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떠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신정일 (문화사학자)



사람들의 가슴 속엔 저마다의 풍경들이 살고 있다. 다양한 얼굴을 한 그 풍경들은 우리들을 추억에 잠기게 하거나, 우울하게 하거나 때로는 끝 모를 환희로 인도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의 삶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발 디딜 땅이 필요하고 기댈 나무가 필요하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풍경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풍경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신정일의 시선집 <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에는 참 많은 풍경들이 나온다. 그것은 시로, 사진으로, 때로는 작가의 입을 빌어 우리의 예민한 심장을 자꾸만 건드린다. 그리하여 결국은 책을 접고 창 밖, 어딘가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걸으면서 만나는 새로운 세상

“보름이나 한 달쯤, 전쟁터에 나선 전사처럼 죽기 살기로 걸어보라. 하루 이틀이 가고 대엿새가 지나면 밤이면 밤마다 바뀌던 꿈의 풍경이 비슷해질 것이다. 꿈 속에서도 계속 걸어가고, 길을 묻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 가을, 고즈넉한 산사와 한없이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中

그는 ‘걷는 사람’이다. 걷는다는 일상적 행위가 무슨 직업이라도 되느냐고 반문한다면, 적어도 그에게는 그렇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그는 걸으면서 역사를 공부하고, 지리를 익히며, 시와 글을 쓴다. 황토현 문화연구소의 소장이며 우리땅걷기 모임 대표이기도 한 신정일 씨는 길을 걸으며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한 운동을 쉼 없이 펼쳐왔다. 요즘도 한 달에 서너 번씩은 강으로 산으로 답사를 떠난다는 그의 여행 수단은 무조건 ‘걷기’이다. 엊그제 경주에서 돌아왔다는 그는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로 오른쪽 눈 주위를 다쳐 몇 바늘을 꿰맨 상태였다. 그러나 상처가 아물기도 전, 벌써 또 다른 답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의 걷기에 대한 열정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태백시에서 김포까지 한강변을 차로 달리면 8시간 반이 걸립니다. 같은 길을 걸으면 얼마가 걸리는지 아십니까? 16일이 걸려요. 요즘 사람들은 물론 이해를 못합니다. 차로 몇 시간이면 갈 거리를 십수 일씩이나 걸려 힘들게 가는 게 의미가 있겠느냐는 거지요. 그러나 차로 가는 길은 길이 아닙니다. 내가 내 발로 땅을 딛고 걷는 것이 길이지요. 그렇게 강가를 걷다 보면 매 순간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가 있어요. 그것은 드라이브와 비할 것이 아니지요.”


풍경은 시가 되고, 시는 다시 풍경이 되고……

“나는 너무도 많은 세월을 떠돌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제 진정한 ‘떠남’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기도 하고 이제야 떠나고 돌아오는 의미를 알기 시작했는지도 모르지만 새삼스럽게 세낭쿠르의 <열두번째 편지>가 마음 속에 더 깊숙이 파고든다. ‘난 될 수 있는 한 방향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할 수 있는 한 길을 잃으려고 한다.’”
– 여름, 산은 가까워지고 바다는 하얗게 춤추네 中

<다시 쓰는 택리지> 등 이미 다수의 저서를 낸 문화사학자이기도 한 신정일 씨는 원래 시인을 꿈꾸던 문학도였다고 한다. 300편의 습작시를 갖고 있지만 아직 공개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만큼 문학에 대한 애정이 깊은 그이기에 그의 발 닿는 아름다운 산천이 모두 ‘시’였으리라. “제가 시를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시 속의 배경이 되는 곳을 가게 될 때가 많습니다. 또 반대로 그 장소에서 너무나 어울리는 시를 찾게 되기도 하고 지난 추억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제 경험들이 좋은 시들을 이해하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의도한 바처럼 <자꾸만 그곳에 가고 싶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시인들의 친숙한 시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에세이, 또, 글과 너무 잘 어울리는 사진들이 결합된 최상의 앤솔로지가 되었다. “옛날 선비들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이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연 속에서 만나는 시의 아름다움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길의 시인, 아름다운 여행은 계속되다

“내가 가장 먼 길을 걸어갔던 때가 아마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일 것이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당시 제일 부러운 것은 친구들이 입고 있던 중학교 교복이었다. 딴세상에 사는 것처럼 중학교에 간 아이들은 활기에 차 있었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들의 까만 교복만 보고도 괜히 주눅이 들어 그들을 피하곤 했다.” – 겨울, 첫눈이 내리면 내 어두운 마음도 하얘지고 中
신정일 씨는 공부 욕심이 참 많다. 그 동안 출간한 도서만해도 30권에 육박하는데다 그 분야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인터뷰 내내 그가 정확하게 인용하는 문구의 양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돈이 없어서 어렸을 때 학교를 못 다녔어요. 그래도 책을 좋아해서 이웃집에서 빌려 읽은 책만 해도 어마어마했지요. 절박한 상황에서 읽은 책이기에 아직도 이렇게 기억에 오래 남는가 봅니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아직도 배우려는 욕심이 남다르다. 언젠가 시인의 꿈을 꼭 이뤄볼 생각이라며 마음을 다잡는 신정일 씨. 그러나 다만 그 뿐이다. 그에게 길이 집이고, 하늘이 지붕이며 전국 곳곳에 있는 사찰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쉼터다. 서로 어우러져 한데 모여 바다로 나아가는 강물처럼 그는 오늘도 유유히 흘러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의 아름다운 여행이 계속되고 있다.


글, 사진 | 홍유진

by 트래블러 2009. 8. 7. 14:17











잘 나가는 대기업 엘리트 사원 10년 차가 그림쟁이로 변신했다! 독특한 이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장석원 씨. 이제는 밥장이라는 이름을 걸고 그림으로 세상을 만난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그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일상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


서른아홉 그림쟁이의 달콤한 인생

비정규아티스트 밥장

이름 : 장석원
직업: 일러스트레이터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SK그룹 공채에 수석으로 입사했으나 이렇게 평생을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안정적인 직장을 버림. 이후 음악잡지 편집장, 각종 프로젝트 기획 등

다양한 분야를 전전하다 2005년 불현듯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 <비정규 아티

스트의 홀로그림>, <HOT> 등의 책과 ‘밥장의 에피파니’(blog.naver.com/jbob70)라

는 블로그를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그림으로 먹고 사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는 새로운 상상력을 위해 올해 말 뉴욕으로 날아가 달콤한 꼬물꼬물 바이러

스를 세계에 전파할 예정이다.

오전 8시, 신나는 하루가 시작되다

그의 아침이 변했다. 요즘 눈 뜨자마자 그가 하는 생각은 이렇단다.
‘오늘은 어떤 재미난 일이 벌어질까?’
그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는 사람들의 전화가 거의 오전에 걸려오기 때문에 밥장 씨는

적어도 오전 여덟 시에는 무조건 깨어있는 편이다. 그는 창 밖으로 멀리 펼쳐진 북한

산 자락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고 나서 어머니와 둘이 아침드라마를 보며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친 밥장 씨가 작업실로 출근하는 시간은 단 10초. 물론 프리랜서인 그에게

‘출근’이란 의미는 색다르다. 침실과 작업실 사이의 3미터 남짓한 거리가 바로 그의

출근길.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는 관용 표현이 그에게만은 딱 들어맞는 셈이다.
이미 10년이나 회사생활을 해봤던 그로선 현재의 자유로운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프리랜서 생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그가 꼽는 것은 '내가 내 시간

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물론 그 자유가 잠을 더 잘 수 있고, 아침드라마를 볼 수

있고, 자기 시간을 자기 맘대로 쓰는 것만을 뜻하진 않으리라. 오히려 그는 여느 직

장인보다도 시간 관리에 철저하다. 그의 PC에 저장되어 있는 날짜별 일정표가 그가

오늘 어떤 작업을 하고 해야 하는지, 예정된 일정이 무엇인지 비서처럼 알려준다.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상상디자인 카툰 그리기, 클래지콰이 호란의 북칼럼 책에 들어

갈 일러스트 작업, 세상에 하나 뿐인 상품을 만드는 온리원 프로젝트에 제출할 작품

그리기, 각종 전시 준비…. 일일이 나열하는 것조차 숨찰 정도지만 이러한 작업 하나

하나는 그에게 일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모험과도 같다. 하루의 일정을 확

인하고 펜을 잡는 그의 얼굴엔 어느새 신나는 미소가 떠오른다.

오후 1시, 그림으로 만나는 새로운 세상 그리고 사람

전화벨이 울린다. 무심코 작업에 열중하던 그의 손이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든다.
"MBC입니다. 저번에 밥장 씨 방송, 너무 반응이 좋아서요. 오늘 추가 촬영을 하러 가

도 괜찮을까요?"
지난 주, 그를 취재했던 MBC 싱싱뉴스 촬영팀이다. 빡빡한 작업 일정 중에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에 귀찮을 법 한데도 그의 목소리는 밝고 경쾌하다.
"네, 물론이죠. 제 작업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오늘은 어디에 갈까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다 고된 촬영까지 감수해야 하지만 그에게 인터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이다. 때로, 좋은 사람들을 만

나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그가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심지어 자신조차도 - 예상하지 못했다. 미술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그림 쪽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가진 것이 있다면 그의 그림을 좋아해주고

의기를 북돋워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정도일까?
어제는 광화문 스폰지하우스에서의 전시회가 끝났다. 절친한 선배인 스폰지하우스의

조성규 대표와의 인연으로 작업한 독립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의 포스터 작품,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려 완성한 대작 ‘love island’ 등 그의 손을 떠난 정든 작품들이 관객과

만났다. 전시장에서 자신의 그림을 보는 관객들을 구경하는 것도 밥장 씨에겐 크나큰

즐거움 중의 하나. 그의 그림 전시회 풍경은 다른 전시회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0.3mm의 가는 펜촉으로 세밀하게 표현된 그의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그림을 ‘본다’기

보다는 ‘읽는’자세가 되기 마련이다.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고, 땅에서는 정글인 듯

온갖 식물들이 자라고, 착한 눈의 키다리 골렘과 인어공주 사이렌, 브로콜리 천사들

이 노니는 환상의 세계…. 어떤 냉정한 관객도 그의 그림 앞에 선 순간만큼은 그림 너

머의 상상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저녁 7시, 블로그로 세상과 접촉하다

분주한 하루는 또 이렇게 저물어간다. 어둑어둑한 창 밖으로 북한산의 능선이 희미해

진다. 그의 작업대 위에는 현재 그리고 있는 펜화, <각설탕 천사들의 연대기>가 펼쳐

져 있다. 흰 종이 위에 붉은색 로트링 펜으로 그려나간 그림 속에선 사람이 아무도 없

는 카페에서 황금비율의 커피를 내리고 딸기초코케잌을 만드는 각설탕천사들의 활약

상이 펼쳐지고 있다. 그의 상상이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매일 1개

이상 블로그 포스팅하기’라는 원칙을 세운 그는 일단 현재까지 작업한 것을 스캔 받

아 블로그에 올려놓는다.
"오로지 세상을 달달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강림한 천사들의 이야기다. 수호천사들이

각설탕 천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끔 부지런히 커피를 볶고 에스프레소를 짜낸다.

그들의 수다가 길어질수록 그림도 함께 커지겠지."
혼자 일하는 밥장 씨에게 블로그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상사이자 의견을 함께 주고 받

을 수 있는 동료, 힘을 얻을 수 있는 응원군이다. 그가 올린 게시물 아래에는 기다렸

다는 듯 수많은 상사들과 동료들과 응원군들이 댓글을 단다.

‘각설탕 천사의 활약이 궁금해요’, ‘빨간 각설탕이 섹시미까지 갖춰버렸네요.’
그의 블로그 이웃은 이미 수천 명에 이른다. 방문자들이 남긴 글을 하나하나 읽고

답글을 쓰는 시간이 그에겐 하루 중 가장 기쁜 시간이다.
날개 달린 각설탕 천사는 밥장 씨의 마스코트이다. 0.3mm 로트링 펜으로 꼬물꼬물

그려나간 그의 그림들이 곳곳으로 뻗어나가 온 세상을 달콤하게 만들어주기를 그는

상상한다. 그래서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그리고 가슴 설레는 매일을

살 수 있어 행복한 밥장 씨에게서는 달달한 각설탕의 맛과 향이 난다.

Fin.

에디터 홍유진_ 사진 박영현

by 트래블러 2009. 8. 7. 14:06

100년의 커피를 만드는 남자

왈츠앤닥터만 커피박물관 박종만 관장

쉼 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북한강. 수백 년을 흘렀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흐를 거대한 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그윽한 커피 향이 나를 휩싸고 돈다. 너무도 향기롭고 황홀하여, 100년이 가도 사라지지 않을 그런 향기가….

클래식과 원두 향이 어우러진 그곳에 가다

박종만 관장을 만나기 위해 커피 박물관을 찾은 날은 매주 클래식 음악회가 열리는 금요일이었다. 평소엔 티셔츠 차림이다가도 이날만큼은 멋스럽게 턱시도를 차려 입는다는 박관장은 고풍스러운 박물관의 정경과 무척 잘 어울렸다.

경기도 남양주,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을 마주보고 서 있는 왈츠앤닥터만 커피박물관은 마치 커피로 지어진 성과 같은 모양새다. 작고 소박하지만 커피의 역사와 종류, 그리고 향과 맛까지 커피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잘 꾸며놓았다.

“벌써 169회를 맞는 금요음악회에요.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뿐인 영 아티스트 초청 연주회 날인데 날을 잘 잡으셨네요. 커피와 클래식, 얼마나 잘 어울립니까? 뒤풀이로 와인 파티도 한답니다. 금요일 밤을 장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죠.”

커피 관련 유물을 진열해 놓은 전시실이 금요일 오후 6시만 되면 작은 콘서트 홀로 바뀐다. 오래된 물건을 보여주는 단순한 박물관에서 벗어나 음악이 있고 커피가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 변신하는 것이다. 100년 가는 음악회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이렇게 작은 홀에서도 클래식 대가들이 찾아와 연주할 수 있는 문화를 꿈꾼다고 했다.

"나이 들면서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끝없는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답은 간단해요. 첫째,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두 번째는 돈벌이가 되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 인생은 커피로 인해 무척 행복하고 풍요로워졌습니다. 이 박물관은 그런 커피를 위한 제 보답입니다. 제 인생의 보람이기도 하지요."

평범한 사업가, 커피와 기적처럼 만나다

우리나라의 커피소비량은 세계 11위로 국민 한 사람당 일 년에 347잔을 마신다고 한다.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가 커피일 정도로 커피는 이미 우리 일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호품이 되었다. 그런 커피가 유독 박종만 관장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왜일까?

"사실, 저도 똑같았습니다. 습관처럼 매일 마시긴 했지만 특별히 커피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그랬던 커피가 제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20년 전, 당시 인테리어 사업체를 운영하던 박 관장이 출장길에 우연히 방문한 일본 커피공장. 그곳에서 그는 마치 별천지를 발견한 듯 했다. 문을 여는 순간, 이곳저곳에서 커피콩을 볶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고, 훅 하고 내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연기에 가슴이 덥혀졌다. 빨갛게 익은 커피 열매의 색에 반하고 세포 하나까지 일깨우는 듯한 커피의 향과 맛에 매혹된 나머지 그 후로 그는 커피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한참을 고민한 후에 그 커피를 한국 사람에게도 마시게 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인테리어 사업은 어떻게 했냐고요? 깨끗하게 정리했죠."

당시 우리나라는 마담이 곁에 앉아 따라주는 소위 '다방 커피'문화가 대세인 실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세운 왈츠 코리아 프랜차이즈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원두커피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한 때 체인점이 70여개까지 늘 정도로 번성했다.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커피를 마셨는지 몰라요. 공부도 많이 했죠.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했어요. 한번은 블루마운틴 원두가 이렇게 비싼 이유가 뭘까, 궁금해서 자마이카까지 다녀오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커피에 대한 열정은 계속 이어져 지금도 그는 매년 커피의 원류를 찾아 아프리카와 아랍 등지의 커피 원산지를 탐험하고 있다.

다방에서 문화와 예술과 낭만을 논하다

미처 몰랐던 사실 하나.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가 무려 100년이 넘는다는 것이다. 1896년 고종황제가 최초의 커피 애호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커피 관련 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실정이다. 박종만 관장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럽에 가면 100년 역사를 가진 식당, 200년이나 한 자리에 있었던 책방 등 참 흔하게 볼 수 있어요. 하물며 집에서 쓰는 침대마저도 백년 된 게 많아요. 3대조 할아버지가 쓰시던 거 그대로 물려받는다고요. 그런 것에 대한 부러움이 참 커요. 우리에게는 왜 그런 게 없을까……."

그는 올해 하반기 '다방 展'을 열 예정이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산실, '다방'의 본래적 의미를 되짚어보자는 취지다.

"한번 생각해보자고요. 가난한 문인들은 집에 전화도 없었어요. 대충 점심 지나고 보자, 하고 다방에서 보기로 한단 말이죠. 그런데 사정이 생겨 상대방이 못 오게 되면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종일 기다리는 거죠. 그 시간에 뭐하겠어요? 낙서하고 그림 그리고……. 거기서 예술이 시작된 겁니다. 그게 커피입니다."

천재 시인 이상도 '제비'라는 다방을 직접 운영했을 정도로 서울 명동은 수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문화적 진원지였다. 그러나 현재, 돌체 다방, 은하수 다방, 문예 싸롱 등 이름난 명물 다방이 있던 자리에는 주물로 만든 표지만이 그 흔적을 희미하게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의식을 하던, 하지 않던 커피는 우리의 삶과 같은 속도로 늘 함께 하고 있다. 커피와 역사, 커피와 연애, 커피와 문학……. 아주 오래전부터 커피는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심각한, 그러나 아름다운 중독으로 자리 잡은 건 아닐까? 그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박종만 관장은 오늘도 커피를 마시며 새로운 모험을 계획하고 있다.

"100년 전부터 커피를 마셔왔듯, 100년 후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커피를 마실 겁니다. 그 때에는 우리 땅에서 재배된 커피도 마셔야 하지 않겠어요? 기다려 보세요. 아주 기가 막힌 커피가 될 테니까요."

글 홍유진_ 사진 박영현

by 트래블러 2009. 8. 7. 14:03
진정한 부자가 되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아버지의 가계부>

제윤경 님_가정재무주치의

“물려받은 재산이나 로또당첨 없는 내가 진짜 부자가 된다.”

재테크 정보의 홍수다. TV에서도 잡지에서도 잘 사는 법, 효율적인 재테크 방법에 대한 전문가 의견이 넘쳐나고, 가까운 서점에만 가 보아도 관련 서적이 수백 권은 됨 직하다. 문득 의아해진다. 너도나도 부자 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어째서 진짜 부자는 한 명도 없는 걸까? 어째서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는데 ‘난 부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걸까?

SBS 프로그램 <잘살아보세>의 재무주치의 제윤경 씨가 낸 ‘아버지의 가계부’(생각의나무 펴냄)는 그래서 소중하다. 흔하디 흔한 제테크 방법을 일러주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사람 위에 있는 현 세태를 비판하고 사람이 돈의 주인이 되는 방법을 일러준다. 책 속에 나오는 네 부부의 모습은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윤경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받아야 할 재무치료는 무엇인지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허영을 권하는 사회… ‘불로소득’은 ‘능력’이 아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희망재무상담이라는 회사에서 교육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한겨레 신문과 오마이뉴스에 재무컨설팅 관련 칼럼을 제공하고 있고 SBS <잘살아보세>에서는 재무주치의로 출연하면서 재무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출연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기존의 재테크 상담과는 크게 다른 것 같다.

그렇다. 보통 재테크 상담은 대개 상품 추천이다. 그런데 이게 독이 될 수 있다. 의뢰인의 생활 습관, 가정 환경을 모르고 제대로 된 상담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정재무상담을 통해 돈에 대한 태도와 경제관념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부터 이야기하면서 풀어나가려 한다.

재무전문가로서 방송 출연도 하고 신문에 칼럼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책까지 출판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오랫동안 글을 써 왔기 때문에 책을 내라는 권유는 사실 끊임없이 받아 왔다. 그러나 안 그래도 재테크 관련 책들이 넘쳐나는데 나까지 합세할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내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책이 너무 많아서이다. 불필요한 재테크 책들이 너무 많고 이것들이 돈에 대한 환상을 심고 있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돈 만들기 처세법은 오히려 해를 끼치기 마련이다.

대박은 없다.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열심히 벌고 아끼는 것.

실용서적임에도 이야기 책 같은 느낌이다. 각각 상황이 다른 네 부부의 사례가 나오고 그에 따른 진단이 아주 쉽게 잘 설명 돼 있다. 굳이 이런 형식을 취한 이유가 있는지.

기존 책들의 구성은 너무 똑같다. 모두가 전문가의 직설적 조언 형식으로 수십 개의 카테고리가 있지만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게 몇 개나 되는가. 사실 책에 싣고 싶은 금융지식이라든지, 전문지식은 많았지만 그런 부분보다 메시지에 주력했다. 하나라도 실천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쓰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 가계 재무상태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면서 느끼는 게 많다. 책에 나오는 네 부부의 모습도 가장 자주 만나는 유형을 추린 것이기 때문에 아마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요즘 시민들에게는 돈에 대한 건강한 의식이 가장 필요하다.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 투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국내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있을까?

열심히 벌고 모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불리는 것만 생각한다. 아무리 중요해도 벌고 모으는 것만큼은 아닌데 말이다. 인생은 길다. 짧은 순간 뜻하지 않게 큰 돈을 벌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제대로 된 부자겠는가. 나는 그들이 그 부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으리라고 본다. 대박은 없다.

‘진짜’ 부자 아빠가 되어주세요. 가족과 함께 가계부를 쓰세요.

제목이 ‘아버지의 가계부’다. 의미하는 바가 있다면?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관리를 하는 게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성 역할이다. 요즘은 조금 바뀌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런 성 역할을 바꿔보고 싶었다. 돈을 양지로 끌어내서 온 가족이 함께 돈에 대한 이야기를 건강하게 나눠야 한다. 돈을 쓴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한 위치에 있다. 돈 씀씀이가 우리의 생활 습관을 말해 준다.

가계부 쓰는 것에 대해 강조했는데, 어떻게 쓰면 좋을까?

그냥 숫자를 적어 넣는 것을 사실 아무런 효과가 없다. 지루해지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포기하게 된다. 목표를 정하고 예산을 세워야 한다. 우리의 긴 인생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을 따져보면 얼마 되지 않는다. 돈을 벌 수 있는 지금 저축을 해 둬야 노후에 ‘나’를 위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약간 무리다 싶은 액수의 저축액을 제외하고 그 안에서 예산을 책정해 사용하라.

경제서적임에도 돈을 많이 버는 법이 아닌, 절제하고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 강조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돈에 대한 마인드가 삶에 대한 마인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 돈을 쓰는 재미보다 아끼는 재미가 더 있다. 단지 모으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그 과정을 가족과 함께 하면서 즐겨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돈에 대한 태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부자 되기 열풍은 아마 앞으로도 식기 힘들어 보인다. 제윤경 씨는 말한다. “부자가 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수많은 재테크 서적 중에서 이 책이 눈에 띄는 까닭은 ‘부자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곰곰이 되짚어보게 하는데 있다. 자, 오늘부터 다시 가계부를 쓰라. 거기에 숫자만이 아닌 당신의 미래와 가족의 소중함과 배려를 적어 넣어라.

글, 사진 | 홍유진

by 트래블러 2009. 8. 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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