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전에 원고 독촉을 받았다.

6p짜리 2꼭지,

4p짜리 한꼭지를 의뢰받아 놓고는

겨우 한 꼭지 송고하고 게으름을 피워대던 참이었다.

참말로, 고질병이다.

취재한지 2주도 넘게 지났는데 이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갖고 있다니...ㅜㅜ

어제밤에는 갑자기 '나만의 책 만들기'에 꽂혀서

그간 써왔던 꽁트와 에세이를 모아 편집하느라

날밤을 꼬박 샜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글들을 한데 모으니 제법 그럴듯한 한권의 책이 됐다.

큼지막한 폰트로 제작해서 할머니한테 선물로 드릴 참이다.

10권을 뽑으면 권당 4천원 정도니 컬러삽화에 그럴듯한 표지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다.

출판사에서 안 내주는 내 책,

내 돈 내고 만들어버리겠다~!

ㅋㅋㅋ

그럼에도 느껴지는 뿌듯함은 뭐지?

책이란 참으로 오묘한 물건이라니까.

그건 그렇고, 원고 쓰자. 원고~!

by 트래블러 2011. 7. 24. 17:35

좀더 진취적으로 일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자유기고가로서 나는 지금까지 참 쉽게쉽게 길을 걸어왔다.

일거리가 넘쳐나 다른 이들에게 떼준 적은 있어도

없어서 고생한 적은 없다.

다들 첫 시작을 어떻게 하냐며 궁금해 하지만,

솔직히 난 답해줄만한 게 없다.

그냥 여기저기서 내 연락처가 돌고 돌아 청탁하는 전화가 왔으니까.

이는 내 성격에 기인한 탓이 클 테다.

일이 적은 달에는 놀 시간이 늘었다며 좋아했고,

반대로 일이 많이 들어온 달에는 통장 잔고를 상상하며 뿌듯해했다.

아무려나 일이 적든 많든 별 상관이 없었던 거다.

오히려 작년에 너무 폭주한 탓에 심신이 지쳐

청탁하는 전화가 고만 왔으면, 하고 내심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일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별것 아닌 인터뷰 기사를 3일째 잡고 질질 끌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뭐랄까... 자유기고가로 살아온 이래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낀달까.

내가 좋아했던 매체 L사가 사전 논의도 없이 페이지를 줄이는 걸 보면서

몇년전 열심히 일했던 W잡지가 오버랩되었다.

프리랜서를 아주 종같이 부리던 잡지였다.

아침에 청탁하고선 밤까지 써내라고 닦달하질 않나

좀스럽게 원고료를 몇만원씩 깎아대질 않나.

(원고료 산정방법도 멋대로였다. 이미지 많을 때는 원고지로 계산, 이미지 없을 땐 페이지로 계산;;)

진행비는 제대로 지급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수십만원 생돈 날렸을 거다.ㅠㅠ)

애써서 청탁한 분량 맞춰서 보내주면 자기들 입맛대로 가위질이었다.

(물론 편집자의 손길이 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절반가까이 원고가 잘려나갈 땐 미리 얘기 정도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암튼 이후로는 그쪽 일은 거의 받질 않았고, 자연스레 청탁 전화도 뜸해졌다.

그런데 지난달 웬일로 부록을 통으로 맡긴다고 해서 덥석 받았더니

또 몇년전과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거다.(기획안 대로 가지 않고 두시간마다 구성 바꾸기... 결국 찌라시 기사만 떠안게 만드는;;) 왜 아닌가 했다. 분명 열받을 일이 눈에 보여서 그냥 손 떼겠다고 했다.

별 아쉬움은 없었지만 조금 비참했다.

왜 아직도 난 이런 대우를 받는 걸까.

결국 화살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에게 보인 내모습이, 고작 그만큼만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아니라고 강변해도 일시키는 사람이 보는 눈이 제일 정확한 거다.

L사도 나를 그렇게 보는 것 같아 불안해졌다.

이 잡지 좋아하는데... 이 잡지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사람들...

그 기회들, 놓치고 싶지 않은데....

그러려면 좀더 열심히 해야 한다. 치열해져야 한다.

지난 달 편집장이 한 얘기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물론 늘 그렇듯이

하나의 기회를 놓치면 또 다른 기회가 다가오곤 했다.

그렇게 늘 현상 유지는 해왔다.

그 운발이 날 이 지경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닌가.

이젠 좀 정신 차리자.

나는 좀 불안해할 필요가 있다.

by 트래블러 2011. 7. 17. 02:22

또 한 주가 한 일도 없이 지나간다.

목욜, 금욜 집에 처박혀서 만화나 보고 소일하며 지냈다.

비가 계속 오니까 몸이 축축 처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ㅠㅠ

뭐, 다 핑계지만.

지금 써야 할 원고가 5개나 쌓여있는데~!

일을 앞에두고 반복되는 이 무뇌적인 행동양상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막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 인터뷰 기사를 내일 오전까지는 마무리해서 보내야 한다.

그러려면 오늘 밤을 새야하나?ㅠㅠ

내일까지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일요일에는 앤써 원고 하나라도 좀 쓰고 에세이 원고도 써야 한다.

에휴. 그러게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놀면 좀 좋아.

내게는 정확한 시간표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주에는 스페셜 섭외와 취재가 동시에 들어가야 한다.

헐.. 2주동안 손놓고 지내다니, 나도 참.

금방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주에 취재 하고 주말에 원고 써서 넘겨주면 된다.

집에 있으니 계속 드러눕고 싶고 자고 싶다.

이번달 정말 널널한 편인데,

정신차리고 후딱 해치워야지.

by 트래블러 2011. 7. 16. 01:11

심장 위에 커다란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가슴께가 무겁고 답답하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지만, 실제로 내 삶에 영향을 준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소한 감동이나 자극 말고,

나란 인간을 그야말로 뒤흔든 책들...

언뜻 꼽아보면

초등학교 때 읽었던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섹스가 쾌락의 도구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안 순간의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난 고작 열세살이었고.

중학교 때 읽었던 전태일평전

- 인생의 가치를 보다 묵직하게 만들어주는데 일조했다. 후에 발끝이나마 운동권에 담갔던 것도 아마 이 책의 영향이었을 테다.

스무살 때 읽었던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다다를 수 없는 나라'

- 정제된 문학의 힘, 그 아름다움이가지는 파워. 종교와 전쟁,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는 한 일생의 가치...

이십대중반에 읽었던 이부영교수의 융 분석심리학 시리즈.

- 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기와 자기실현으로 이어지는 분석심리학 시리즈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나와 세계의 연결고리를 찾지못해 헤매던 나에게 튼튼한 지푸라기 같은 구원이었다.

그외에 내 안의 뭔가를 객관화하게 만든 아티스트웨이, 로맹가리의 아름다운 소설들...

지금의 나를 만든 대부분은 바로 이러한 책들이었다.

그리고 좀전에, 위 리스트에 올릴 새로운 책을 만났다.

마이클 길모어의 '내 심장을 향해 쏴라'.


짧지 않은 논픽션이라 다 읽는데 며칠이 걸렸다.

처음엔 너무도 영화 같고 소설 같은 가족사의 처절함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자꾸만 주순이 삼촌이 떠올랐다.

나에게 그는 게리 길모어와 다름이 없었다.

너무도 유명한 사건이라고 했다.

미국 유타주에서 10년만에 사형을 부활시킨,

스스로 사형에 처해지기를 원했던,

그리하여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회를 살인자로 만드는 기막힌 복수를 실천했던

서른 다섯살의 사형수. 게리 길모어.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죽음의 주사 대신 총살형을 택했던 게리길모어가 남긴 말이기도 하고

그의 친동생인 마이클 길모어가 스스로의 가족사를 처절하게 해부하는 고통 끝에 탄생시킨 역작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고향이자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인 유타주가 갖고 있는 피의 역사,

할머니 대부터 내려온 어둠의 손길, 아버지와 어머니의 비밀과 폭력.

대물림의 운명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한다.

부모가 죽으면 부모가진 빚을 자식이 대신 갚아야 하듯이

죄도 대물림 되는 것일까?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너무나 끔찍한 것이어서 그것은 우리에서 끝나야 하고 거기서 멈춰져야 하는 것이며, 자식을 갖는다는 건 그 파며을 영속시키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 파멸을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이다. 어쩌면 개리와 게일런이 그 일을 해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혈통을 이어가기 전에 자신을 끝장내 버림으로써, 혈통을 단절시켰던 셈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이끌어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내 자신에게는 이 세상에 영속시켜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 자신과 미래에 관한 그런 생각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난 더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이 책을 쓰면서 마이클 길모어는 이런 결론에 도달한 듯하다.

그토록 가족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그이지만 자신이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것을,

어두운 가족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아마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절망과 캄캄함이었으리라.

*

주순이 삼촌은 서른살이 되기전에 자살을 했다.

내 할머니의 동생이었던 주순이삼촌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 폭력꾼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숫기 없어 보일정도로 얌전한 사람이었으나 술만 먹으면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아내와 아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나와삼촌은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아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기도 했는데, 그 때부터 삼촌은 학교에서 아주 유명한 문제아였다. 초등학교3학년때였던가. 학교 뒤 쓰레기 소각장에서 본드를 불다가 들켜 선생님에게 귀를 잡혀 끌려나오는 삼촌과 눈이 마주친 적도 있었다.

밖에서는 그랬어도 나와 동생에게 삼촌은 무척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늘 뭔가를 해주고 싶어했다. 어렸을 때는 자주 놀러가기도 했는데, 좀 큰 뒤로는 잘 가지 않았다. 어렴풋이, 삼촌과 우리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번은 우리집 앞에 마론인형과 로봇장난감이 놓여있었는데, 난 직감적으로 삼촌이 갖다놓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아버지였다.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근처 야산에 올라가 목을 맸다.

죽기 며칠전에 주순이 삼촌과 심하게 다투었다는 소리도 있었다.장례식장에서 삼촌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울었다.

그러고1년도 되지 않아 삼촌은 집에서 목을 맸다.

무엇이 두 부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만들었을까.

삼촌은 아버지에게 반항적이었다.그러나 결국 어둠의 세계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조폭생활을 했다.

술을 많이 마셨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폭력적이었다. 결국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와 닮아간다는사실을,

삼촌도 어느 순간 깨달았을까.

사춘기 이후로 나는 삼촌과 거의 대화를 해본 일이 없다.

그래서 그의 죽음 앞에서 그저 망연해있을 뿐이었다.

술주정군 아버지, 가정폭력으로 피폐해진 아내, 가출한 딸, 조폭이 된 아들...

그 가족의 역사는 결국 부자의 죽음으로 귀결된 것이다.

당시엔 그저 비극이라고 생각했을 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평범한 내가 이해하기에 너무도 음험하고 어두운 세계였다.

이 책에 의하면 두부자는 혈통이라고 할지, 어둠의 역사라고 할지...

그런 것들을 끊어버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걸지도 모른다.

*

책 속에서 게리의 형인 프랭크 2세는 '세상에는 수많은 게리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스스로는 어떻게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

운명, 팔자, 혈통, 뭐 그런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되는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 이상, 과연 내가 세상의 어떤 파렴치한을, 죄인을, 망나니들을 마음놓고 비난할 수 있으랴.

결국 하나의 인간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그런 굴레 속에서 게리길모어나 주순이삼촌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 죽음이었음을,

나는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너무나 무거워서

마이클처럼 구토라도 했음 하는 심정이다.

*

헌데, 이 훌륭한 책을 구할 길이 묘연하다.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어떤 서점에서도 중고시장에서도 구할 수가 없다.

이 좋은 책이 절판되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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