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 & DOCU 희망지기
우리동네 희망학원

척박한 땅에서 틔워내는 간절한 희망

조금 지능이 모자라더라도, 지나치게 산만하더라도, 남보다 좀 뒤떨어지더라도 따돌림 받지 않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과연 어디에?’ 라고 묻는 학부모들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세상 유일의 학원. 우리동네 희망학원에 다녀왔다.
Written by 홍유진 Photo by 이한마루

이곳을 알게 된 것은 참으로 우연한 일이었다. ‘(주)우리동네’라는 사회적 기업의 대표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무척 인상에 남았던 것이다.
“학교에서도 늘 따돌림만 당하고, 학원에 다니고 싶어도 결국 쫓겨나고 마는 애들이 있어요. 지능이 낮아서 수업 따라가기도 힘들고 소위 ADHD 때문에 산만해서 다른 친구들 공부까지 방해한다는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특수학교에 가야할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게 더 문제예요. 대체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요?”
정신과의사이기도 한 안병은 대표는 장애 수준은 아니지만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만을 위한 학원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참 좋은 취지의 학원이구나, 하고 듣고 넘겼는데 되새겨볼수록 대체 어떤 학원의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번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다.

정상과 비정상, 그 경계에 선 아이들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평범해 보이는 주택가 2층에 알록달록하게 창문을 장식해놓은 우리동네 희망학원을 만날 수 있었다. 학원 내부에 들어선 순간, 원목이 주는 편안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우선 눈에 들어왔다. 마치 유치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화사하고 앙증맞은 분위기였다.
“현재는 초등학생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나이보다 성장이 늦다보니 그에 맞는 학습과 프로그램이 필요하지요. 그래도 처음엔 3학년 과정을 배우던 12살 아이가 1년만에 5학년 책으로 배우게 됐으니 많은 발전을 했어요.”
현재 사회적기업 (주)우리동네의 사회복지사이자, 희망학원의 부원장을 맡고 있는 정희영 선생님을 만났다. 그녀로부터 학원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세상에 이런 학원이 있구나’ 하는 신기함과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난 해 오픈한 우리동네 희망학원은 앞서 언급한 대로 지능이 낮거나 ADHD 등의 장애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초등학생을 위한 학원이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양한데 학년에 상관없이 나이별로 세 반을 구성했다. 한반에 5명씩 총 15명이다. 처음에는 의욕에 차서 서른 명까지 학생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 정도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신입생은 받지 않고 있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평균 아이큐는 높게는 80부터 낮은 경우에는 30밖에 안 된다. 대부분 ADHD가 있지만 극도의 산만함과 공격성을 가진 아이도 있는 반면 자폐에 가까울 정도로 표현을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단다.
“대부분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이에요. 지능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눈만 마주쳐도 괜히 시비를 건다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아무 때나 막 던지죠. 이런 아이들은 약이 없으면 수업시간에 1분도 제대로 못 앉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일반 학원에서는 도저히 감당해내질 못하죠.”
우리동네 희망학원의 특징은 이런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선생님들이 학과 과목을 가르친다는 점이다. 월, 수, 금 주 3일 수업 체제로 운영되며 하루 수업은 총 3교시로 되어 있다. 두 시간은 국어와 수학 같은 학교 교과목을, 나머지 한 시간은 미술치료, 음악치료, 요리와 같이 치유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치시킨다. 치료 프로그램이 일반 상담센터에서도 시간당 3~10만 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한 달에 20만 원이라는 교육비는 파격적으로 저렴한 가격임에 틀림없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의 경우에는 그마저도 50% 감면을 해준다고 한다.
“아무래도 또래보다 지능도 낮고 행동이 어리다보니 어머니들이 입학을 늦추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제 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드문데, 아이로서도 힘들 수밖에 없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 친구들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이상한 행동을 하니까 계속해서 따돌림을 받게 되고….”[##줄바꿈##]
학교에서는 ‘도움반’이라는 것을 만들어 학습 능력이 부진한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따로 시행하기도 한다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못되는 형편이라고. 모자란 학습량을 보충하기 위해 학원에도 보내 보지만, 아이가 학원 수업을 방해한다는 이유, 혹은 다른 학부모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쫓겨나기 십상이다. 가뜩이나 학습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교육적인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형국이다.

마음이 아픈 아이와 가슴이 아픈 엄마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영미(가명)의 부모는 직장도, 보금자리도 버리고 아이를 위해 시골로 이사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의 증세가 치료를 통해 낫는 질병이 아니라 장애라는 것을 인식한 이상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도심에서는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처받고 소외당해야 했던 아픔이 그토록 컸던 것이다.
“아이나 부모님이나 참 불쌍한 경우가 많아요. 남에게 폐를 끼칠 때는 물론이고, 굳이 그런 것도 아닌데 당당하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거든요. 제가 아는 어떤 어머니는 일부러 학교의 온갖 궂은일을 다 맡아 하시더라고요. 그래야 아이가 조금이라도 덜 혼나지 않겠냐면서 말이죠.”
그런 학부모들이나 아이들에게 우리동네 희망학원은 그 자체로 ‘희망’에 다름 아니었다. 수업시간은 3시에 시작되지만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는 수요일엔 1시 반부터 학원에 서둘러 달려온다. 학교보다 즐겁고 집보다 더 편안한 곳. 아이들에게는 학원이 그런 곳이다. 우리동네 희망학원은 ‘욕하고 싸우는 행동’만 아니면 어떤 일을 해도 제지를 받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기에 아이들은 학원에서만큼은 최고로 자유롭다. 학부모들은 나름대로의 공동체를 만들어 학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 아이가 살면서 겪어가야 할 고통, 그 이상을 미리 감내하고 있는 부모님들이다.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식이 남들보다 못하기를 바라겠어요? 모두들 더 남보다 뛰어난 아이로 키우기 위해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키고 하는 거겠죠. 하지만, 저희 학원 학부모님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예요. 그저 남들만큼만 하는 것. 그조차도 바랄 수가 없으니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겠지요.”
우리동네 희망학원의 학부모들은 정기 모임을 통해 서로의 고통을 나누기도 하고, 상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일반 아이들보다 배 이상 돌보기 힘든 아이들이기에 월, 수, 금요일만큼은 마음을 놓고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되기도 한단다.
“많은 학부모님들이 힘들어하시는 이유는 아이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에요. 비록 아이가 지금은 모자라지만 좀더 열심히 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고….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이도 엄마도 힘들어지죠.”
붙잡고 아이를 닦달하면 할수록 고통의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이다. 정희영 선생은 조금씩 아이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동네 희망학원에서는 셔틀버스를 운영하지 않고, 아이들이 혼자 버스도 타고, 정해진 시간에 혼자 오는 훈련을 하도록 하고 있다.

서로의 마음과 손길로 새로운 희망을 틔워내
오후 2시쯤, 앳된 얼굴의 대학생들이 대여섯 명이나 나타났다. 근처 아주대 아동심리학과에 재학 중인 자원봉사 선생님으로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진행되는 프로그램들도 미술치료나 음악치료 선생님의 무료 자원봉사 덕분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실 이와 같은 여러 도움이 없으면 우리 동네 희망학원은 사실상 유지되기가 힘들다.
“지난 해 아동임상심리소학회 활동을 하다가 선배의 소개로 시작하게 됐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낯설기도 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어요. 하지만 하다보니 정도 들고 아이들 증세가 나아지는 과정을 보니 보람도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엔 말을 한 마디도 안 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주 친해졌어요.”
우리동네 희망학원이 설립된 초기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아주대 아동심리학과 신혜원 학생은 벌써 1년 넘게 아이들과 친분을 쌓아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우리 동네 희망학원의 수업 풍경도 다른 곳과 사뭇 다르다. 아이가 수업 중에 이상한 질문을 해도, 떠들거나 돌아다녀도 선생님은 소리를 지르거나 강제로 막지 않는다. 우리동네 희망학원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룰은 단 한가지뿐이다. ‘욕하지 않는다’, ‘친구와 싸우지 않는다’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되는 셈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고도 불리는 ADHD(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는 사실, 유아기 또는 학령기 아동들에게 가장 흔히 관찰되는 질환들 중의 하나로 약 5%의 아동이 이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 중 약 50%정도는 만 4세 이전에 발병되지만 대개는 유치원이나 학교 입학과 함께 행동상의 문제가 뚜렷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유난히 산만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아이가 있다면 반드시 ADHD를 의심해 봐야 한다. ‘아이가 좀 산만할 수도 있지’, ‘크면 나아지겠지’하면서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면 성인기까지 그 증상이 지속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희영 부원장은 ‘ADHD는 결코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뇌 발달의 불균형으로 일어나는 뇌 질환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따라서 적절한 약물치료와 양질의 교육을 통해서 스스로를 절제하는 법을 익히게 되면 사회성도 기를 수 있고, 자신만의 장점을 발견해 자아실현을 할 수도 있다. 흔히 ADHD를 극복한 사례로 수영선수 펠프스의 예를 든다. 펠프스는 7세 때 ADHD 판정을 받은 이후 이를 치료하기 위해 약을 먹으면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반대로, 그대로 방치한 채로 성인이 된다면 폭력성을 제어하지 못해 온전한 성인으로서 역할을 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ADHD를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동네 희망학원과 같은 배움터의 역할은 절실해 보인다. 아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질 테니까 말이다.

장애를 극복하게 만드는 교육의 힘
그렇다면 왜 그동안 이런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걸까. 첫 번째 이유는 운영상의 어려움을 들 수 있다. 현재 우리동네 희망학원의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원생들로부터 걷는 학원비로는 교사 2명의 인건비도 나오기 힘들어보였다. 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저희 학원은 도저히 이윤이 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주식회사 우리동네의 독특한 인력구성과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도움 덕분이죠.”
(주)우리동네는 정신과의사인 안병은 대표가 창립한 사회적 기업으로 지체장애나 정신 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직업을 갖게 해줌으로써 경제적, 사회적 자립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곳이다. 편의점 사업, 운동화 빨래방, 세탁소 등 많은 시도를 해왔고 지금은 수원의 여러 대학가 근처에 ‘우리동네 커피집’을 운영하고 있다. 정희영 부원장도 사회복지사 출신으로 처음에는 세탁소 등에서 장애인들의 재활과 독립을 돕다가 학원을 맡게 되었다고 했다.
“지난해 노동부에서 진행했던 ‘소셜벤처전국경연대회’에 이런 학원이 있으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수익성이 없다는 점이 큰 문제요소로 지적되긴 했지만 저희만의 독특한 인력 운영 방식 덕분에 통과가 되었죠. 다행히도 경인 지역 최우수상을 탄 덕분에 이자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학원을 오픈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사회적 기업 (주)우리동네는 그 안에 있는 병원, 카페, 학원 등이 인력을 공유하고 있다. 정희영 부원장도 수업이 없는 날이면 병원에서 업무를 보기도 하고, 카페 직원이 자원봉사를 하러 학원에 오기도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도 따로 없다. 정신 병력 때문에 직업을 갖지 못했던 환자에게 취업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고, 현재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직업활동의 장으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실제로, 우리동네 커피집의 경우 다섯 곳의 프랜차이즈 지점이 있는데요. 조건은 저희 환자분들이 만든 와플과 커피콩을 쓸 것과 가능하다면 환자 분을 직원으로 채용해주기를 권하고 있어요. 강요 사항은 아니지만 다행히 많은 사장님들이 환자 분들을 채용해주셨고, 또 일을 잘 하고 있고요.”
사실, 정신 병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동네 희망학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 학원이 다른 학원과 또 다른 점은 학업을 위해 잠시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서 직업을 갖고 정착할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진다는 점일 것이다.
“저희 학원의 최종 목표는 지금 다니고 있는 열다섯 명의 아이들이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이 가진 소질을 개발해 건강한 성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으로 중학생이 나오는 내년부터는 조금씩 직업 체험을 시켜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탐색해볼 예정이에요.”
한 때 그들이 속해야 할 사회에서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 적절한 교육의 힘으로 다시 사회에 돌아가는 날까지, 우리동네 희망학원의 ‘희망찾기’는 계속될 예정이다.

(주) 우리동네

정신과의사인 안병은 대표가 2008년 건립한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인 편견 속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정신질환자들을 위해 직업을 찾아주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재활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정신잘환자를 직접 고용하는 편의점 사업부터 시작해, 여러 사업을 거쳐 현재는 수원 대학가 곳곳에 ‘우리동네 커피집’사업을 활발하게 펼쳐나가고 있다. 그 중 학원사업은 일반학교를 다니고는 있지만 ADHD를 앓거나 지능 발달이 더뎌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작은 배움터다. 지난해, 노동부에서 주최한 소셜벤처전국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www.humanishope.com

by 트래블러 2011. 2. 27. 2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