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방만했던 여행이 끝났다.

깜짝 시댁방문은 짧았지만 훈훈했고,

이후에 기차 타고 즐긴 안동여행도

안동찜닭, 간고등어정식 등 먹을거리와 더불어 행복했다.^^

어제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보니,

엄청난 일이 있었다.

고양이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글쎄 내 방에 3일 내내 갇혀있었던 것이다.

문을 여니까 허겁지겁 달려나와 사료를 먹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갇혀있었을 걸 생각하니 어찌나 미안하던지..ㅠㅠ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방문을 닫아버렸던 내 불찰이다.

똥오줌냄새로 진동하는 내방을 치우면서 그 대가를 조금이나마 치렀다.

이동시간이 길었던지라 무지 피곤했는지

라디오스타 보다가 스륵 잠들어버렸다.

근데 이넘의 고양이가 사람이 그리웠던지 새벽 한시부터 문을 긁으며 울어제끼는 통에

당최 잘수가 없었다.

결국 내방에 가둬놓고 돌아왔는데

안그래도 며칠 갇혀있으면서 괴로웠을 녀석이 자꾸 떠올라서

한시간정도 뒤척저리다가 결국 세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버렸다.

커피한잔 마시고, 어제 사온 캄파뉴에 크림치즈 발라먹고...

그러면서 일이나 좀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은 참이다.

그리고 무릎위엔 고양이가 앉아있다.

방에 고약한 냄새가 나도, 잠이 모자라도,

이 미안함은꽤 오래갈 것 같다.

벌써 새벽 다섯시다.

일단은 인물과사상 녹취 풀다가

8시쯤 집을 나설 생각이다.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아침 해결하고

11시 인터뷰하러 가야지.

인터뷰 끝나면 대충 12시반 정도?

2시에 청소년소설모임 갔다가

형숙씨랑 미팅하고 와야지.

잠을 별로 못잤으니 오늘 밤엔 일찍 자야겠다.

내일 오전에 일좀 하다가 인천으로 취재다녀오고...

주말에는 내내 원고쓰고... 에효.

돌아오자마자 일이 몰아닥치는구나.

by 트래블러 2012. 3. 8. 04:55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성공하고 싶다.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

이런 꿈을 꿔 본 일이 없다.

내가 꾸는 꿈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면 좋겠다.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것들이었다.

나 자신이 소박한 이상주의자라 강변하고 싶은 게 아니다.

어떤 꿈이 더 가치있다고 절대 이야기할 수 없는 법이다.

어쨌든,

나는 늘 그런 꿈을 꾸지만

날마다 좌절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진보한 것 없이

늘 제자리인 것만 같고,

마감에 급급해 숙제처럼 글을 써내면서

보다 나은 글을 써내지 못한 자괴감에 휩싸인다.

지금의 내 상태가 평화롭고 희망적이다가도

순간 순간 과연 나아지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

불안하고 무섭다.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하나 하나 최선을 다하면

조금씩 쌓여 보다 나은 내가 되리라 믿어보지만,

에휴, 모르겠다.

의도하지 않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생각없이 행동하기도 하고,

나태해지기도 하고,

최근의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자꾸 머릿속이 어지러워진다.

난 지독한 회의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

by 트래블러 2012. 2. 13. 00:03

어린 시절 아주 잠시지만, 비행에 빠진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비행, 옳지 못한 행동을 매일 같이 하고 다녔던 때였다. 열 살 때였으니까 비행청소년도 아니고 비행어린이였다고 해야 하나.

술을 마시고, 난잡하게 놀기엔 안타깝게도 너무 어린 나이였고, 다만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가능한 한 모든 악행을 저질렀다.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고,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고, 닥치는 대로-이 말 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돈과 물건을 훔쳤다. 몰래 담배를 피우기도 했고, 몸싸움까지는 안 갔지만 그 직전까지 갈 정도로 반 애들과 심하게 싸운 적도 있었다.

사실, 2학년 때까지 나는 전혀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말수 적고, 착하고, 내성적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최고의 모범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나를 두고 많은 어른들이 우려를 표했다. 숙제를 전혀 해놓지 않고, 마치 해온 것처럼 어줍잖은 꼼수를 쓴 나에게 벌을 주다가 담임선생님은 “전혀 그럴 것 같이 안 생겼는데....”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수시로 지갑에 손을 대고 무슨 잘못인지 학교에 불려가기까지 할머니와 엄마는 “다 친구를 잘못 사귄 탓”이라 돌려버리기도 했다.

그랬다. 그 때 내겐 비행을 함께하던 친구가 있었다. 함께 했다는 것은 적합지 않겠다. 내 비행을 지켜보고 방관했던 친구가 있었다. 훔쳐온 돈으로 군것질을 함께 했으며 가끔은 그냥 돈을 주기도 했다. 그 애는 그게 다 훔친 돈이라는 걸 알면서 아무 말 없이 받아쓰고 내 곁에 있었다. 함께 다른 애들과 싸웠고, 몰래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그게 어떤 형태의 우정이었는지, 혹은 상처받은 영혼들끼리 이해타산이 맞았던 건지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그 애는 늘 ‘죽음’에 대한 이야길 했다. 열 살짜리의 고민치고는 참 심오했다. 물론,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끄덕끄덕 동조를 했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어떤 고민을 이야기했던가. 그게 무엇이든 진실을 이야기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내가 왜 그렇게 모진 방황을 거쳐야만 했는지 알겠다. 나에게 상처 입힌 어른들, 뭣같은 세상에 열 살짜리 꼬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음을... 지금은 알겠다. 그 일을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작고 어렸다. 적어도 사랑하는 가족들이라면 그런 식으로 묻고 지나가서는 안 되는 거였다. 어쨌든, 당시 내가 1년 남짓 저질렀던 온갖 비행과 악행들은 나름대로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 상처를 그대로 담아두고 다시 착한 아이로 돌아가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나쁜 아이로라도 살아야 했던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1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정도 복구가 되었다. '착한 아이'라는 본성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던 도벽에의 충동도 어느 정도 사그라졌고, 숙제도 공부도 조금씩 할 맘이 생겼다. 그렇게 4학년이 되어서는 그 애와 반이 갈리고, 나 또한 이전의 착한 아이로 거의 돌아왔다. 할머니와 엄마는 역시 ‘다 친구 잘못사귀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결론지었고, 내 비행의 원인을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나 또한 ‘그런가 보다’하고 살았다.

내 비행의 원흉으로 지목된 그 애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후에는 맨송맨송하게 지냈다. 공부는 그저 그랬지만 사실 그렇게 못된 애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날 힘들게 했던 애로 여기고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괜한 누명을 씌웠으니 미안하기도 하다.

6학년 때였던가, 그 애와 다시 한 반이 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이미 나는 완벽한 모범생으로 거듭나있었다. 반에서 1등은 못돼도 2등 정도는 늘 차지하는 성적이었고, 부반장까지 역임했으니. 그 애와는 노는 무리도 달랐다. 친하지 않아서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는데 그 애와 그 애의 친구들이 날더러 ‘고상하다’며 비꼬고 놀렸던 건 기억난다. 지난 과거를 떠올리게 했음은 물론이다.

왜 갑자기 그 애 생각이 나는 걸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의 아픈 시절을, 그 애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한 게 많지만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 그 애도 아마 그럴 것이다.

by 트래블러 2012. 2. 10. 12:14

2011년이 다 지나간다.

벌써 26일이다.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일은

앤써 마감 내일까지 치는 것.

웅진 마감하는 것.

일단 할일을 정리해보자.

오늘 밤 앤써 스페셜 기사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내일 구로 웅진 미팅 다녀와서

오후에 스페셜 기사 탈고.

웅진 소식지 나머지 원고 정리해서 보내기.

수요일엔 대전 취재.

저녁 때 송년회 어떡할지;;

목요일, 금요일은 웅진 마감...

by 트래블러 2011. 12. 2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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