩 요리하고 나누니 마치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재미나고 삶도 여유 있어졌다고 했다. 살림이든 일이든 적당히 즐기고 조금씩 남과 나눌 수 있을 정도면 족한 삶. 그녀가 찾은 행복이다.

창이 크게 난 거실은 가구나 물건을 최소화해 누구나 가볍고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Story 3 된장에게 배운 스밈의 철학

해마다 봄이 오면 그녀도 한 해 동안 요리의 기본이 되어줄 된장을 담근다. 광주에 사는 친정어머니가 뜨끈한 방바닥에서 숙성시킨 메주를 가져다주면 지현 씨는 그날로 간장을 거르고 된장을 담근다. 그녀는 된장을 담그면서도 인간관계의 속성을 배운다. 곰팡이 가득 핀 메주에 소금물이 스며 된장과 간장의 깊은 맛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도 서로 스미는 과정을 통해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좌)주로 손님이 많이 찾아올 때 이용하는 식당 겸 응접실. 냉장고와 그릇 수납장, 벽난로까지 있는 다용도실이다.
(우)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그녀는 하루에 몇 번씩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운동이 된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스미지 못하는 곳이 없어요. 스며들 곳이 전혀 없어 보이는 옹기 항아리에도 바람이 스미고 된장 냄새가 배거든요. 된장을 담아뒀던 항아리는 몇 번을 씻어내도 그 냄새가 남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해요.” 살림 하나하나, 사람살이의 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녀는 살림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서로 스미지 못하면 그저 짜기만 한 소금물이 어떻게 간장으로 변신할 것이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던 메주가 깊은 대지의 맛을 간직한 된장으로 바뀐단 말인가. 이런 것들은 도시에서는 도저히 배울 수는 없다.

오래된 전축과 고가구의 조합이 그럴싸하다. 이 적절한 매치를 위해 지현 씨는 친구를 통해 직접 맞춤 제작했다.

보통 귀농을 결정할 때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도시에서 맺었던 인간관계가 단절되지 않을까, 하는 고립감에 대한 우려다. 그러나 박지현 씨의 경우 아파트에 살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덕분에 교류가 오히려 늘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가까이에 사는 동생이 선물 받은 새송이버섯을 나누려고 방문하기도 하고, 이웃들이 다녀가기도 했다. 그녀의 사는 모습을 보고 동생을 비롯해 시누이네 가족까지 근처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고 했다.

(좌)살이 부러진 그릇장에 아이가 그린 그림을 붙여놓았다. 집 주변에서 들꽃을 꺾어다 작은 백열전구를 꾸며놓은 센스도 돋보인다.
(우)어느 시골집 대문일까? 그대로 버려질 뻔했던 대문 한 짝이 앤티크한 멋이 살아 있는 앉은뱅이책상으로 변신했다.

“요즘 시골에는 젊은 사람이 워낙 없으니 토박이 어르신들도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셨는지 몰라요. 제가 게으른 농사꾼이라 텃밭을 만들어놓고도 신경을 안 쓸 때가 많은데, 건너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보다 못해 싹 다 베다가 깨를 털어다 주셨어요. 저는 생각도못하고 있다가 ‘웬 깨예요? 고맙습니다’ 했더니 무심하게 그러시더라고요. ‘자네 거여. ’”(웃음)

중학교에 다니는 딸, 소희의 방에는 다락까지 만들어주었다.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싶은 소녀적 감성이 물씬 풍긴다.

그녀도 처음부터 자연의 풍요와 경이를 만끽하며 전원생활에 빠져든 것은 아니다. 도시의 편의시설에 익숙했던 터라 근처에 슈퍼마켓이나 식당이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도 불편했다. 결국 직접 해 먹거나 굶어야 하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 것. “시골 환경이 절 살림꾼으로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먹을 게 없으니까 가까이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에 눈이 가더라고요. 특히 이웃 할머니들이 가라지, 자운영 등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나물을 한 줌씩 가져다주시는데, 그제야 풀 맛을 알겠더라고요. 어렸을 때 저희 할머니께서 꼭 3가지 나물 반찬을 상에 올려주시곤 했는데 그 맛이 떠올랐어요.”

상추, 감자, 미나리, 옥수수, 대나무 등 웬만한 식재료는 집 근처 텃밭이나 길가에 널려 있었다. 부족한 것은 대체할 줄 아는 지혜도 생겼다. 그것이 창의적인 살림법의 밑바탕이 되었다. “하다못해 오이 하나도 맛이 달라요. 재료의 맛이 다른데 어떻게 레시피가 똑같을 수 있겠어요. 노지에서 나는 나물은 하우스에서 재배한 나물보다 훨씬 달아요. 그걸로 국을 끓일 때는 양파를 덜 넣는다든지, 계속해서 새로운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좌)컴퓨터가 있는 작업실 겸 서재. 집을 짓다 남은 목재로 책상도 만들고 책장도 꾸몄다.
(우)요즘 헬렌 니어링의 책에 푹 빠져 있다는 박지현 씨. 햇살 가득한 온실 같은 베란다에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시골에 와서야 비로소 진짜 입맛이 살아났다. 하루 세 끼 양껏 밥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아이스크림보다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미숫가루를 더 좋아한단다. 그녀가 시골살이를 통해 받은 선물을 헤아리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Story 4 창의적 살림의 기본, 거리 두기

그녀의 집에 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손님 온다고 대청소한 거 아니에요?” 거실이며 애들 방에 잡동사니 하나 허투루 놓인 데가 없고, 구석구석 먼지 한 톨 찾아보기 힘들다. 작은 테이블에 센스 있게 놓인 마른 꽃과 열매들, 부엌에는 모양대로 크기대로 보기 좋게 정리해둔 그릇들. 정갈하고 깔끔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모델하우스처럼 너무 깨끗해서 건드리기 어려운 깔끔함이 아니라 머무는 이의 마음을 고요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둥지 같은 느낌이다. “손님들이 놀러오면 저희 애들한테 몰래 물어본대요. ‘솔직히 말해봐. 평소엔 어지르고 살지?’ 우리 애들은 솔직하게 대답하죠. ‘항상 이래요. ’ 저는 정리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강박관념을 가지고 청소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편은 아니에요. 언제까지 이걸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 시작하면 스트레스죠. 사람들은 늘 깨끗한 모습만 보니까 제가 엄청 부지런한 줄 알아요.(웃음)”

그녀가 짧은 시간에 재미있게 정리 정돈하는 방법으로 고안해낸 것이 바로 ‘테트리스 청소법’이다. 모양에 맞게 끼워 맞추는 테트리스처럼 물건도 맞는 자리에 끼워 넣듯 채우는 것이다.

“만약 33평 아파트를 1억 전세로 산다고 쳐요. 방 하나는 창고처럼 변하고, 잡동사니 때문에 안 쓰는 공간이 늘어나다 보면 결국 절반밖에 안 되는 17평에 사는 셈이 돼요. 그럼 1억이 아니라 5천만원짜리 집에 사는 거잖아요. 물건들이 나머지 5천만원짜리 공간을 쓰고 있는 거고요. 이자로 따져도 얼마나 손해예요? 제가 가서 보면 다 들어갈 자리가 있는데 끼워 맞추지를 못하는 거예요. 만약 도저히 새로운 물건을 넣을 공간이 없다면 버리는 게 현명한 거죠.”

살림도, 정리 정돈도 잘해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거리 두기를 하다 보면 창의적인 방법이 떠오른다는 것이 박지현 씨의 이론이다. 그것은 육아 문제도 마찬가지다. 남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상경한다지만, 그녀는 오히려 자녀들을 위해 시골로 내려왔다. “가까이에 붙잡아두고 지식을 집어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오히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살아가는 힘이 되고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메마른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 자극이 되는 것도 많고요.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 새로운 풀들, 꽃이 피고 지는 모습…. 모두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좋은 요소가 되죠."

1. 나무 조각과 한지로 직접 만든 조명. 집을 지을 때 만들면서 해마다 바꾸리라 계획했지만 10년째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2. 빨래판 하나에서도 친환경적인 센스가 돋보인다.
3. 시골 장터에서 어느 할머니로부터 구입한 4만원짜리 조각보를 지현 씨는 딸 방에 커튼으로 달아주었다. 면과 모시 등 갖가지 흰 천으로 정성스레 만든 조각보가 햇살을 곱게 쪼갠다.
4.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달려 있는 조명은 어렵게 맘에 드는 것을 구입한 것이다. 정 맘에 드는 게 없으면 맞춤 제작을 해서라도 갖고 만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형준이는 관찰력과 호기심이 유별나다고 했다. 꿈은 왜 꾸는지, 봄에 개털은 왜 빠지는지, 유행가에는 왜 사랑 노래가 많은지 궁금한 것도 많고 스스로 찾아나가는 능력도 탁월하다. 어린 나이에 벌써 프로이트 책을 읽는가 하면 요즘엔 어린이용으로 제작된 니체의 철학서도 읽을 정도로 사유의 폭이 넓다. 실컷 놀고,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지 학교 공부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단다. 그 덕분인지 지금까지 학교에서 시험만 보면 늘 ‘올백’이란다.

사춘기인 첫째 딸 소희의 구김살 없는 성격과 꿋꿋함도 자연이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보통 아이라면 못 참을 상황도 소희는 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잘 견뎌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유독 옆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와 짝이 됐는데 선생님이 얘만 짝을 안 바꿔주는 바람에 1년 가까이 고생을 했어요. 힘들면 말하라고 했는데 나름대로 대처를 잘하더라고요. 준비물도 그 아이 것까지 두 배를 챙겨가고, 허물을 덮어주기도 하고…. 그러니까 걔가 친해지자며 편지까지 주더래요.” 그 어린 나이에 어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책임질 줄 아는 지혜를 깨우친 것이다.

1. 액세서리를 적당한 곳에 걸어놓은 것뿐인데도 멋진 인테리어 소품으로 변신했다.
2. 그녀의 꽃 사용법은 무궁무진하다. 잘 말려 인테리어 용도로 쓰기도 하고, 전으로 부쳐 먹거나, 두부나 샐러드 위에 보기 좋게 뿌려 먹기도 한다.
3. 물기 가득 머금은 다육 식물. 집 안 이곳저곳의 크고 작은 화분이 자연의 향기를 더해준다.
4. 금속으로 만든 나뭇잎 모양 브로치. 겨울에는 브로치로 쓰다가 커튼을 고정시키는 핀으로도 사용한다.

시골에 온 후 가족 모두가 건강을 찾게 된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큰 선물이다. 치과의사인 남편 전상운 씨는 이곳에서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익힌 덕분에 무려 15㎏이나 체중이 줄었단다. 아파트에 살 때는 늘 아토피로 고생하던 소희도 시골집으로 이사한 지 몇 년 안 되어 증상이 싹 나았다. 지현 씨 또한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혔던 알레르기 증세가 거짓말처럼 낫는 것을 보고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고. “많은 사람이 행복을 고민하지만 ‘파랑새는 늘 가까이에 있다’는 교훈을 쉽게 잊는 것 같아요.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살림, 내가 만든 밥상을 고마워하는 가족, 아름다운 자연이 내게 일러주는 가르침. 주어진 행복을 온전히 누리기에 우리 삶은 길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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