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진취적으로 일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자유기고가로서 나는 지금까지 참 쉽게쉽게 길을 걸어왔다.

일거리가 넘쳐나 다른 이들에게 떼준 적은 있어도

없어서 고생한 적은 없다.

다들 첫 시작을 어떻게 하냐며 궁금해 하지만,

솔직히 난 답해줄만한 게 없다.

그냥 여기저기서 내 연락처가 돌고 돌아 청탁하는 전화가 왔으니까.

이는 내 성격에 기인한 탓이 클 테다.

일이 적은 달에는 놀 시간이 늘었다며 좋아했고,

반대로 일이 많이 들어온 달에는 통장 잔고를 상상하며 뿌듯해했다.

아무려나 일이 적든 많든 별 상관이 없었던 거다.

오히려 작년에 너무 폭주한 탓에 심신이 지쳐

청탁하는 전화가 고만 왔으면, 하고 내심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일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별것 아닌 인터뷰 기사를 3일째 잡고 질질 끌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뭐랄까... 자유기고가로 살아온 이래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낀달까.

내가 좋아했던 매체 L사가 사전 논의도 없이 페이지를 줄이는 걸 보면서

몇년전 열심히 일했던 W잡지가 오버랩되었다.

프리랜서를 아주 종같이 부리던 잡지였다.

아침에 청탁하고선 밤까지 써내라고 닦달하질 않나

좀스럽게 원고료를 몇만원씩 깎아대질 않나.

(원고료 산정방법도 멋대로였다. 이미지 많을 때는 원고지로 계산, 이미지 없을 땐 페이지로 계산;;)

진행비는 제대로 지급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수십만원 생돈 날렸을 거다.ㅠㅠ)

애써서 청탁한 분량 맞춰서 보내주면 자기들 입맛대로 가위질이었다.

(물론 편집자의 손길이 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절반가까이 원고가 잘려나갈 땐 미리 얘기 정도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암튼 이후로는 그쪽 일은 거의 받질 않았고, 자연스레 청탁 전화도 뜸해졌다.

그런데 지난달 웬일로 부록을 통으로 맡긴다고 해서 덥석 받았더니

또 몇년전과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거다.(기획안 대로 가지 않고 두시간마다 구성 바꾸기... 결국 찌라시 기사만 떠안게 만드는;;) 왜 아닌가 했다. 분명 열받을 일이 눈에 보여서 그냥 손 떼겠다고 했다.

별 아쉬움은 없었지만 조금 비참했다.

왜 아직도 난 이런 대우를 받는 걸까.

결국 화살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에게 보인 내모습이, 고작 그만큼만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아니라고 강변해도 일시키는 사람이 보는 눈이 제일 정확한 거다.

L사도 나를 그렇게 보는 것 같아 불안해졌다.

이 잡지 좋아하는데... 이 잡지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사람들...

그 기회들, 놓치고 싶지 않은데....

그러려면 좀더 열심히 해야 한다. 치열해져야 한다.

지난 달 편집장이 한 얘기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물론 늘 그렇듯이

하나의 기회를 놓치면 또 다른 기회가 다가오곤 했다.

그렇게 늘 현상 유지는 해왔다.

그 운발이 날 이 지경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닌가.

이젠 좀 정신 차리자.

나는 좀 불안해할 필요가 있다.

by 트래블러 2011. 7. 17.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