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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02 패션칼럼니스트 심우찬
- 2010.04.25 유니버설 발레단 - 엄재용, 황혜민, 이승현, 한서혜
- 2010.04.25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스티브 김
- 2010.04.25 부모 교육 전문가 송지희
“한국 여자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화려한 패션 피플의 전형, 1년에 몇 번씩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4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코스모폴리탄, 대한민국의 최고 자랑거리는 ‘여자들’이라고 주장하는 극렬 페미니스트…. 심우찬 씨를 수식하는 말들은 이처럼 죄다 범상치가 않다. 그런 그가 최근 에세이집 <프랑스 여자처럼>을 출간하며 여자 시리즈 3부작을 마무리 지었다. <파리 여자, 서울 여자>, <청담동 여자들>, 그리고 이번 신간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년간 끊임없이 자신의 책은 물론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자’ 이야기만을 해왔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의아한 듯 물었다. “당신은 남잔데, 왜 여자 이야기를 하느냐”고. 패션 칼럼니스트로 많은 글을 써왔고, 또 그만한 인지도를 자랑했던 그이기에 패션 관련 에세이가 아닌 여자 이야기만을 책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의 예상을 벗어난 행보였다. 물론 패션이 여자와 많은 관련이 있는 분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여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성토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프랑스 여자들이야말로 가부장 사회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우리나라 여자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여자를 테마로 벌써 세 번째 책이다. 여자에 대해 할 말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하긴, 각종 고시에서 여풍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는 뉴스가 매년 들린다. 한국 여자들이 유독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직접 문제를 제기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가끔 한국에 들어와서 TV를 보게 되는데, 머리 나쁜 연예인이란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들이 다 똑같더라. 여자는 예뻐야 되고, 쭉쭉 빵빵해야 하고. 사실 그건 그 사람들만 하는 소리일 뿐 모든 남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미모나 외향적인 것이 아닌 여성의 성정이나 더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을 뿐이다. 항상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머리 나쁘고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언젠가부터 ‘여자의 미모’는 진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예쁘고 어린 여자에게 광적으로 열광하는 분위기가 보편화되었다고 할까.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가 따라하고 있는 거고.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한국 여자들조차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원래 그렇게 마이너들에게 관심이 많았나? 여성 시리즈는 3부작으로 완성인가 아니면 계속 써나갈 생각인가? 여기저기서 자꾸 콜이 들어온다. 그만큼 이런 목소리가 세상에 필요하다는 뜻 아닐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여자들’이란 책을 불어로 프랑스에서 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지만 우리 사회에도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여성이 나와 여성들의 삶을 바꿔줬으면 좋겠다. 자신의 삶을 통해 위대한 여성의 모습을 강력하게 보여줄 사람 말이다. 그런데 아직 그만한 여성이 등장하지 않아 안타깝다. 심우찬 사전에서 참고한 한국 여성의 수식어들 <끈기 있고 열정적인 patient&passionate> 시크함과 자유분방함이 프랑스 여자들의 매력이라면 한국 여자들은 어떤 이미지로 대표될까? “많은 미덕이 있지만 열정적이고 에너제틱하다는 점은 정말 최고예요. 뭘 하든 똑 부러지게 잘하고 열심히 하죠.” 외국 남자들에게도 한국 여자들은 대개 그런 이미지로 비친단다.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끈기와 꿈을 향한 정열이 한국 여자의 가장 큰 장점인 셈이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준우승한 핸드볼 여자 선수들도 그렇고, 불패의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여자 양궁 선수들, 여자 프로 골퍼들, 김연아 선수까지….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세계 20위권이라고 봤을 때 세계 최고를 차지한 한국 여성이 이렇게 많다는 건 분명 뭔가가 있다는 거죠.” 스포츠뿐만 아니라 실력만으로 평가되는 객관적인 경쟁에서 늘 우수성을 인정받는 한국 여자들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까. 그의 지적대로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뿌리 깊은 성 역할 고정관념이 크나큰 벽으로 우수한 여자들의 길을 막고 있다는 게 가장 맞는 설명일 터이다. 객관적 경쟁에서 우수성을 인정받는 한국 여자들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특히 결혼한 여자들은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게 되면서 더더욱 사회적인 성공과는 멀어진다. “한국 여성의 열정적인 면이 부정적으로 발현되면 대치동 엄마들처럼 치맛바람의 형태가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또한 주부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지 못한 우리 사회의 탓 아닐까요? 에너지를 풀 곳이 없으니까 애들 교육에 집착하기도 하고, 복부인처럼 돈에 집착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여자들이 역량을 풀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훨씬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게 심우찬 씨의 견해다. <똑똑하고 현명한 smart and wise> <그럼에도 불구하고 nonetheless> |
김치명인 강순의 여사 (1) | 2010.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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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신 한국선박금융 대표 (1) | 2010.07.23 |
유니버설 발레단 - 엄재용, 황혜민, 이승현, 한서혜 (0) | 2010.04.25 |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스티브 김 (0) | 2010.04.25 |
부모 교육 전문가 송지희 (0) | 2010.04.25 |
인터뷰를 약속하고 방문한 유니버설 발레단의 연습실은 그 역사를 말해주듯 고풍스러웠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장난기 어린 모습은 어디 갔는지, 한 마리 백조처럼 우아하고 도도해 보였다. 곧 있을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처음으로 주역을 맡은 한서혜 씨와 이승현 씨는 불과 지난해에 입단한 새내기. 그러나 입단 1년 만에 발레단 내 세 번째 서열인 ‘드미 솔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문훈숙 단장의 지도 아래 손끝부터 발끝까지 한 마리 백조가 된 한서혜 씨의 등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날 만나기로 한 또 다른 커플인 엄재용 씨와 황혜민 씨는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최고의 발레 스타다. 둘은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2003년 이래 늘 함께하며 찰떡궁합을 자랑해왔다. 이렇게 최고의 발레 커플과 촉망받는 젊은 커플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발레를 하면서 지옥만큼 고통스럽다가도 어느새 천국처럼 행복해진다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멋진 발레리나, 발레리노들. 시청자로서의 순수함과 발레리노로서의 자부심 사이 엄재용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1박2일> 팬이다. ‘발레리노는 예능 같은 거 안 볼 거 같다’고 하자, 그게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쨌든 <1박2일> 시청자 투어 2탄의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뜨자마자 엄재용 씨는 준비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이유와 멀게는 발레의 대중화에 기여(?)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말이다. 발레단 측에서도 수석 발레리노의 이러한 취지를 기특하게 받아들여 흔쾌히 허락해주었다고 한다. 이들이 대중 앞에 차려놓은 예술의 만찬 발레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과 달리 유니버설 발레단은 시종일관 친근하고 끼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메라를 보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먹을 게 걸린 게임에서도 의외의 실력을 보여줬다. 야외 취침 복불복에서도 멋지게 승리했지만 어르신이 많은 11남매 팀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기도 했다. 어느 때보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빛났던 순간은 둘째 날의 장기자랑 시간이었다. 그동안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발레단원들이 토슈즈를 신고 <백조의 호수>를 연기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솔직히 그런 무대에서 춤을 춰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과연 공연이 가능할까 조심스러웠는데, 다리만 들어도 환호를 해주시니까 기분이 참 새로웠어요. 제가 발레 공연을 하면서 그런 함성을 들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특히 흑조로 분해 32바퀴 회전 동작인 푸에테(Fouette)를 멋지게 선보인 한서혜 씨는 특유의 미모가 화제되어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열렬한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개인적인 사진 등이 인터넷에 노출되고 뉴스로 나오면서 의도치 않은 유명세를 탄 것. “예쁘다고 해주시니 기분은 좋죠. 그런데 거기에도 악플은 달리더라고요. 악플의 단골 메뉴인 성형 의혹까지…. 저 정말 자연산이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좀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길거리에서 ‘한서혜다!’ 하면서 알아봐주시는 경험을 처음 했는데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한서혜) 발레 공연이 끝난 후 은지원의 노래인 ‘사이렌’에 맞춰 발레 동작을 접목시킨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현장의 열광적인 반응은 물론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도 ‘발레는 우아하지만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몰입할 수 있었다. “방송이 나간 뒤 미니홈피 방문자 수가 확 늘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이런 글을 남기셨더라고요. ‘<1박2일>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이번에 처음으로 발레 공연을 예매했어요.’ 그걸 보고 우리가 방송에 출연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구나 생각했어요.”(엄재용) 사실 발레라는 예술 장르의 이미지는 견고하게 둘러싸인 성벽처럼 단단해서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다. 고상하고 우아한 음악, 가녀리고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애절한 표정, 희디흰 스타킹에 클래식 튀튀, 1백 마디 말이 필요 없게 만드는 다채로운 춤사위…. 그 자체로 예술의 최고점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반대로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동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발레도 뮤지컬만큼 재미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발레에도 언어가 있어요. 말이 아니라 몸짓 언어지만 ‘나’, ‘너’, ‘사랑해’, ‘함께 가요’ 등등 몇 가지만 알아두면 저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이해가 되거든요. 이번 방송 출연을 통해 발레가 어렵다는 편견을 조금이라도 깬 것 같아 뿌듯해요. 하지만 저희가 일부러 망가진 건 아니에요. <1박2일>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저희도 ‘리얼’이었어요.”(엄재용) 세기의 ‘지젤’로 손꼽혔던 문훈숙 씨가 단장으로 있는 유니버설 발레단은 세계에서 더 유명한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발레단이다. 그러나 고급 예술 영역에서 벗어나 좀 더 대중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공연을 할 때마다 단장이 직접 나와 공연에 얽힌 이야기와 발레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다거나, 꼭 큰 무대가 아니더라도 백화점 문화센터 등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이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몸의 예술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비록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볼거리 위주로 그려지긴 했지만, <1박2일>은 적지 않은 사람에게 발레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들은 예술이라는 견고한 성에 갇히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비상하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때문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발레, 그 매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오늘도 이들은 연습실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아직 끝내지 못한 네 사람의 이야기 유니버설 발레단은 1984년에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발레단이다. 그 이름 때문에 외국 발레단 아니냐는 오해를 종종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총 70여 명의 무용수가 소속되어 있고 지금까지 약 4백10회의 해외 공연과 약 1천2백 회의 국내 공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 발레를 세계의 중심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만난 황혜민 씨와 엄재용 씨는 유니버설 발레단이 자랑하는 최고의 무용수로 8년 동안이나 유수의 공연을 통해 서로 짝을 맞춰왔다. 반면 이승현 씨와 한서혜 씨는 이제 막 떠오르고 있는 신예 무용수로, 어린 나이에도 우아하고 성숙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으며 차기 유니버설 발레단의 스타로 각광받고 있다. 발레의 운명을 타고난 남자_ 엄재용 엄재용 씨에게 발레는 운명과도 같다. 거창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를 찬찬히 살펴보면, 발레리노가 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발레리나 출신인 어머니와 살면서(그의 어머니는 김명회 서원대 무용과 교수다) 무의식적으로 발레를 보며 익히고, 긴 팔다리와 작은 얼굴의 서구형 체형을 갖춘 우월한 유전인자에, 왜 너는 발레를 안 하냐며 부추기는 주위에 사람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는 스스로 꽂히기 전까지는 발레에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에게 발레는 운명이었다. “정말 신기한 것이요, 갑자기 발레가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중 2 때까지는 아이스하키 같은 남성적인 스포츠에만 끌렸거든요. 물론 지금도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를 좋아하긴 하지만 발레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보다 저를 사로잡은 것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집에서 우연히 <지젤> 공연 동영상을 본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우아하고 고혹적인 매력에 그는 완전히 사로잡혔고, 이윽고 발레를 배울 결심을 하게 된다. 동작 하나하나를 익히고, 최고의 연기를 위해 몸을 만들고, 그렇게 점점 빠져들었는데 우연처럼 그의 첫 무대도 <지젤>이었다. “늘 이야기하지만 저의 개인적인 바람은 은퇴 공연을 <지젤>로 하는 거예요. 저를 발레의 길로 이끌어준 작품이니만큼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유니버설 발레단을 대표하는 수석무용수, 무용협회 연기상, 발레협회 당쉐르 노브르상 수상자. 엄재용 씨는 이미 정상의 자리에 선 발레리노지만 처음 발레를 시작할 때처럼 늘 한 동작 한 동작을 더 잘하기 위해 끝없이 애쓰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예술에는 끝이 없으므로 그의 발레에 대한 열정도 좀처럼 식지 않을 듯하다. 청초하고 아름다운 백조의 화신_ 황혜민 처음 발레를 시작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공주 옷 같은 예쁜 의상은 소녀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발레를 할 때만큼은 이 작은 어린 소녀도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될 수 있었고,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 공주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고 입시가 시작되면서 크고 작은 슬럼프가 오갔고, 순수했던 열정은 사그라지다 불타오르기를 반복했다. “20년 넘게 발레를 했으니 그동안 찾아온 슬럼프야 수도 없죠.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 때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해내고, 정신적으로 우울해질 때는 열심히 몸을 움직여 털어내곤 해요. 가장 난감할 때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이 동시에 찾아올 때인데, 가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하죠. 이럴 땐 별수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수밖에.” 선화예중 재학 중 유학길에 올라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와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2002년 유니버설 발레단에 입단하기까지….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밟았던 그 지난한 과정을 어떻게 글 몇 줄로 설명할 수 있으랴. “매일 몸이 아파요. 그렇게 오랫동안 연습하고 훈련했는데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전신에서 통증을 느낀다니까요. 비 오는 날은 무릎이 아프고, 다음 날은 허리나 어깨가 아프고…. 무슨 애늙은이 같죠?(웃음)” 톡 치면 부러질 것 같은 가녀린 몸, 금세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청초한 눈매, 그녀는 순수하고 우아한 백조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올해 나이 서른셋, 발레리나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다. 열한 살 때부터 최고의 발레를 위해 길들여진 몸이니 이곳저곳 고장이 안 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의 세례를 받은 그녀의 몸이 그려내는 아라베스크나 에튀티드는 발레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현현하고 있다. 최고의 무용수로 인정받기까지 가녀린 몸이 감당해야 했던 혹독한 훈련의 흔적을 굳이 감추지 않아도, 그녀는 우아한 백조, 그 자체다.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차세대 발레 스타_ 한서혜 연습실 문을 열자마자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얼마 남지 않은 <백조의 호수> 공연 준비를 위해 문훈숙 단장으로부터 특훈을 받고 있는 한서혜 씨의 얼룩진(?) 등이었다. 마치 허리 부상으로 붕대 투혼을 보여줬던 김연아 선수의 그것처럼, 그 가녀린 등에 빽빽이 붙어 있는 파스를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대단하다 싶기도 했다. “차이코프스키의 3대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죠. 주연을 해본 적이 몇 번 있지만 <백조의 호수>만큼 큰 공연은 처음이어서 긴장이 많이 돼요. 나이도 어린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그런데 몸이 정말 천근만근이네요.” 한서혜 씨는 아주 자연스럽게 발레의 길로 들어선 경우다. 어머니가 발레리나 출신인 데다 고모는 성악가고, 오빠와 언니는 클래식 악기를 연주한단다. 그녀도 주위의 권유에 따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발레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한 길만 걸어왔다. 스스로의 적성과 주위 환경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경우라 하겠다. 덕분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조기 졸업해 남들보다 2년 빨리 프로 발레리나로 입성할 수 있었다. “다른 발레단에 비해 유니버설 발레단은 세대교체가 빨리 되는 편이에요. 나이 차도 크게 나지 않아서 위압적이기는커녕 친구처럼 선후배 사이가 좋아요. <1박2일>에 나온 것처럼 서로 장난도 많이 치고 재미있게 지내죠.” 짝꿍인 이승현 씨와 함께 올해 드미 솔리스트가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프리마돈나를 향한 행보를 시작할 전망이다. 한 번의 방송 출연으로도 폭발적이었던 대중적인 인기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발레리나 한서혜 씨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무대 위에서 더욱 아름답게 피어날 때를 기대하며 연습을 멈추지 않는 그녀. 이마에 맺힌 땀마저도 곧 피어날 꽃봉오리 같았다.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가 떴다!_ 이승현 이제 갓 소년 티를 벗은 듯한 앳된 얼굴, 반항기와 장난기를 동시에 머금은 인형 같은 눈매. 아직은 미완성인, 그러나 머지않아 무지막지한 폭발력을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하는 발레리노 이승현.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빌리 엘리어트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물론 그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지만. “사실 저는 키가 크고 싶어 발레를 시작했어요. 중학교 때 키가 150㎝밖에 안 되었거든요. 무용을 하면 키가 클 수도 있다는 말에 처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게 고 1 때였는데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1년에 10㎝씩 커서 지금은 180㎝가 됐어요. (웃음)” 주위에 발레에 대해 아는 사람도, 조언을 해줄 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그에게 발레는 낯설고 이질적인 저 너머의 예술이었다. 처음에는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쫄쫄이 타이츠를 입는 것도 민망해서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부쳤다. 그러나 다른 발레리노들이 그랬듯이 그도 곧 발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발레를 한다는 그의 고백을 들은 친구들은 “너, 게이가 된 거냐?”며 비웃음 섞인 반응을 보였지만, 막상 그의 발레를 보고 나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키로프 발레아카데미, 세종대학교를 졸업하고 지난해 유니버설 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올해 드미 솔리스트로 승급됐는가 하면 생애 처음으로 <백조의 호수> 주연까지 꿰찼다. 이제는 쫄쫄이 바지가 오히려 편하고 자랑스럽다는(?) 발레리노 이승현 씨의 두 어깨에는 자부심이 흘러넘쳤다. |
김연신 한국선박금융 대표 (1) | 2010.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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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칼럼니스트 심우찬 (0) | 2010.07.02 |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스티브 김 (0) | 2010.04.25 |
부모 교육 전문가 송지희 (0) | 2010.04.25 |
마지막까지 무소유 실천한 법정스님 (0) | 2010.04.25 |
나누는 삶이 아름답다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스티브 김 ‘아시아의 빌 게이츠’, ‘코리안 드림의 대표주자’. 스티브 김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미국엘 건너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3년에 ‘자일랜’이라는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 회사를 창업했다. 자일랜은 창업 3년 만에 나스닥에 상장되는 기염을 토했고, 창업 5년 만에 연매출 3억5천만 달러를 달성함으로써 IT업계의 신화를 창조했다. 큰 성공을 거둔 후 회사를 20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그야말로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그는 지난 2007년 30여 년간의 미국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영구 귀국했다. 꿈·희망·미래재단은 그가 한국에서 본격적인 사회복지 사업을 펼치기 위해 2001년에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젊어서는 버는 돈이 내 돈이지만, 나이 들어서는 쓰는 돈이 내 돈’이라는 그의 인생철학은 많은 이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소통 요즘 강연도 많이 하러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있다. 아이들부터 청년들, 직장인들까지 접할 기회가 참 많은데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 ‘삶이 참 각박하다’는 것이다. 아이들 교육부터 시작해 사람들이 참 힘들게 산다. 그래서는 행복할 수가 없다. 결국 모두가 지치고 만다. 게다가 점점 소통이 안 되면서 경쟁 양상이 심해졌다. 많은 사람이 학연, 지연 등 쓸데없는 네트워킹에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양적인 관계가 아니라 질적인 관계가 더 중요하다. 질적인 관계란 바로 ‘가족’이다. 나 또한 한 번의 실패를 겪었다. 가정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면서 나는 일과 성공을 도피처로 삼았다. 내가 행복한 가정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두 번째 결혼을 통해서였다. 일에만 매달리면서 개인적인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인생의 깊이를 모르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저녁은 항상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 아내, 아이들과 대화가 이어진다. 도전 자기가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젊은이가 대기업만을 목표로 삼는데, 내가 보기엔 차라리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게 낫다. 나도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해 대기업의 엔지니어가 되었는데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 내가 거대한 톱니바퀴의 작은 부속품일 뿐이라는 생각에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을 위한 돌파구를 위해 중소기업에 들어갔고, 또 ‘창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물론 엄청난 고생과 노력이 뒤따라야 했지만 행복을 위해 한 발 한 발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기쁨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좋은 학교 나와서 취직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운이 좋아 취직했다 해도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재미도 없고 능력 발휘도 못해 결국 실패하게 된다. 행복 막상 성공하고 보니 그때부터 과연 무엇을 위한 성공이었나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성공’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무조건 앞만 보며 달린다. 보통 그 성공은 ‘돈’이나 ‘권력’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나 또한 골프도 치고, 여행도 다니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려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행복이 아니었다. 내가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를 생각해보면 큰돈을 벌었을 때보다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을 즐기고, 주변에서 인정해줬을 때였다. 성공은 행복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목표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돈, 명예, 권력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은퇴 한국의 직장인들을 보면 무쇠 체력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렇게 일하고서도 회식을 3차까지 한다. 그 몸으로 다음 날 출근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일하다 은퇴하면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어찌할 줄 모른다. 일하면서 번 돈은 모두 자식 교육에 들어가고 남은 돈이 없으니 무력감에 시달린다. 은퇴 후 삶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돈이 많다고 은퇴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꾸준한 운동과 수면, 절제하는 생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외롭고, 삶이 각박해지는데 이럴 때 진심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한 명은 천군만마보다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고향 젊어서는 세계를 누비는 꿈을 꾸더라도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 1976년에 한국을 떠나 30년을 미국에서 살아온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미국에서 이룰 것은 다 이룬 상태였다. 그러나 새로 시작하는 사회복지 사업만큼은 한국에서 펼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결국 아내와 깊이 의논한 끝에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많은 사람이 만류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2007년, 그러니까 3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하던 아이들도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한국이 이제는 좋다고 한다. 나도 한국에서 펼쳐가는 새로운 사업에 열정을 쏟으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게 ‘미국에서 돈 벌어 한국에서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부 나는 자일랜에 있을 때도, 그전에도 기부 활동을 곧잘 하는 편이었다. UCLA에 1백만 달러를 기증하기도 했고 한미장학재단을 통해 공부 잘하는 한국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자일랜을 매각한 후 시간 여유가 생겨 기부나 사회 공헌 활동에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이왕이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전국을 돌며 아동복지시설과 노인복지시설 여러 곳을 들렀다. 그러나 20년 전과 달리 매우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는 모습에 내가 할 일이 없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나는 ‘먹이는 사업’이 아니라 ‘살리는 사업’ 쪽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하기로 했다. 사람이 꿈을 접을 때 입은 상처는 평생 간다.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꿈·희망·미래재단이다.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약 2백여 명의 학생을 지원해왔다. 나는 돈 쓰는 일 역시 돈 버는 일과 마찬가지로 계획성 있고 치밀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돈 버는 부자가 아니라 돈 쓰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나이 듦의 기술 나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오히려 나의 천직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르치는 일’이다. 학생들이 눈을 빛내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면 삶의 열정이 새롭게 솟아나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축적한 부가 어느 정도 되는지, 그것을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물려줄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나는 내 자녀들에게 물질적인 재산이 아닌 바른 정신과 바른 자세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물려주고 싶다. 사실 많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재능과 에너지를 죽이는 일이다. 한국에서도 점점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행복하고 자식들도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싶다면, 사회적인 위치가 높아지고 경제적인 부가 쌓이기 시작하는 중년부터 나눔을 실천하고 은퇴 후 삶을 설계해야 한다. 무조건 모든 것을 주기보다는 나눔으로써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리빙센스 4월호
패션칼럼니스트 심우찬 (0) | 2010.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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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발레단 - 엄재용, 황혜민, 이승현, 한서혜 (0) | 2010.04.25 |
부모 교육 전문가 송지희 (0) | 2010.04.25 |
마지막까지 무소유 실천한 법정스님 (0) | 2010.04.25 |
남상돈·이영미씨네 다둥이 가족 `13번째 아이가 태어났어요!` (0) | 2010.04.16 |
아이들보다 배워야 할 게 더 많은 부모 노릇, 이제 교육이 필요합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주말에 지방 강의가 있어 내려갔다 오는데, 깜짝 놀랐어요. 전에는 주말만 되면 놀러가는 사람들로 꽉꽉 막히던 길이 뻥 뚫린 거예요. 생각해보니, 지금이 학기 초잖아요. 아이들은 새로운 생활, 새로운 교과 과목에 적응하느라 긴장 상태고, 엄마들은 또 엄마들대로 ‘우리 아이가 잘하고 있을까’ 걱정하느라 마음이 불안한 거죠. 그래서 3월이나 4월에 아픈 애들이 많다고 해요. 환절기인 탓도 있지만 심리적인 긴장이나 두려움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런 시기에 아이에게 부담을 주면 더 역효과가 날 뿐이에요. ‘잘해라’라는 식의 격려성 멘트도 자제하는 게 좋아요. 그저 지켜보는 게 최고죠. 자녀 교육이 아니라 부모 교육이 먼저라니, 부모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뭔가요? 정서적 위험에 처한 아이들, 부모병에 걸려 신음하는 부모들, 처방전을 받아가세요 그렇다면 교육을 받은 부모가 얻어가는 게 뭐가 있을까요? 자녀와 부모가 함께 행복해진다는 점이죠. 제가 걱정하는 건요, 한 5년 전부터 아이들 사이에 반항 장애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어린이들의 약 30%가 교류 장애, 정서 장애, 학습 장애 등을 보이고 있어요. 사춘기 아이들이 반항하고 자기 생각을 갖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지만, 만약 초등학교도 못 들어간 유아가 부모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반항한다는 건 분명 비정상적인 현상이죠. 제대로 된 자녀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옛날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이 자녀 교육에 투자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부모들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고 노력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올바른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부모 교육이 필요합니다. 엄마들이 이런 교육 기회를 찾아야만 바른 양육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위험하지 않게 된다고 봐요.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부모님들은 주로 어떤 고민을 안고 계시던가요? 강사이기 전에 한 아이의 엄마로서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이가 어떻게 달라졌나요?(그녀의 딸이 전교 회장까지 한다며 동석한 이성아 부장이 일러줬다) 아이를 잘 키워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해요 만난 분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을 것 같아요. 이분이 처음 오셨을 때는 상당히 절망적인 상황이었죠.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어찌나 말썽을 피우는지 학교에서도 전학을 권고할 정도였대요. 제가 볼 때는 행동 장애에 ADHD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는 바쁘다는 이유로 가정일에 나 몰라라 하고 엄마는 우울증까지 생겨서 그걸 고쳐보겠다고 저에게 찾아왔어요. 그런데 부모 교육을 받기 시작하더니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어요.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른바 ‘부모력(父母力)’이 생긴 거죠. 전에는 머릿속에 ‘도대체 애가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면 이제는 ‘얘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로 바뀌었어요. 심할 때는 70대를 때린 적도 있을 정도래요. 혼내고 야단치던 엄마가 자신의 힘든 점을 알아주고 도와주는 엄마로 바뀌었으니 아들도 당연히 변했겠죠? 지금은 과학 영재로 아주 똘똘하게 자라고 있고, 부부 관계도 좋아졌어요. 더 신기한 것은 엄마의 변화예요. 언젠가 제게 와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제야 살 만하네요.” 그전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소리겠죠. 요즘은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고 싶다며 부모 교육 강사 과정을 밟고 있어요. 그렇게 행복해지는 엄마들을 만날 때 큰 보람을 느끼실 것 같아요.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어머니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
유니버설 발레단 - 엄재용, 황혜민, 이승현, 한서혜 (0) | 2010.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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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스티브 김 (0) | 2010.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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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돈·이영미씨네 다둥이 가족 `13번째 아이가 태어났어요!` (0) | 2010.04.16 |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수상자 (0) | 2010.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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