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신드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의 자격’ 오합지졸 합창단을 데리고 눈물 쏙 빼는 감동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낸 박칼린 감독의 리더십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병마의 고통도 막지 못한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인간적이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박칼린 감독의 매력을 들여다본다.
다재다능, 팔방미인… 그녀가 걸어온 길
‘남격’ 방영 이래 이번 에피소드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은 적은 없었다. 고정 멤버들은 물론 선우, 배다해 등 합창단 멤버들도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되는가 하면, 박칼린 감독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화제가 됐다. 특히 그녀의 존재감은 대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처음 그녀는 ‘남격’이 선정한 아이템, ‘남자 그리고 하모니’를 진행할 음악 선생님으로 초빙됐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김성민, 이윤석, 이정진, 윤형빈 등 7명의 멤버와 함께 하모니를 만들어갈 단원들을 뽑는 오디션부터 그녀의 카리스마는 조용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뇌세포 하나까지 꿰뚫어볼 것만 같은 커다란 눈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천상의 하모니를 만들어갈 23명의 멤버를 뽑은 것도 그녀였다.
기상천외한 미션을 수행하며 1년 넘게 함께해온 MC들은 열정이 부족했고, 각 분야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합창단에 합류한 단원들에게서도 큰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박칼린 감독은 끊임없이 보다 높은 수준의 과제를 요구하며 분위기를 잡아 나갔다. 무조건 웃겨야 한다는 예능 프로그램의 본분 따윈 잊힌 지 오래였다. 대신 그 자리는 박칼린이란 음악인이 인도하는 감동과 열정으로 채워졌다.
연습 초반, 열정도 화합도 느껴지지 않는 화성에 대해 불벼락이 쏟아졌고 가장 중요한 여성 솔로들에게는 최고 수준의 미션이 부여됐다. 끝내 눈물을 보이며 자신의 능력과 부족한 열정을 자책하는 모습에는 지켜보는 이들도 마음 아파했다. 그렇게 처음엔 화음은커녕 모두가 엇박자 내기에 바쁘던 이들이 박칼린을 중심으로 단 2개월 만에 환상의 하모니를 만들어낸 순간, 그때만큼은 ‘남격’이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영화보다 감동적이고 다큐보다도 실감나는 내 이웃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남격’ 합창단은 지난 9월 3일, 제7회 거제전국합창경연대회에서 ‘넬라 판타지아’와 ‘만화 주제곡 메들리’를 불러 장려상을 받았다. 비록, 예상에는 조금 못 미친 성적이었을지는 몰라도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충분히 감동을 주었기에 미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주인공 박칼린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미국 국적의 음악인, 뮤지컬 음악감독 1호라는 타이틀 정도였다면, 이제는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셈이다. 수많은 누리꾼들은 “제2의 강마에 탄생을 넘어 마치 한국어를 구사하는 히딩크를 보는 것 같다”며 “이런 상사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환호한다. 그녀와 두 달을 함께한 이경규도 “박칼린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여성 가운데 최고의 아우라를 지닌 사람이었다. 열정, 진정성, 태도, 뚝심으로 버티는 가식 없는 모습 등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며 소회를 밝혔다.
박칼린의 트위터는 방송 이후 팔로어가 1만4천 명으로 급증했고, 각종 인터뷰 요청과 함께 미디어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아리랑TV 인터뷰 프로그램인 <아리랑카페>의 MC자리를 꿰찼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가십 기사가 되고 있다.
박칼린 감독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일을 20년 가까이 해왔다. 매일 같은 스케줄로 살아왔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난 뒤 트위터 팔로어도 많아지고 민망해 죽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녀는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 부산과 미국을 오가며 성장해온 배경에 걸맞게 그간 걸어온 궤적도 종횡무진이었다. 아홉 살부터 첼로를 시작했지만 무용도 함께 배웠고, 한국으로 건너와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연극을 시작해 1984년 청소년연극제에서 연기상도 받았다. 전공하던 첼로를 그만두고 우주공학과 경비행기 조종을 익혔고,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다 명창 박동진 선생에게서 소리를 배우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첼로 전공으로 학사과정을 마친 뒤 다시 한국으로 와 서울대대학원에서 국악작곡 석사과정을 밟았다. 부산시립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다가 대학로로 자리를 옮긴 뒤, 1987년 연극 <불의 가면>으로 음악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1995년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를 통해 뮤지컬 음악감독 1호가 됐다.
박칼린 감독은 <명성황후>를 시작으로 <페임>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시카고> <노틀담의 곱추> <아이다> 등에 이르기까지 뮤지컬의 황금기를 이끈 대표적인 뮤지컬 음악감독이다. 그녀 손을 거쳐 간 작품만 50여 편에 이를 정도인데다 연극배우, 가수, 영화음악 작·편곡, 음반 녹음감독 및 프로듀서, 극작가, 뮤지컬아카데미 강사, 방송 진행자, 대학교수 등 그 다재다능함은 열거하기도 힘들다.
“저는 ‘필’이 오면 꽂히는 스타일이에요. 퍼즐을 맞추듯이 한 가지 숙제가 풀리면 다른 숙제로 넘어가요. 새로운 도전을 늘 갈망하고, 잘하는 것보다는 못하는 것을 더 해내고 싶어 하죠.”
왜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 욕심을 내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만큼 해내야 한다는 목적이 아니라 제 머릿속에 그려진 완벽한 그림을 좇아가는 거예요. 욕심을 앞세워서 목표를 세우고 움직이지는 않아요.”
사실, 순혈주의와 서열주의가 판치는 대한민국에서 ‘혼혈’ ‘여성’ ‘나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이만큼 달려왔다는 자체만으로도 놀랄 일이다. 따라서 그녀의 독특한 성공 스토리와 ‘남격’ 합창단을 통해 보여준 새로운 리더십에 많은 시청자가 감동을 느낀 것이다. 문화평론가 조희제씨는 “프로젝트 구성원 누구 하나 내치지 않고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에 눈뜨게 만든다는 점에서 남자 직장인들의 관심을 끈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칼린이 뒤늦게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각광받게 된 이면에는 ‘소통을 중시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대한 대중의 목마름이 있었다는 해석이다.
신장병 투병… 지금 죽어도 여한 없다
한편, 박칼린 감독은 만성 신장염으로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음악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으로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그녀가 자신의 병을 안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늘 두통을 달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안 보였다.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안 보이고 주변만 보였다고 한다. 2002년 병원을 찾아 검사를 해보니 신장 이상으로 혈압이 200까지 올라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가족들은 신장을 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 신장이 거의 기능을 다한 상태라 신장이식을 받거나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담담하게 자신의 병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녀는 “한번 안 좋아진 신장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나는 아픈 것을 잊고 산다”고 밝혔다. 또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다 뿌리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낙관주의와 열정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큰 호통을 치거나, 극적인 연출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멤버들을 하나, 하나 세심하게 바라보는 박칼린 감독의 뜨거운 눈빛, 부드럽지만 강한 카리스마에 시청자들은 압도됐다. 아직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합창단원들을 독려해 모두의 재능을 뽑아내고 서로를 의지하고 믿게 만든 것도 그녀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7명의 멤버와 오합지졸 합창단이 그렇게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은 무려 6주에 걸쳐 방송됐지만 그 감동의 깊이는 더해갔다.
박칼린 감독은 “최재림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들은 7명의 멤버들 뒤의 백그라운드 같은 존재일 뿐이다”라며 “그렇지만 시청자들이 안 미워하고 ‘물러가라’고 하지 않아 다행이다. 백스테이지가 이렇게 부각돼 감사하다. 하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 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일부 시청자들은 그녀를 “아름다운 지도자” “히딩크 감독을 잇는 새로운 리더”라고 극찬했고 “박칼린을 통해 도전과 열정이라는 단어를 배웠다”는 감동사도 이어졌다.
“제 좌우명은 ‘이왕 하기로 한 것은 똑바로 하라’예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열정의 크기에서 원하는 퀄리티가 나오는 법이거든요.”
그녀는 ‘남격’에서 끊임없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자기 일에 대한 피와 눈물 없이는 절대로 원하는 수준의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실제 자신이 그 모범을 보이면서 시청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건넨 것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예능 프로그램들의 홍수 속에서 ‘남격’은 마치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감동과 흐뭇함을 선사해주었다. 그러한 차별화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되돌아왔고 일등 공신은 단연 박칼린 감독이었다. 언젠가는 자신이 열연하던 고향 같은 무대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노래하고 싶다고 말하는 뜨거운 사람. 박칼린 감독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가 가능한 한 오래 이어지길, 대중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거제전국합창경연대회에 참가한 ‘남자의 자격’ 합창단 현장 스케치
지난 9월 3일, 거제도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남격’ 팀은 한창 연습 중이었다. 언뜻 듣기엔 좀 불안해 보이기도 했지만, 박칼린 선장의 지휘 아래 화음을 이루는 선원들의 모습은 꽤 믿음직스러웠다.
마침내 대회 시작. 아마추어 합창단 경연대회지만 참가한 20팀은 모두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20팀 가운데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남격’ 팀은 후회 없는 무대를 선보였다. 그들이 부른 곡은 ‘넬라 판타지아’와 ‘만화 주제곡 메들리’. 특히 다양한 율동을 곁들인 만화 주제곡 메들리는 관객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과는 장려상. 비록 기대에는 조금 못 미친 결과였을지 몰라도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충분히 감동을 주었다. 이렇게 ‘남격’ 팀은 죽기 전에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을 리얼하게 끝마쳤다.
다음은 합창단원으로 선발돼 당당히 솔리스트가 된 선우가 바라본 ‘남격’ 멤버들의 리얼 모습.
이경규 방송에서 보이는 것처럼 정말 대장이다. TV에선 개그맨답게 웃긴 모습도 자주 선보이지만 곁에서 본 그는 아주 진지한 캐릭터. 연습 분위기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집중하자!”며 분위기를 다잡고, MT를 가서는 합창단원들에게 일일이 자상하게 연예계 활동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
김태원 방송에서 보이는 것처럼 실제로도 체력이 정말 부실하다. 중간중간 쉬어줘야 한다. 하지만 로커답게 듣는 귀 하나만큼은 정말 탁월!
김국진 정말 수줍음이 많다. 하지만 연습이 끝나면 특유의 착한 웃음으로 고생 많았다고 격려하는 모습이 단원들에게 따스한 힘이 돼주곤한다.
이윤석 선후배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맡고 있다 보니 행여 합창단원들이 때론 무서운 이경규와 김태원을 오해할까 싶어, “형님들이 표현을 잘 못할 뿐이지 정말로 합창단원들을 많이 생각하신다”는 말을 하곤 했다.
김성민 배우로 활동하던 당시의 진중함과는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준 그는 매사에 정말 열심인 사람이다. 방송과 실제 모습이 다른 점이 있다면 조용할 땐 정말 조용하고 진지하다는 것.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처진다 싶으면 주저 없이 나서 분위기를 띄우는 능력이 매우 출중하다.
윤형빈 진짜 예의 바른 연예인. 선배 멤버들을 챙기는 것은 물론 합창단원들까지, 그는 연습하는 내내 주위 사람들을 돌보느라 분주했다. <개그콘서트>에서의 왕비호 캐릭터와 실제 윤형빈은 정확히 정반대 이미지가 아닐런지….
by 트래블러 2010. 11. 22.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