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화려한 패션 피플의 전형, 1년에 몇 번씩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4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코스모폴리탄, 대한민국의 최고 자랑거리는 ‘여자들’이라고 주장하는 극렬 페미니스트…. 심우찬 씨를 수식하는 말들은 이처럼 죄다 범상치가 않다. 그런 그가 최근 에세이집 <프랑스 여자처럼>을 출간하며 여자 시리즈 3부작을 마무리 지었다. <파리 여자, 서울 여자>, <청담동 여자들>, 그리고 이번 신간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년간 끊임없이 자신의 책은 물론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자’ 이야기만을 해왔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의아한 듯 물었다. “당신은 남잔데, 왜 여자 이야기를 하느냐”고. 패션 칼럼니스트로 많은 글을 써왔고, 또 그만한 인지도를 자랑했던 그이기에 패션 관련 에세이가 아닌 여자 이야기만을 책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의 예상을 벗어난 행보였다. 물론 패션이 여자와 많은 관련이 있는 분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여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성토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프랑스 여자들이야말로 가부장 사회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우리나라 여자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여자를 테마로 벌써 세 번째 책이다. 여자에 대해 할 말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내 직업이 패션 칼럼니스트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많은 여성과 일을 해봤고, 지켜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내가 <파리 여자, 서울 여자>를 썼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여성들이 여전히 마이너리티로 대접받고 있기 때문이다. 난 개인적으로 남성 위주인 한국 사회가 너무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한국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똑똑하고 잘난 것은 사실 아닌가. 의사나 판검사 쪽에도 여성 비율이 높아지면서 남자들 사이에서 역차별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니 말이다.

하긴, 각종 고시에서 여풍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는 뉴스가 매년 들린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여성이 어느 순간 한계에 직면하게 되니까. 그래서 똑똑한 여성들은 싸우기보다는 국가 같은 더 큰 권력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소위 ‘증’을 받는 거다. 사법고시를 봐서 변호사가 된다든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된다든지, 외교관이 된다든지…. 그런데 이제는 여성 비율이 너무 높아지니까 ‘쿼터제를 실시해야 한다’, ‘군 가산점을 줘야 한다’며 억울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남자들도 있더라. 나도 이해는 된다. 머리 나쁜 남자들로서는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오케이. 남자들한테 가산점을 준다고 치자. 그렇다면 여성들한테는 출산 장려금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인구 하나를 늘리는 일이니 한 명당 1천만원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 여자들이 유독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대한민국 여성들은 똑똑하고 다 좋은데, 연대를 하지 않는다. 개인만 똑똑한 거다. 같은 여성끼리 뭉쳐서 싸워보려는 생각은커녕 그저 ‘나만 차별받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문제 제기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 계속 이렇게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지. 국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 여성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단적으로 LPGA에 나가 활약하는 여성 프로 골퍼들도 그렇고 김연아도 그렇고, 우리나라 같은 기반에서 그만큼 성장한다는 건 정말 뛰어난 거다. 뭔가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 아테네 올림픽 때 영화 <우리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의 소재가 됐던 핸드볼 게임을 프랑스에서 지켜보았다. 무릎을 치면서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 어머니도, 여동생도, 누나도 똑같다. 그들처럼 어떤 순간이든 정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그 끈기와 집념은 세계 어떤 여성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한국 여성들만의 매력이다.
문제는 이렇게 놀라운 자질을 지닌 한국 여성들이 편협한 남자들의 시각과 사회적인 잣대에 마구 휘둘린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가족을 위해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 여자는 얼굴만 예쁘면 그만이다. ’ 문제는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남자는 물론 여성들조차도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직접 문제를 제기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가끔 한국에 들어와서 TV를 보게 되는데, 머리 나쁜 연예인이란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들이 다 똑같더라. 여자는 예뻐야 되고, 쭉쭉 빵빵해야 하고. 사실 그건 그 사람들만 하는 소리일 뿐 모든 남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미모나 외향적인 것이 아닌 여성의 성정이나 더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을 뿐이다. 항상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머리 나쁘고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언젠가부터 ‘여자의 미모’는 진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예쁘고 어린 여자에게 광적으로 열광하는 분위기가 보편화되었다고 할까.
한번은 ‘지구상에 어쩜 이런 나라가 있을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다 벗고 떼로 나오는데, 그걸 30, 40대 아저씨들이 침 흘리고 본다는 자체가 충격이었다. 스무 살이 안 됐으니까 아동에 속하는데, 성인이 아동을 그토록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으로 본다는 건 세계 어디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문화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더라. 옛날에 일본에서 ‘모닝구 무스메’라는 걸 그룹이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일본은 참 몹쓸 나라’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가 따라하고 있는 거고.
그때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유교가 있어서 최소한의 도덕적인 선은 지키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나라 유교는 남자들의 기득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도덕적인 가치가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요즘의 이런 비정상적인 문화에 비판을 해야 마땅한데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한국 여자들조차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 여성들은 정말 자괴감을 가져야 한다. 얼굴만 반반하고 표준어만 대충 쓸 줄 알면 간판 TV 프로그램의 간판 아나운서가 되는 게 현실이다. 그게 바로 한국 남자들이 바라는 여성상이다. 바라는 게 앵무새 수준의 지성과 미모밖에 없는 것이다. 더 웃긴 건 옆에 앉은 남자 아나운서는 경력 20년 이상 부장급이다. 삼촌이나 아빠뻘 되는 앵커와 짝이 되어 앉아 있는 모습이 사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광경인가.
결정타는 신사임당이 5만원권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한국 역사를 살펴보면 얼마나 훌륭한 여성이 많은가. 유관순 누나도 있고…. 하지만 결국 남자들이 원하는 여성상으로 모두 재단되고 만 것 같다.

만약 외국에서 20년 넘게 살지 않고 한국에서만 살았어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나도 한국 사회에 완전히 적응해서 똑같이 생각하고, 부조리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원래 그렇게 마이너들에게 관심이 많았나?
아니, 전혀 아니었다. 이기적인 청춘이었다. 이 한 몸의 입신양명을 챙기기도 바빴다. 그런데 계기가 생겼다. 프랑스 유학이 끝나자마자 일본의 한 회사에 취직했는데, 4년 정도 머무는 동안 정말 쇼크를 받았다. 그렇게 차별받고 마이너로 취급당한 게 처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는 한국 사람이 드물었다. 차별이 너무 심해서 재일교포들조차 자신이 교포란 것을 숨기고 다녔을 정도다. 그때 마이너로 사는 삶과 메이저로 사는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한때 그토록 열광했던 패션에 흥미를 잃은 이유도 그거다. 사회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돌아가고 있는 마당에 원단 소재가 달라졌다느니, 구두 굽이 2센티미터 높아졌다느니 등의 이야기를 쓰는 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여성 시리즈는 3부작으로 완성인가 아니면 계속 써나갈 생각인가?
여기저기서 자꾸 콜이 들어온다. 그만큼 이런 목소리가 세상에 필요하다는 뜻 아닐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여자들’이란 책을 불어로 프랑스에서 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지만 우리 사회에도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여성이 나와 여성들의 삶을 바꿔줬으면 좋겠다. 자신의 삶을 통해 위대한 여성의 모습을 강력하게 보여줄 사람 말이다. 그런데 아직 그만한 여성이 등장하지 않아 안타깝다.
심우찬 사전에서 참고한 한국 여성의 수식어들
<끈기 있고 열정적인 patient&passionate>
시크함과 자유분방함이 프랑스 여자들의 매력이라면 한국 여자들은 어떤 이미지로 대표될까?
“많은 미덕이 있지만 열정적이고 에너제틱하다는 점은 정말 최고예요. 뭘 하든 똑 부러지게 잘하고 열심히 하죠.”
외국 남자들에게도 한국 여자들은 대개 그런 이미지로 비친단다.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끈기와 꿈을 향한 정열이 한국 여자의 가장 큰 장점인 셈이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준우승한 핸드볼 여자 선수들도 그렇고, 불패의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여자 양궁 선수들, 여자 프로 골퍼들, 김연아 선수까지….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세계 20위권이라고 봤을 때 세계 최고를 차지한 한국 여성이 이렇게 많다는 건 분명 뭔가가 있다는 거죠.”
스포츠뿐만 아니라 실력만으로 평가되는 객관적인 경쟁에서 늘 우수성을 인정받는 한국 여자들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까. 그의 지적대로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뿌리 깊은 성 역할 고정관념이 크나큰 벽으로 우수한 여자들의 길을 막고 있다는 게 가장 맞는 설명일 터이다.
객관적 경쟁에서 우수성을 인정받는 한국 여자들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특히 결혼한 여자들은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게 되면서 더더욱 사회적인 성공과는 멀어진다.
“한국 여성의 열정적인 면이 부정적으로 발현되면 대치동 엄마들처럼 치맛바람의 형태가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또한 주부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지 못한 우리 사회의 탓 아닐까요? 에너지를 풀 곳이 없으니까 애들 교육에 집착하기도 하고, 복부인처럼 돈에 집착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여자들이 역량을 풀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훨씬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게 심우찬 씨의 견해다.

<똑똑하고 현명한 smart and wise>
최근 뉴스에서도 나왔듯이 남학생과 여학생의 학력차가 상당하다고 한다. 혹시라도 내신이 깎일까 봐 아들을 남녀공학이 아닌 남고에 넣으려고 애쓰는 부모도 있을 정도다. 여자가 성장이 더 빠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여학생의 우수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입증된 바다. 사실 한국 여자의 우수성은 국제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아시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고위직 상당수는 한국 여자가 차지하고 있고, 국내 대기업에서도 여자 임원을 보는 것이 더 이상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유독 정치권에서만은 여자의 진입 장벽이 유독 높은 것이 사실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이 훨씬 정치를 잘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만한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는데 장벽이 너무 높은 거죠. 우리나라에는 여성 지도자가 거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몇 년 전 발표된 세계 성(性)격차지수 중 여자의 정치 역량 강화 분야에서 한국은 1백30개국 중 102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었다. 여자 국회의원 숫자는 국제의원연맹 집계로 84위에 불과하다. 여풍(女風)은 전 세계적인 추세로,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상징되는 모성 정치 쪽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시몬 드 보부아르나 아웅산 수지와 같은 존경받는 여자 지도자가 곧 나올지 모를 일이다.

<아름답고 센스 있는 beautiful and fashionable>
얼마 전 방한한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 여성이 프랑스 여성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상냥하다”고 격찬한 바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 웨슬리 스나입스 등 한국 여자와 결혼한 할리우드 스타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외모도 외모지만 한국 여자들의 패션 감각은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월등하다는 평가다.
“90년대 초만 해도 한국에는 라이선스 패션 잡지가 하나도 없었어요. 1993년 창간한 <엘르>가 처음이었는데 우리나라 여성들, 얼마나 학습력이 빠른지 불과 10년 만에 아시아 시장을 리드하는 패션 대국이 됐잖아요. 또 한국 여성들이 패션에 대해 관심도 많고 유행에 민감하기도 하고요.”
다만 일부 외국에서는 ‘한국 여자들은 성형 미인’이라는 속설이 떠다닌다고 했다. 최근 들어 외모 열풍이 불면서 성형수술이 유행처럼 번진 것은 사실이다. 심우찬 씨는 성형수술 자체보다 그렇게 이끌어가는 사회가 문제라고 말했다.
“얼굴만 반반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인식은 제발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 뭐 이런 구태의연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고요. 그것은 미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 불과하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nonetheless>
이처럼 다각도로 우수성을 뽐내고 있는 한국 여자들이지만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작 자기 인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우찬 씨는 반드시 삶의 주체가 자기 자신일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삶의 주체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결혼했으니까, 엄마니까 다 포기해야 한다? 그건 아니라고 봐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어요. 다들 모성이 본능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조차도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허울일 뿐이에요.”
우리나라의 많은 여자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자기 인생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자신의 곁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허탈감마저 느낀다. 하소연할 데도 마땅치 않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주부와 엄마가 남편과 아이에게도 사랑받아요. 저는 한국 여성들이 좀 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당당한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셨으면 좋겠어요. 이건 절대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사회적인 문제에 눈뜰 수 있는 여유와 자아실현을 최고 덕목으로 생각하는 아량을 지닌 멋진 여성이면 더욱 좋겠죠?”
지금보다 더 여성들이 대접받고 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 때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까?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심우찬 씨의 열렬한 ‘여성 예찬론’이 그의 노력만큼 세상에 더욱 퍼져나갔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생겼다.

by 트래블러 2010. 7. 2. 00:35
인터뷰를 약속하고 방문한 유니버설 발레단의 연습실은 그 역사를 말해주듯 고풍스러웠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장난기 어린 모습은 어디 갔는지, 한 마리 백조처럼 우아하고 도도해 보였다. 곧 있을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처음으로 주역을 맡은 한서혜 씨와 이승현 씨는 불과 지난해에 입단한 새내기. 그러나 입단 1년 만에 발레단 내 세 번째 서열인 ‘드미 솔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문훈숙 단장의 지도 아래 손끝부터 발끝까지 한 마리 백조가 된 한서혜 씨의 등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날 만나기로 한 또 다른 커플인 엄재용 씨와 황혜민 씨는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최고의 발레 스타다. 둘은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2003년 이래 늘 함께하며 찰떡궁합을 자랑해왔다.
이렇게 최고의 발레 커플과 촉망받는 젊은 커플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발레를 하면서 지옥만큼 고통스럽다가도 어느새 천국처럼 행복해진다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멋진 발레리나, 발레리노들.
시청자로서의 순수함과 발레리노로서의 자부심 사이

엄재용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1박2일> 팬이다. ‘발레리노는 예능 같은 거 안 볼 거 같다’고 하자, 그게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쨌든 <1박2일> 시청자 투어 2탄의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뜨자마자 엄재용 씨는 준비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이유와 멀게는 발레의 대중화에 기여(?)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말이다. 발레단 측에서도 수석 발레리노의 이러한 취지를 기특하게 받아들여 흔쾌히 허락해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발레리노들로만 구성해서 신청했어요. 사람들이 ‘발레’ 하면 모두 발레리나만 떠올리잖아요. 이참에 발레리노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은지원 씨가 ‘파드되(pas de deux, 남성과 여성이 함께 추는 2인무)’ 같은 거 추려면 발레리나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은근히 유도하더군요. (웃음)”

팀장인 은지원의 전화를 받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결국 참여를 원하는 발레리나 5명을 포함, 총 15명이 2박 3일의 시청자 투어에 함께하게 됐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참 재미있었어요. 설마 했는데 정말 ‘리얼’이더라고요. 조금이라도 짜고 하는 게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모두 가식이 없고, TV에서 보는 것과 똑같았어요. 2박 3일이었지만 정말 가족같이 지냈어요.”

가까이서 보니 더 대단했던 MC 강호동을 비롯해 천재인 듯 바보인 듯 묘한 매력을 지닌 은지원,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웃길 줄 아는 천생 개그맨 이수근 등등 TV로만 보던 <1박2일> 멤버들은 친근함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다.

“처음 짐 싸서 내려갈 때는 마치 지방 공연이 있어 일하러 가는 기분이었어요. 단원들과 2박 3일 정도 출장 가는 일이 꽤 있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니까, 정말 놀러온 느낌이 들어서 즐겁더라고요.”(이승현)

“정말 재미있게 놀았는데 프로그램 분량 때문에 잘린 부분이 많아 너무 아쉬웠어요. 저녁 게임에서 지는 바람에 고작 라면 5개가 할당됐어요. 우리 인원이 15명인데, 말이 안 되잖아요. 결국 이명한 PD님과 한 인간 제로게임에서 이겨 10개를 더 획득했죠.”(엄재용)

“발레리나는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아는 분이 많으시더라고요. 저희가 라면도 열심히 먹고, 먹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셨다는 반응이었어요. 어떤 분은 유니버설 발레단이 아니고 ‘유니버설 씨름부’ 아니냐며 놀리기도 하셨고요.”(황혜민)

이들이 대중 앞에 차려놓은 예술의 만찬
발레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과 달리 유니버설 발레단은 시종일관 친근하고 끼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메라를 보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먹을 게 걸린 게임에서도 의외의 실력을 보여줬다. 야외 취침 복불복에서도 멋지게 승리했지만 어르신이 많은 11남매 팀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기도 했다. 어느 때보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빛났던 순간은 둘째 날의 장기자랑 시간이었다. 그동안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발레단원들이 토슈즈를 신고 <백조의 호수>를 연기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솔직히 그런 무대에서 춤을 춰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과연 공연이 가능할까 조심스러웠는데, 다리만 들어도 환호를 해주시니까 기분이 참 새로웠어요. 제가 발레 공연을 하면서 그런 함성을 들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특히 흑조로 분해 32바퀴 회전 동작인 푸에테(Fouette)를 멋지게 선보인 한서혜 씨는 특유의 미모가 화제되어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열렬한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개인적인 사진 등이 인터넷에 노출되고 뉴스로 나오면서 의도치 않은 유명세를 탄 것.

“예쁘다고 해주시니 기분은 좋죠. 그런데 거기에도 악플은 달리더라고요. 악플의 단골 메뉴인 성형 의혹까지…. 저 정말 자연산이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좀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길거리에서 ‘한서혜다!’ 하면서 알아봐주시는 경험을 처음 했는데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한서혜)

발레 공연이 끝난 후 은지원의 노래인 ‘사이렌’에 맞춰 발레 동작을 접목시킨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현장의 열광적인 반응은 물론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도 ‘발레는 우아하지만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몰입할 수 있었다.

“방송이 나간 뒤 미니홈피 방문자 수가 확 늘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이런 글을 남기셨더라고요. ‘<1박2일>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이번에 처음으로 발레 공연을 예매했어요.’ 그걸 보고 우리가 방송에 출연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구나 생각했어요.”(엄재용)

사실 발레라는 예술 장르의 이미지는 견고하게 둘러싸인 성벽처럼 단단해서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다. 고상하고 우아한 음악, 가녀리고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애절한 표정, 희디흰 스타킹에 클래식 튀튀, 1백 마디 말이 필요 없게 만드는 다채로운 춤사위…. 그 자체로 예술의 최고점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반대로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동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발레도 뮤지컬만큼 재미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발레에도 언어가 있어요. 말이 아니라 몸짓 언어지만 ‘나’, ‘너’, ‘사랑해’, ‘함께 가요’ 등등 몇 가지만 알아두면 저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이해가 되거든요. 이번 방송 출연을 통해 발레가 어렵다는 편견을 조금이라도 깬 것 같아 뿌듯해요. 하지만 저희가 일부러 망가진 건 아니에요. <1박2일>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저희도 ‘리얼’이었어요.”(엄재용)

세기의 ‘지젤’로 손꼽혔던 문훈숙 씨가 단장으로 있는 유니버설 발레단은 세계에서 더 유명한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발레단이다. 그러나 고급 예술 영역에서 벗어나 좀 더 대중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공연을 할 때마다 단장이 직접 나와 공연에 얽힌 이야기와 발레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다거나, 꼭 큰 무대가 아니더라도 백화점 문화센터 등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이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몸의 예술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비록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볼거리 위주로 그려지긴 했지만, <1박2일>은 적지 않은 사람에게 발레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들은 예술이라는 견고한 성에 갇히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비상하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때문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발레, 그 매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오늘도 이들은 연습실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아직 끝내지 못한 네 사람의 이야기
유니버설 발레단은 1984년에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발레단이다. 그 이름 때문에 외국 발레단 아니냐는 오해를 종종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총 70여 명의 무용수가 소속되어 있고 지금까지 약 4백10회의 해외 공연과 약 1천2백 회의 국내 공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 발레를 세계의 중심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만난 황혜민 씨와 엄재용 씨는 유니버설 발레단이 자랑하는 최고의 무용수로 8년 동안이나 유수의 공연을 통해 서로 짝을 맞춰왔다. 반면 이승현 씨와 한서혜 씨는 이제 막 떠오르고 있는 신예 무용수로, 어린 나이에도 우아하고 성숙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으며 차기 유니버설 발레단의 스타로 각광받고 있다.
발레의 운명을 타고난 남자_ 엄재용
엄재용 씨에게 발레는 운명과도 같다. 거창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를 찬찬히 살펴보면, 발레리노가 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발레리나 출신인 어머니와 살면서(그의 어머니는 김명회 서원대 무용과 교수다) 무의식적으로 발레를 보며 익히고, 긴 팔다리와 작은 얼굴의 서구형 체형을 갖춘 우월한 유전인자에, 왜 너는 발레를 안 하냐며 부추기는 주위에 사람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는 스스로 꽂히기 전까지는 발레에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에게 발레는 운명이었다.

“정말 신기한 것이요, 갑자기 발레가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중 2 때까지는 아이스하키 같은 남성적인 스포츠에만 끌렸거든요. 물론 지금도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를 좋아하긴 하지만 발레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보다 저를 사로잡은 것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집에서 우연히 <지젤> 공연 동영상을 본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우아하고 고혹적인 매력에 그는 완전히 사로잡혔고, 이윽고 발레를 배울 결심을 하게 된다. 동작 하나하나를 익히고, 최고의 연기를 위해 몸을 만들고, 그렇게 점점 빠져들었는데 우연처럼 그의 첫 무대도 <지젤>이었다.

“늘 이야기하지만 저의 개인적인 바람은 은퇴 공연을 <지젤>로 하는 거예요. 저를 발레의 길로 이끌어준 작품이니만큼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유니버설 발레단을 대표하는 수석무용수, 무용협회 연기상, 발레협회 당쉐르 노브르상 수상자. 엄재용 씨는 이미 정상의 자리에 선 발레리노지만 처음 발레를 시작할 때처럼 늘 한 동작 한 동작을 더 잘하기 위해 끝없이 애쓰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예술에는 끝이 없으므로 그의 발레에 대한 열정도 좀처럼 식지 않을 듯하다.
청초하고 아름다운 백조의 화신_ 황혜민
처음 발레를 시작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공주 옷 같은 예쁜 의상은 소녀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발레를 할 때만큼은 이 작은 어린 소녀도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될 수 있었고,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 공주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고 입시가 시작되면서 크고 작은 슬럼프가 오갔고, 순수했던 열정은 사그라지다 불타오르기를 반복했다.

“20년 넘게 발레를 했으니 그동안 찾아온 슬럼프야 수도 없죠.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 때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해내고, 정신적으로 우울해질 때는 열심히 몸을 움직여 털어내곤 해요. 가장 난감할 때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이 동시에 찾아올 때인데, 가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하죠. 이럴 땐 별수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수밖에.”

선화예중 재학 중 유학길에 올라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와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2002년 유니버설 발레단에 입단하기까지….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밟았던 그 지난한 과정을 어떻게 글 몇 줄로 설명할 수 있으랴.

“매일 몸이 아파요. 그렇게 오랫동안 연습하고 훈련했는데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전신에서 통증을 느낀다니까요. 비 오는 날은 무릎이 아프고, 다음 날은 허리나 어깨가 아프고…. 무슨 애늙은이 같죠?(웃음)”

톡 치면 부러질 것 같은 가녀린 몸, 금세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청초한 눈매, 그녀는 순수하고 우아한 백조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올해 나이 서른셋, 발레리나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다. 열한 살 때부터 최고의 발레를 위해 길들여진 몸이니 이곳저곳 고장이 안 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의 세례를 받은 그녀의 몸이 그려내는 아라베스크나 에튀티드는 발레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현현하고 있다. 최고의 무용수로 인정받기까지 가녀린 몸이 감당해야 했던 혹독한 훈련의 흔적을 굳이 감추지 않아도, 그녀는 우아한 백조, 그 자체다.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차세대 발레 스타_ 한서혜
연습실 문을 열자마자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얼마 남지 않은 <백조의 호수> 공연 준비를 위해 문훈숙 단장으로부터 특훈을 받고 있는 한서혜 씨의 얼룩진(?) 등이었다. 마치 허리 부상으로 붕대 투혼을 보여줬던 김연아 선수의 그것처럼, 그 가녀린 등에 빽빽이 붙어 있는 파스를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대단하다 싶기도 했다.

“차이코프스키의 3대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죠. 주연을 해본 적이 몇 번 있지만 <백조의 호수>만큼 큰 공연은 처음이어서 긴장이 많이 돼요. 나이도 어린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그런데 몸이 정말 천근만근이네요.”

한서혜 씨는 아주 자연스럽게 발레의 길로 들어선 경우다. 어머니가 발레리나 출신인 데다 고모는 성악가고, 오빠와 언니는 클래식 악기를 연주한단다. 그녀도 주위의 권유에 따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발레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한 길만 걸어왔다. 스스로의 적성과 주위 환경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경우라 하겠다. 덕분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조기 졸업해 남들보다 2년 빨리 프로 발레리나로 입성할 수 있었다.

“다른 발레단에 비해 유니버설 발레단은 세대교체가 빨리 되는 편이에요. 나이 차도 크게 나지 않아서 위압적이기는커녕 친구처럼 선후배 사이가 좋아요. <1박2일>에 나온 것처럼 서로 장난도 많이 치고 재미있게 지내죠.”

짝꿍인 이승현 씨와 함께 올해 드미 솔리스트가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프리마돈나를 향한 행보를 시작할 전망이다. 한 번의 방송 출연으로도 폭발적이었던 대중적인 인기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발레리나 한서혜 씨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무대 위에서 더욱 아름답게 피어날 때를 기대하며 연습을 멈추지 않는 그녀. 이마에 맺힌 땀마저도 곧 피어날 꽃봉오리 같았다.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가 떴다!_ 이승현
이제 갓 소년 티를 벗은 듯한 앳된 얼굴, 반항기와 장난기를 동시에 머금은 인형 같은 눈매. 아직은 미완성인, 그러나 머지않아 무지막지한 폭발력을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하는 발레리노 이승현.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빌리 엘리어트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물론 그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지만.

“사실 저는 키가 크고 싶어 발레를 시작했어요. 중학교 때 키가 150㎝밖에 안 되었거든요. 무용을 하면 키가 클 수도 있다는 말에 처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게 고 1 때였는데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1년에 10㎝씩 커서 지금은 180㎝가 됐어요. (웃음)”

주위에 발레에 대해 아는 사람도, 조언을 해줄 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그에게 발레는 낯설고 이질적인 저 너머의 예술이었다. 처음에는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쫄쫄이 타이츠를 입는 것도 민망해서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부쳤다. 그러나 다른 발레리노들이 그랬듯이 그도 곧 발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발레를 한다는 그의 고백을 들은 친구들은 “너, 게이가 된 거냐?”며 비웃음 섞인 반응을 보였지만, 막상 그의 발레를 보고 나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키로프 발레아카데미, 세종대학교를 졸업하고 지난해 유니버설 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올해 드미 솔리스트로 승급됐는가 하면 생애 처음으로 <백조의 호수> 주연까지 꿰찼다. 이제는 쫄쫄이 바지가 오히려 편하고 자랑스럽다는(?) 발레리노 이승현 씨의 두 어깨에는 자부심이 흘러넘쳤다.
by 트래블러 2010. 4. 25. 00:41
나누는 삶이 아름답다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스티브 김
‘아시아의 빌 게이츠’, ‘코리안 드림의 대표주자’. 스티브 김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미국엘 건너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3년에 ‘자일랜’이라는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 회사를 창업했다. 자일랜은 창업 3년 만에 나스닥에 상장되는 기염을 토했고, 창업 5년 만에 연매출 3억5천만 달러를 달성함으로써 IT업계의 신화를 창조했다. 큰 성공을 거둔 후 회사를 20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그야말로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그는 지난 2007년 30여 년간의 미국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영구 귀국했다. 꿈·희망·미래재단은 그가 한국에서 본격적인 사회복지 사업을 펼치기 위해 2001년에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젊어서는 버는 돈이 내 돈이지만, 나이 들어서는 쓰는 돈이 내 돈’이라는 그의 인생철학은 많은 이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소통
요즘 강연도 많이 하러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있다. 아이들부터 청년들, 직장인들까지 접할 기회가 참 많은데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 ‘삶이 참 각박하다’는 것이다. 아이들 교육부터 시작해 사람들이 참 힘들게 산다. 그래서는 행복할 수가 없다. 결국 모두가 지치고 만다. 게다가 점점 소통이 안 되면서 경쟁 양상이 심해졌다. 많은 사람이 학연, 지연 등 쓸데없는 네트워킹에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양적인 관계가 아니라 질적인 관계가 더 중요하다.
질적인 관계란 바로 ‘가족’이다. 나 또한 한 번의 실패를 겪었다. 가정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면서 나는 일과 성공을 도피처로 삼았다. 내가 행복한 가정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두 번째 결혼을 통해서였다. 일에만 매달리면서 개인적인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인생의 깊이를 모르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저녁은 항상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 아내, 아이들과 대화가 이어진다.
도전
자기가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젊은이가 대기업만을 목표로 삼는데, 내가 보기엔 차라리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게 낫다. 나도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해 대기업의 엔지니어가 되었는데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 내가 거대한 톱니바퀴의 작은 부속품일 뿐이라는 생각에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을 위한 돌파구를 위해 중소기업에 들어갔고, 또 ‘창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물론 엄청난 고생과 노력이 뒤따라야 했지만 행복을 위해 한 발 한 발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기쁨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좋은 학교 나와서 취직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운이 좋아 취직했다 해도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재미도 없고 능력 발휘도 못해 결국 실패하게 된다.
행복
막상 성공하고 보니 그때부터 과연 무엇을 위한 성공이었나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성공’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무조건 앞만 보며 달린다. 보통 그 성공은 ‘돈’이나 ‘권력’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나 또한 골프도 치고, 여행도 다니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려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행복이 아니었다. 내가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를 생각해보면 큰돈을 벌었을 때보다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을 즐기고, 주변에서 인정해줬을 때였다. 성공은 행복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목표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돈, 명예, 권력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은퇴
한국의 직장인들을 보면 무쇠 체력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렇게 일하고서도 회식을 3차까지 한다. 그 몸으로 다음 날 출근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일하다 은퇴하면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어찌할 줄 모른다. 일하면서 번 돈은 모두 자식 교육에 들어가고 남은 돈이 없으니 무력감에 시달린다. 은퇴 후 삶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돈이 많다고 은퇴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꾸준한 운동과 수면, 절제하는 생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외롭고, 삶이 각박해지는데 이럴 때 진심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한 명은 천군만마보다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고향
젊어서는 세계를 누비는 꿈을 꾸더라도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 1976년에 한국을 떠나 30년을 미국에서 살아온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미국에서 이룰 것은 다 이룬 상태였다. 그러나 새로 시작하는 사회복지 사업만큼은 한국에서 펼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결국 아내와 깊이 의논한 끝에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많은 사람이 만류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2007년, 그러니까 3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하던 아이들도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한국이 이제는 좋다고 한다. 나도 한국에서 펼쳐가는 새로운 사업에 열정을 쏟으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게 ‘미국에서 돈 벌어 한국에서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부
나는 자일랜에 있을 때도, 그전에도 기부 활동을 곧잘 하는 편이었다. UCLA에 1백만 달러를 기증하기도 했고 한미장학재단을 통해 공부 잘하는 한국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자일랜을 매각한 후 시간 여유가 생겨 기부나 사회 공헌 활동에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이왕이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전국을 돌며 아동복지시설과 노인복지시설 여러 곳을 들렀다. 그러나 20년 전과 달리 매우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는 모습에 내가 할 일이 없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나는 ‘먹이는 사업’이 아니라 ‘살리는 사업’ 쪽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하기로 했다. 사람이 꿈을 접을 때 입은 상처는 평생 간다.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꿈·희망·미래재단이다.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약 2백여 명의 학생을 지원해왔다. 나는 돈 쓰는 일 역시 돈 버는 일과 마찬가지로 계획성 있고 치밀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돈 버는 부자가 아니라 돈 쓰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나이 듦의 기술
나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오히려 나의 천직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르치는 일’이다. 학생들이 눈을 빛내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면 삶의 열정이 새롭게 솟아나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축적한 부가 어느 정도 되는지, 그것을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물려줄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나는 내 자녀들에게 물질적인 재산이 아닌 바른 정신과 바른 자세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물려주고 싶다. 사실 많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재능과 에너지를 죽이는 일이다.
한국에서도 점점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행복하고 자식들도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싶다면, 사회적인 위치가 높아지고 경제적인 부가 쌓이기 시작하는 중년부터 나눔을 실천하고 은퇴 후 삶을 설계해야 한다. 무조건 모든 것을 주기보다는 나눔으로써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리빙센스 4월호

by 트래블러 2010. 4. 25. 00:37
아이들보다 배워야 할 게 더 많은 부모 노릇, 이제 교육이 필요합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주말에 지방 강의가 있어 내려갔다 오는데, 깜짝 놀랐어요. 전에는 주말만 되면 놀러가는 사람들로 꽉꽉 막히던 길이 뻥 뚫린 거예요. 생각해보니, 지금이 학기 초잖아요. 아이들은 새로운 생활, 새로운 교과 과목에 적응하느라 긴장 상태고, 엄마들은 또 엄마들대로 ‘우리 아이가 잘하고 있을까’ 걱정하느라 마음이 불안한 거죠. 그래서 3월이나 4월에 아픈 애들이 많다고 해요. 환절기인 탓도 있지만 심리적인 긴장이나 두려움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런 시기에 아이에게 부담을 주면 더 역효과가 날 뿐이에요. ‘잘해라’라는 식의 격려성 멘트도 자제하는 게 좋아요. 그저 지켜보는 게 최고죠.

자녀 교육이 아니라 부모 교육이 먼저라니,
부모를 교육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좀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맞아요. 아동교육학, 노인복지학 등등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은 많지만 성인 심리를 다루는 분야는 극히 적어요. 사실은 누구보다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인데 말이죠. 그래서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고, 고민이 많지만 조언을 구할 곳이 마땅히 없는 거예요. 제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 중에도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자녀 교육’에 대한 내용일 줄 알고 찾아왔다는 거죠. 부모 교육은 자녀를 잘 키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부모의 행복을 위한 교육이죠. 즉,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잘 키우고 나면 내가 즐겁고 행복해지는 거예요. 좋은 부모가 되기에 앞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런데 이런 중요한 점을 간과하는 젊은 부모가 많아요.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부모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뭔가요?
옛날에는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많았어요. 이웃과의 교류도 활발하고 가족 수도 많았기 때문에 부모가 역할을 좀 못해도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들이 나눠서 해줄 수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주로 아파트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생활해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면 집 안에 엄마밖에 없잖아요. 아이에게 제공되는 정서적인 환경이 엄마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마저도 아이와 잘 통하지 못하고 상호작용이 안 된다면 아이에게는 최악의 상황인 거죠. 그러면 아이는 자연히 사회성을 가질 수가 없게 돼요.
예를 들어 애가 물을 좀 엎질렀다고 엄마가 “왜 그랬어!”라는 식으로 화를 냈다고 쳐요. 이 아이는 자기가 남에게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엄마에게서 보고 배운 방식 대로 남에게 행동을 해요. 친구가 살짝 쳤어도 정도 이상으로 화를 낸다거나 하는 식이죠. 초등학교에 강의를 가면 선생님들이 백이면 백, 이런 얘기를 해요. “요즘 애들이 친구들을 받아들이는 힘이 너무 약해요. 싫은 일하는 것을 못 참아요. 엄마에게 교육을 좀 시켜주세요.” 어떻게 보면 예전보다 훨씬 더 엄마 역할이 커져버린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부모 교육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정서적 위험에 처한 아이들, 부모병에 걸려 신음하는 부모들, 처방전을 받아가세요
그렇다면 교육을 받은 부모가 얻어가는 게 뭐가 있을까요?
자녀와 부모가 함께 행복해진다는 점이죠. 제가 걱정하는 건요, 한 5년 전부터 아이들 사이에 반항 장애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어린이들의 약 30%가 교류 장애, 정서 장애, 학습 장애 등을 보이고 있어요. 사춘기 아이들이 반항하고 자기 생각을 갖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지만, 만약 초등학교도 못 들어간 유아가 부모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반항한다는 건 분명 비정상적인 현상이죠. 제대로 된 자녀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옛날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이 자녀 교육에 투자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부모들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고 노력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올바른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부모 교육이 필요합니다. 엄마들이 이런 교육 기회를 찾아야만 바른 양육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위험하지 않게 된다고 봐요.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부모님들은 주로 어떤 고민을 안고 계시던가요?
대부분 공부에 대한 걱정이에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말이죠, 화두는 공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바람이 따로 있어요. 궁극적인 바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런 내용인데 정작 표현은 “공부 안 하니?”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갖고 온 고민은 공부로 해결될 문제도, 영어 유치원이 해결해줄 문제도 아닌 거죠. 그렇게 자신의 맘속에 숨어 있는 진짜 바람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해요.
부모 질환이란 게 있어요. 예를 들면 귀가 얇아서 남의 집 아들이 어떻다더라 하는 이야기에 금세 혹하는 ‘팔랑귀 증후군’이라든가, 육아는 아내에게 맡겨버리고 가정일은 외면하는 ‘현실도피성 증후군’요. 부모들이 흔히 겪는 심리적 증상에 나름 이름을 붙인 것이죠.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약을 먹듯이 이런 부모 질환도 처방을 받아 치료해야 하지 않을까요?

강사이기 전에 한 아이의 엄마로서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엄마가 돼요. 하지만 좋은 엄마는 못 돼요. 아이를 키우면서 그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나름 잘나가는 방송작가로 열심히 일했지만 너무 바쁜 엄마였죠.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다 보니 애가 비뚤어지더라고요. 너무 자주 못 보니까 아이가 엄마를 낯설어하는, 이른바 분리 장애가 나타난 거죠. 이러다 애가 잘못될 수도 있겠다 싶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어요. 엄마가 될 것이냐, 커리어를 지킬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놓였죠. 그리고 결국 엄마 노릇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공부도 시작했고요.

아이가 어떻게 달라졌나요?(그녀의 딸이 전교 회장까지 한다며 동석한 이성아 부장이 일러줬다)
다른 것보다도 지금 우리 딸이 중 3인데 학교를 너무 좋아해요. 방학이 끝날 때쯤엔 얼른 학교에 가고 싶다며 가방까지 미리 싸놓을 정도예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대요. 저는 그동안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썼지만 모든 엄마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 가족마다 상황이 다르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거든요. 방향만 제대로 정립한다면 맞벌이를 하면서도 충분히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아이를 잘 키워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해요
만난 분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을 것 같아요.
이분이 처음 오셨을 때는 상당히 절망적인 상황이었죠.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어찌나 말썽을 피우는지 학교에서도 전학을 권고할 정도였대요. 제가 볼 때는 행동 장애에 ADHD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는 바쁘다는 이유로 가정일에 나 몰라라 하고 엄마는 우울증까지 생겨서 그걸 고쳐보겠다고 저에게 찾아왔어요. 그런데 부모 교육을 받기 시작하더니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어요.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른바 ‘부모력(父母力)’이 생긴 거죠. 전에는 머릿속에 ‘도대체 애가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면 이제는 ‘얘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로 바뀌었어요. 심할 때는 70대를 때린 적도 있을 정도래요. 혼내고 야단치던 엄마가 자신의 힘든 점을 알아주고 도와주는 엄마로 바뀌었으니 아들도 당연히 변했겠죠? 지금은 과학 영재로 아주 똘똘하게 자라고 있고, 부부 관계도 좋아졌어요. 더 신기한 것은 엄마의 변화예요. 언젠가 제게 와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제야 살 만하네요.” 그전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소리겠죠. 요즘은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고 싶다며 부모 교육 강사 과정을 밟고 있어요.

그렇게 행복해지는 엄마들을 만날 때 큰 보람을 느끼실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사람이 바뀌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참 가슴 뿌듯한 일이에요. 솔직히 어른이 돼서 머리가 굳어지면 습관이나 성격을 바꾸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엄마가 1%만 바뀌어도 아이가 변하고 가족이 변해요. 한 번은 부모 질환에 대해 강의하는데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딱 제가 고민하던 내용이에요. 오늘 귀찮아서 하루 건너뛸까 생각했는데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그때 생각했죠. ‘오늘도 한 명을 구조했구나.’(웃음) 가끔은 정말 제 자신이 구급대원 같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어머니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남들보다 잘하는 아이보다 남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게 더 중요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 애가 학교 가서 환영받을 수 있을까? 담임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좋아할까?’ 이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이 나와요. 바로 집단 규칙을 잘 지키고, 친구와 다툼이 없고, 수업 시간과 노는 시간을 구별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아이가 아닐까요? 그런 준비를 우리 엄마들이 얼마만큼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해요. 영어, 국어 등 학습 교육뿐만 아니라 마음의 준비를 몇 퍼센트나 하고 있는지 보셨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항상 잘하는 것은 아니에요.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는 내 아이잖아요. 기다릴 줄 아는 부모가 됐으면 좋겠어요.

by 트래블러 2010. 4. 2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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