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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8.07 문화사학자 신정일
- 2009.08.07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 2009.08.07 인천 십정동 `열우물길에 희망의 색을 입히다`
- 2009.08.07 왈츠앤닥터만 커피박물관 박종만 관장
신정일 (문화사학자)
사람들의 가슴 속엔 저마다의 풍경들이 살고 있다. 다양한 얼굴을 한 그 풍경들은 우리들을 추억에 잠기게 하거나, 우울하게 하거나 때로는 끝 모를 환희로 인도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의 삶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발 디딜 땅이 필요하고 기댈 나무가 필요하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풍경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풍경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신정일의 시선집 <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에는 참 많은 풍경들이 나온다. 그것은 시로, 사진으로, 때로는 작가의 입을 빌어 우리의 예민한 심장을 자꾸만 건드린다. 그리하여 결국은 책을 접고 창 밖, 어딘가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걸으면서 만나는 새로운 세상
“보름이나 한 달쯤, 전쟁터에 나선 전사처럼 죽기 살기로 걸어보라. 하루 이틀이 가고 대엿새가 지나면 밤이면 밤마다 바뀌던 꿈의 풍경이 비슷해질 것이다. 꿈 속에서도 계속 걸어가고, 길을 묻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 가을, 고즈넉한 산사와 한없이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中
그는 ‘걷는 사람’이다. 걷는다는 일상적 행위가 무슨 직업이라도 되느냐고 반문한다면, 적어도 그에게는 그렇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그는 걸으면서 역사를 공부하고, 지리를 익히며, 시와 글을 쓴다. 황토현 문화연구소의 소장이며 우리땅걷기 모임 대표이기도 한 신정일 씨는 길을 걸으며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한 운동을 쉼 없이 펼쳐왔다. 요즘도 한 달에 서너 번씩은 강으로 산으로 답사를 떠난다는 그의 여행 수단은 무조건 ‘걷기’이다. 엊그제 경주에서 돌아왔다는 그는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로 오른쪽 눈 주위를 다쳐 몇 바늘을 꿰맨 상태였다. 그러나 상처가 아물기도 전, 벌써 또 다른 답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의 걷기에 대한 열정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태백시에서 김포까지 한강변을 차로 달리면 8시간 반이 걸립니다. 같은 길을 걸으면 얼마가 걸리는지 아십니까? 16일이 걸려요. 요즘 사람들은 물론 이해를 못합니다. 차로 몇 시간이면 갈 거리를 십수 일씩이나 걸려 힘들게 가는 게 의미가 있겠느냐는 거지요. 그러나 차로 가는 길은 길이 아닙니다. 내가 내 발로 땅을 딛고 걷는 것이 길이지요. 그렇게 강가를 걷다 보면 매 순간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가 있어요. 그것은 드라이브와 비할 것이 아니지요.”
풍경은 시가 되고, 시는 다시 풍경이 되고……
“나는 너무도 많은 세월을 떠돌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제 진정한 ‘떠남’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기도 하고 이제야 떠나고 돌아오는 의미를 알기 시작했는지도 모르지만 새삼스럽게 세낭쿠르의 <열두번째 편지>가 마음 속에 더 깊숙이 파고든다. ‘난 될 수 있는 한 방향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할 수 있는 한 길을 잃으려고 한다.’”
– 여름, 산은 가까워지고 바다는 하얗게 춤추네 中
<다시 쓰는 택리지> 등 이미 다수의 저서를 낸 문화사학자이기도 한 신정일 씨는 원래 시인을 꿈꾸던 문학도였다고 한다. 300편의 습작시를 갖고 있지만 아직 공개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만큼 문학에 대한 애정이 깊은 그이기에 그의 발 닿는 아름다운 산천이 모두 ‘시’였으리라. “제가 시를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시 속의 배경이 되는 곳을 가게 될 때가 많습니다. 또 반대로 그 장소에서 너무나 어울리는 시를 찾게 되기도 하고 지난 추억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제 경험들이 좋은 시들을 이해하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의도한 바처럼 <자꾸만 그곳에 가고 싶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시인들의 친숙한 시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에세이, 또, 글과 너무 잘 어울리는 사진들이 결합된 최상의 앤솔로지가 되었다. “옛날 선비들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이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연 속에서 만나는 시의 아름다움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길의 시인, 아름다운 여행은 계속되다
“내가 가장 먼 길을 걸어갔던 때가 아마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일 것이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당시 제일 부러운 것은 친구들이 입고 있던 중학교 교복이었다. 딴세상에 사는 것처럼 중학교에 간 아이들은 활기에 차 있었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들의 까만 교복만 보고도 괜히 주눅이 들어 그들을 피하곤 했다.” – 겨울, 첫눈이 내리면 내 어두운 마음도 하얘지고 中
신정일 씨는 공부 욕심이 참 많다. 그 동안 출간한 도서만해도 30권에 육박하는데다 그 분야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인터뷰 내내 그가 정확하게 인용하는 문구의 양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돈이 없어서 어렸을 때 학교를 못 다녔어요. 그래도 책을 좋아해서 이웃집에서 빌려 읽은 책만 해도 어마어마했지요. 절박한 상황에서 읽은 책이기에 아직도 이렇게 기억에 오래 남는가 봅니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아직도 배우려는 욕심이 남다르다. 언젠가 시인의 꿈을 꼭 이뤄볼 생각이라며 마음을 다잡는 신정일 씨. 그러나 다만 그 뿐이다. 그에게 길이 집이고, 하늘이 지붕이며 전국 곳곳에 있는 사찰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쉼터다. 서로 어우러져 한데 모여 바다로 나아가는 강물처럼 그는 오늘도 유유히 흘러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의 아름다운 여행이 계속되고 있다.
글, 사진 | 홍유진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수상자 (0) | 2010.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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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루게릭병으로 싸우는 이원규, 이희엽 부부 (0) | 2010.01.10 |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0) | 2009.08.07 |
왈츠앤닥터만 커피박물관 박종만 관장 (0) | 2009.08.07 |
가정재무주치의 제윤경 (0) | 2009.08.07 |
잘 나가는 대기업 엘리트 사원 10년 차가 그림쟁이로 변신했다! 독특한 이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장석원 씨. 이제는 밥장이라는 이름을 걸고 그림으로 세상을 만난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그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일상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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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홍유진_ 사진 박영현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수상자 (0) | 2010.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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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루게릭병으로 싸우는 이원규, 이희엽 부부 (0) | 2010.01.10 |
문화사학자 신정일 (0) | 2009.08.07 |
왈츠앤닥터만 커피박물관 박종만 관장 (0) | 2009.08.07 |
가정재무주치의 제윤경 (0) | 2009.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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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 인터뷰
민중미술 2세대 작가인 이진우 씨는 그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나눔 미술을 실천해 왔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인천 희망그리기’와 ‘거리의 미술 동호회’의 운영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와의 짧은 인터뷰.
"벽화가 예뻐요. 그림체도 다양하고요."
"저희 동호회에는 미술을 전공한 회원들이 많으니까요. 각각 다른 분들이 시안을 해 오세요. 벽의 모양과 분위기에 맞게 그림을 정하죠. 그래도 대부분 자연을 배경으로 해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많이 주려고 해요."
"5년 동안이나 이 작업을 해 오시면서 힘든 일도 많으셨을 텐데."
"왜 없었겠어요. 처음에는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일을 벌이는 거냐면서 마땅치 않게 보시는 주민들이 많았어요. 재개발이 빨리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림까지 그리고 그러면 더 늦어질지도 모른다며 반대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자원봉사로 하는 일인데 주민들의 여론이 그랬다면 굉장히 힘이 빠지셨겠네요."
"말씀은 하시지 않아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삭막하던 동네가 그래도 하나씩 예쁜 그림으로 채워져 나가니까 그걸 신기해하시고 좋게 보시는 분들도 점점 늘더라고요."
"올해 십정동이 환경개선지구 결정이 났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수년 내로 동네가 사라진다는 얘긴데, 허무하지 않아요?"
"이 동네, 이 골목에 사람이 한 명이라도 사는 한은 계속 해나갈 거예요. 재개발이 결정됐다고 해서 사람들이 단숨에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이 분들이 사시는 날까지는 그래도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십정동을 사랑하면서 사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느끼게 되는 가장 큰 보람은 뭔가요?”
"저는 이게 봉사라고 생각 안 해요. 나눔이라고 생각하죠. 내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함께 ‘나누는’ 거라고요. 이 일로 주민 여러분들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고 참여해주신 자원봉사자여러분들도 모두 행복하잖아요. 그럼 된 것 아닌가요?"
(인천희망그리기 http://cafe.daum.net/10umulgil)
글_ 홍유진
사진_ 서희연, 박영현
삼청동, 늦가을의 행복을 만끽하다 (0) | 2011.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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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춘천 가는 길 (0) | 2010.01.10 |
[우먼센스] 서해안 가볼만한 곳 (0) | 2010.01.10 |
100년의 커피를 만드는 남자
왈츠앤닥터만 커피박물관 박종만 관장
쉼 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북한강. 수백 년을 흘렀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흐를 거대한 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그윽한 커피 향이 나를 휩싸고 돈다. 너무도 향기롭고 황홀하여, 100년이 가도 사라지지 않을 그런 향기가….
클래식과 원두 향이 어우러진 그곳에 가다
박종만 관장을 만나기 위해 커피 박물관을 찾은 날은 매주 클래식 음악회가 열리는 금요일이었다. 평소엔 티셔츠 차림이다가도 이날만큼은 멋스럽게 턱시도를 차려 입는다는 박관장은 고풍스러운 박물관의 정경과 무척 잘 어울렸다.
경기도 남양주,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을 마주보고 서 있는 왈츠앤닥터만 커피박물관은 마치 커피로 지어진 성과 같은 모양새다. 작고 소박하지만 커피의 역사와 종류, 그리고 향과 맛까지 커피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잘 꾸며놓았다.
“벌써 169회를 맞는 금요음악회에요.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뿐인 영 아티스트 초청 연주회 날인데 날을 잘 잡으셨네요. 커피와 클래식, 얼마나 잘 어울립니까? 뒤풀이로 와인 파티도 한답니다. 금요일 밤을 장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죠.”
커피 관련 유물을 진열해 놓은 전시실이 금요일 오후 6시만 되면 작은 콘서트 홀로 바뀐다. 오래된 물건을 보여주는 단순한 박물관에서 벗어나 음악이 있고 커피가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 변신하는 것이다. 100년 가는 음악회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이렇게 작은 홀에서도 클래식 대가들이 찾아와 연주할 수 있는 문화를 꿈꾼다고 했다.
"나이 들면서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끝없는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답은 간단해요. 첫째,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두 번째는 돈벌이가 되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 인생은 커피로 인해 무척 행복하고 풍요로워졌습니다. 이 박물관은 그런 커피를 위한 제 보답입니다. 제 인생의 보람이기도 하지요."
평범한 사업가, 커피와 기적처럼 만나다
우리나라의 커피소비량은 세계 11위로 국민 한 사람당 일 년에 347잔을 마신다고 한다.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가 커피일 정도로 커피는 이미 우리 일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호품이 되었다. 그런 커피가 유독 박종만 관장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왜일까?
"사실, 저도 똑같았습니다. 습관처럼 매일 마시긴 했지만 특별히 커피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그랬던 커피가 제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20년 전, 당시 인테리어 사업체를 운영하던 박 관장이 출장길에 우연히 방문한 일본 커피공장. 그곳에서 그는 마치 별천지를 발견한 듯 했다. 문을 여는 순간, 이곳저곳에서 커피콩을 볶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고, 훅 하고 내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연기에 가슴이 덥혀졌다. 빨갛게 익은 커피 열매의 색에 반하고 세포 하나까지 일깨우는 듯한 커피의 향과 맛에 매혹된 나머지 그 후로 그는 커피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한참을 고민한 후에 그 커피를 한국 사람에게도 마시게 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인테리어 사업은 어떻게 했냐고요? 깨끗하게 정리했죠."
당시 우리나라는 마담이 곁에 앉아 따라주는 소위 '다방 커피'문화가 대세인 실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세운 왈츠 코리아 프랜차이즈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원두커피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한 때 체인점이 70여개까지 늘 정도로 번성했다.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커피를 마셨는지 몰라요. 공부도 많이 했죠.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했어요. 한번은 블루마운틴 원두가 이렇게 비싼 이유가 뭘까, 궁금해서 자마이카까지 다녀오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커피에 대한 열정은 계속 이어져 지금도 그는 매년 커피의 원류를 찾아 아프리카와 아랍 등지의 커피 원산지를 탐험하고 있다.
다방에서 문화와 예술과 낭만을 논하다
미처 몰랐던 사실 하나.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가 무려 100년이 넘는다는 것이다. 1896년 고종황제가 최초의 커피 애호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커피 관련 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실정이다. 박종만 관장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럽에 가면 100년 역사를 가진 식당, 200년이나 한 자리에 있었던 책방 등 참 흔하게 볼 수 있어요. 하물며 집에서 쓰는 침대마저도 백년 된 게 많아요. 3대조 할아버지가 쓰시던 거 그대로 물려받는다고요. 그런 것에 대한 부러움이 참 커요. 우리에게는 왜 그런 게 없을까……."
그는 올해 하반기 '다방 展'을 열 예정이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산실, '다방'의 본래적 의미를 되짚어보자는 취지다.
"한번 생각해보자고요. 가난한 문인들은 집에 전화도 없었어요. 대충 점심 지나고 보자, 하고 다방에서 보기로 한단 말이죠. 그런데 사정이 생겨 상대방이 못 오게 되면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종일 기다리는 거죠. 그 시간에 뭐하겠어요? 낙서하고 그림 그리고……. 거기서 예술이 시작된 겁니다. 그게 커피입니다."
천재 시인 이상도 '제비'라는 다방을 직접 운영했을 정도로 서울 명동은 수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문화적 진원지였다. 그러나 현재, 돌체 다방, 은하수 다방, 문예 싸롱 등 이름난 명물 다방이 있던 자리에는 주물로 만든 표지만이 그 흔적을 희미하게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의식을 하던, 하지 않던 커피는 우리의 삶과 같은 속도로 늘 함께 하고 있다. 커피와 역사, 커피와 연애, 커피와 문학……. 아주 오래전부터 커피는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심각한, 그러나 아름다운 중독으로 자리 잡은 건 아닐까? 그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박종만 관장은 오늘도 커피를 마시며 새로운 모험을 계획하고 있다.
"100년 전부터 커피를 마셔왔듯, 100년 후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커피를 마실 겁니다. 그 때에는 우리 땅에서 재배된 커피도 마셔야 하지 않겠어요? 기다려 보세요. 아주 기가 막힌 커피가 될 테니까요."
글 홍유진_ 사진 박영현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수상자 (0) | 2010.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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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루게릭병으로 싸우는 이원규, 이희엽 부부 (0) | 2010.01.10 |
문화사학자 신정일 (0) | 2009.08.07 |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0) | 2009.08.07 |
가정재무주치의 제윤경 (0) | 2009.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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